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주의와 사실주의와의 관계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와
피터 스크라인Peter Skrine과 릴리안 푸르스트Lilian Furst 공저 『자연주의Naturalism』(1971)에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와의 관계’란 항목의 글이 있는데,
19세기 서양에서 일어난 자연주의와 사실주의의 관계에 관한 내용이지만 서양화와 동양화 모두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사실주의자들과 자연주의자들에게 공통되는 점은, 예술이란 근본적으로 외적 진실의 모사적·객관적 재현이라는 기본 신념이다.
이런 신념은 그들로 하여금 소재로서 가까운 주변에 깔려 있는 범상한 것들을 선택하게 했으며 또한 기교에 있어서는 비개인성impersonality의 이상을 예찬하게 했다. …
자연주의는 바로 이러한 모사적 사실주의의 일반적 경향으로부터 자라난 것이다.
여러 가지 점에서 자연주의는 사실주의의 강화된 형태이다. …
이 둘의 진정한 차이는 보다 심원한 곳에 놓여 있다.
즉 사실주의의 초연한 중립적 태도에 어떤 특수한 인간관을 부과하는 것이 자연주의의 근본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연주의자들은 사실주의의 근본 취지를 갈고 다듬고 강화시켰을 뿐 아니라,
자연주의를 사실주의와는 달리 하나의 분명한 교리로 만들어준 중요한 새로운 요소들을 부가한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자연주의는 사실주의보다 더욱 구체적이며 동시에 더욱 한정적이다. …
그리하여 자연주의자들은 과학적 사상에 깊이 고취된 하나의 철학을 거쳐 여러 분야의 과학으로부터 그들의 작품에 표현하고자 하는 명확한 인간의 개념을 추출해낸 것이다.
그들의 생물학적·철학적 가정은 그들을 선입견 없는 객관적인 태도를 취하는 사실주의자들과 구분시켜준다.
왜냐하면 인생을 관찰하는 데 있어서 자연주의자들은 이미 어떠한 패턴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서양화의 음영법과 원근법 외에도 중국화의 자연주의 전통도 오쿄에게 영향을 주었다.
일본의 외부세계와의 유일한 통로 나가사키를 통해 17세기부터 서양화와 중국화가 일본으로 들어왔다.
1644년 명승 이츠넨逸然(1601~68)이 일본에 와서 세운 선종禪宗의 한 파인 오바쿠라는 새로운 선종파가 나가사키의 화교들에 의해 일본에 소개되었다.
오바쿠 선사들의 초상화는 얼굴 묘사에서 철저한 사실주의를 보이는 특이한 양식으로 제작되었다.
키타 겐키喜多元規와 같은 일본 화가가 이 표본을 따랐으며 여기에 기독교 선교사들에 의해 일본에 반입된 서양화 양식이 가미되었다.
그 자신 아마추어 화가인 이츠넨은 나가사키파인 관화파官畵派 화가들에게 크게 영향을 행사했으며 이들의 회화는 사물의 세밀한 부분까지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 화가들은 세부 묘사와 빈틈 없는 필법, 그리고 화사한 색채를 좋아했으며,
유히態斐라고 알려진 쿠마시로 슛코態代繡江(1712~72)와 같은 추종자를 낳았고,
오쿄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았다.
오쿄가 1760년대에 그린 <기원사도祇園社圖>를 보면 대로변의 상점들이 점차 축소되어 가는 원근법이 적용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또한 시점이 낮게 설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요소는 과거 일본화와 우키요에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획기적인 것이다.
모든 사물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그가 정확하게 관찰했음이 분명하다.
인물과 신사 입구의 두 기둥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어 빛에 의한 음영도 놓치지 않았다.
사실적 요소로 구성되고 넓은 공간을 보여주는 그의 회화의 매력은 조화로운 색채와 필묵의 선염에 있다.
형이상학적 추상이나 대담한 형식이 전혀 개입되지 않고 이해하기 쉬운 그의 회화는 쿄토와 오사카 대중의 허세부리지 않는 평범한 취향에 완벽하게 부합된다.
엠만인円滿院 대사찰의 문주門主 유죠祐常 법친왕法親王의 관대한 비호와 그 자신의 노력의 결과로 오쿄는 사물에 대한 객과적 관찰에 기초한 독특한 양식을 이룩했다.
1770-76년에 제작한 동경의 국립박물관과 니시무라 가西村家 소재 몇 권의 노트와 사생회첩寫生繪帖들을 보면 그가 동·식물을 정확하게 관찰했음을 보여준다.
인물화 중에는 누드로 스케치한 것을 그 위에 채색한 것도 있다.
오쿄의 후기 작품, 특히 대화면의 구성은 진부하고 정기가 없어 보일 정도로 구도가 너무 명료하고 내용이 결여되어 있다.
그의 걸작품의 생기 있는 면모는 적어도 애써 이룩한 사실적 묘사의 정확성이 아니며 용필의 재주와 섬세하게 나부끼듯 움직이는 선으로부터 폭넓게 휩쓰는 듯한 필획에 이르기까지 필선의 다양성에 있다.
1765년작 <설송도 雪松圖>는 젊은 시절 작품에서 볼 수 있는 즉흥성과 숙달된 기법을 뽐내는 작품이다.
엷은 금채로 강조된 배경에 단순한 필묵의 효과로 비단의 흰색 바탕은 나무둥치와 땅 위에 덮인 눈의 역할을 하며 신선함, 부드러움, 가벼움 등의 촉감을 십분 느낄 수 있다.
침엽은 신속한 필선으로 묘사되었으며 먹의 농담으로 나무둥치와 가지가 입체적으로 표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