우연과 필연의 차이
세상에는 우연도 있고 필연도 있다.
우연은 의지의 결과이고 필연은 의도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우연 중에 가장 놀랄 만한 건 복권에 당첨되는 것일 게다.
확률로 보더라도 당첨은 우연의 결과이지 의도에 의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복권을 사려는 의지가 놀라운 우연의 결과를 빚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우연이 의지의 결과라고 하는 것은 의지마저 없으면 우연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커미디언의 말이 생각난다.
어떤 사람이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신에게 간절히 그리고 매일 빌었다고 한다.
그러자 어느날 신이 말하기를 복권이라도 사야 도와줄 수 있지 않겠는냐고 했다.
우연이 신의 소행이라면 그 우연을 바라는 의지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난 과거에 많은 것들을 우연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시점에서 대부분이 필연의 결과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건 영화적 과거에 대한 회상에 의해서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의 일대기적인 영화를 예를 들어 그 영화를 두 번 보게 되면 처음에는 그 주인공의 삶이 많은 부분 우연에 의해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다시 그 영화를 볼 때는 우연으로 본 사건들이 필연적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즉 미래의 관점에서 '지나간 현재'를 바라보게 되면,
현재 내가 고민하고 결정하는 사항이나 양자택일한 사항도 필연의 과정임을 알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지금 '지나간 현재'에 위치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운명론적이다.
운명론은 고대 그리스인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자신의 의지가 강한 사람일수록 운명론이나 예정론에 반발한다.
나도 한때 그런 것들은 패배의식이 낳은 결과라고 생각하고 용납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나온 과거의 발자취를 더듬으면 내게 일어난 지난 모든 사건들이 필연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우연과 필연은 어떻게 다른가?
버스 안에서 맞은편에 앉은 사람을 바라보고 그 사람과 눈이 마주치는 건 우연의 결과이다.
내 주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둘러본 결과로 그곳에 앉아 있는 20대 중반의 매력 있는 여자를 바라보게 된 것은 우연이다.
버스를 타기 전 내가 생각하는 매력을 갖춘 여자를 만나기를 바란다는 의도를 가졌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순히 그쪽을 바라보려는 의지만 갖게 된 것이고 바라보니 그 여자가 매력적이라고 판단하게 된 것이다.
그때 옆에 앉았던 친구가 말한다.
"재 예쁘지 않니?"
"예쁘다."
"꼬셔야지."
이는 실제로 있었던 대화이다.
뉴욕에서 아주 오랜만에 중학교 동창을 만나 그와 함께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을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나눈 대화이다.
그 친구는 컬럼비아 대학에 재학 중이었고 매력 있는 여자는 컬럼비아 대학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우리가 탄 버스에 올랐다.
그 친구가 "꼬셔야지"라고 말한 건 그 여자가 그곳에서 버스를 탄 것으로 미루어 컬럼비아 대학에 재학 중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얼마 가다가 그 여자는 내렸고 우리는 더 멀리에 있는 뮤지엄으로 갔다.
그 후 친구가 자기 아파트에서 연 파티에 초대했을 때 난 그곳에서 버스에 탔던 그 여자를 만났다.
친구가 꼬신 것이다.
몇 해 후 두 사람이 결혼할 때 난 그 여자에게 금목걸이를 선물로 주었다.
두 사람은 현재 서울에 살고 있고 친구의 아내를 볼 때면 버스에서 처음 본 모습이 떠오른다.
그날 친구가 그 여자를 본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단지 바라보려는 의지만 갖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꼬시려는 의도를 가졌기 때문이다.
지금 난 의지와 의도라는 개념으로 우연과 필연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매일 의지를 강요당하며 살고 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어디를 갈까 무엇을 살까 등등의 구체적인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서점으로 갈까 전시회에 갈까 추억이 있는 덕수궁을 산책할까 등등 행위를 하기 위한 선택을 해야만 한다.
이런 결정과 선택은 의지에 의해 이루어진다.
한편 의도는 계획을 세우는 걸 의미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지도록 혹은 사건이 내게 유리하게 발생되도록 고의적인 계획을 세우는 걸 의미한다.
이는 의도를 가지는 순간 그 이후에 벌어지는 모든 사건이 필연이란 뜻이다.
물론 원래의 계획대로 일이 되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결과는 마찬가지로 필연인데 도중에라도 계획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의도를 완전히 놓지 않는 한 필연을 막을 수는 없다.
그리고 의도는 언어로 설명되어야 한다.
"예쁘다"는 의도에 대한 설명이 아니지만 "꼬셔야지"는 의도에 대한 설명이다.
꼬시겠다는 의도가 생기니까 그 친구는 컬럼비아 대학 캠퍼스를 잃어버린 물건을 찾듯이 샅샅이 뒤졌고 그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친구는 우연을 가장하고 접근했을 것이고,
그 여자는 그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매우 계획적이었다.
난 과거에 만난 사람들 그리고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들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그들을 알게 된 것이 필연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도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와는 달리 단순한 의지만으로 행동하지 않게 되다보니 그 어느 시점부터 내게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을 필연의 결과로 이해가 된다.
비극으로 끝나는 영화일수록 그 영화를 다시 보게 되면 주인공과 그 주인공과 관련된 사람들이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라 필연에 의해서였다는 걸 알게 된다.
시한부 인생을 살고 말 사람을 사랑하게 된 것도,
내게 큰 상처를 입힐 사람을 만나게 된 것도,
헤어지게 될 사람을 만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것도,
상처의 아픔으로 몸서리쳤던 것도,
헤어진 사람을 끝내 기억 속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이 나로 하여금 또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동안 보고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살게 했다면 이는 필연적인 나의 성숙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만 세상을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
끊임없이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만 한다.
난 많은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경험을 했다.
난 세상이 넓을 뿐만 아니라 세상이 아주 많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현재에도 내가 모르는 세상이 아주 많다는 걸 시인한다.
내가 현재의 나로 살아온 것이 필연이란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우연히 어떤 상황 속에 내던져지는 일은 없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과거에는 의도와 의지를 분간하지 못해 많은 사건들이 우연의 결과인 줄로만 알았다.
세상에는 우연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대부분 필연에 의한 것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필연의 존재를 믿고 필연에 의해 사건이 발생한다고 믿게 되니 무엇을 의도할 때 원하는 바를 미리 계획할 때 조심스러워진다.
그 결과를 조심스럽게 따져보게 된다.
쉽게 판단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Pull game에서 일단 흰 당구공을 힘껏 치게 되면 9개의 공들이 이리저리 튀며 흩어진다.
9개의 공이 제각기 갈대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의 향방은 이미 흰 공이 다가갈 때 정해진다.
돌일킬 수 없게 예정대로 혹은 필연적으로 흩어지게 된다.
하나의 작은 결정조차도 다양한 결과를 초래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연을 고대하거나 우연을 믿지 않게 되었다.
내가 복권을 사지 않는 이유는 우연의 확률이 너무 적어서 마음에 둘 필요조차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