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철학의 전래


연경사신 이광정이 1603년 마테오 리치가 제작한 『곤여만국전도 坤輿萬國全圖』(1602)를 들여오자 사람들은 천지의 중심이 중화中華가 아니라 지중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630년에는 정두원이 진주사로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할 때 홍이포紅夷砲, 천리경千里鏡, 자명종自鳴鐘 등 서양 기계와 함께 천주교 신부들에 의해 한역된 『천문서 天文書』, 『직방외기 職方外紀』 등 서학 서적을 들여왔다.
『직방외기』는 한민족 외에 독자적인 역사와 전통을 가진 문화 민족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편술된 책이었다.


서양에 있어 민족, 즉 nation이란 현대어는 러틴어의 natio에서 유래하며 ‘태어나다 nascor’에서 파생했다.
Natio는 출생 조건이 비슷한 사람들의 집단이란 뜻이다.
보통 외국인 집단을 지칭했다.
로마인이라고 할 때 그들은 populus Romanus라고 칭했다.
그리스의 폴리스는 자유민으로 구성되고 비자유인은 ethnos라고 하여 이반 민족과 노예를 포함한 일반 민중을 가리켰다.
따라서 그리스어 ethnos와 라틴어 natio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로마제국에서 정복된 민족이나 국가는 처음부터 로마인이 되지 못했고 시민의 권리를 가진 사람만이 시민civitas으로 칭했다.
오늘 날의 의미로서의 민족국가가 태어난 것은 프랑스 혁명 이후이다.
프랑스 혁명은 국가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국가 구성원에게 불러 일으켰다.
루소는 국가가 독재 군주나 지배계급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고 “국가는 국민과 일치한다”는 주장을 앞세워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의 기본 이념을 제공했다.
루소 이전에는 군주 사이의 분규가 곧 국가의 전쟁이었고 일반 시민은 전쟁 당사자로서 인정받지 못했다.


서양 과학과 사상의 영향으로 조선 후기 학자들은 종래와는 다른 비판적 태도를 취하게 되었다.
정제두는 “오늘날에 와서 주자를 말하는 이는 주자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바로 주자에 가탁假託한 것이요, 주자에 가탁한 것이 아니라 주자에 부회附會한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이理보다는 기氣를 높이고 실천성을 강조하는 양명학陽明學을 앞세웠다.
성리학은 성즉리性卽理, 곧 인간의 본성이 바로 이치라고 분 데 반해 양명학은 심즉리心卽理, 곧 마음이 바로 이치라는 입장이다.
이는 객관적 사물이 아니라 주관적 심에 내재되어 있다고 보기 때문에 정제두는 『하곡집 霞谷集』에 적었다.

이른바 진지眞至의 의리, 천리天理의 정正이 과연 말, 소, 닭, 개에 있다고 하여 구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천지만물은 인사人事와 관계가 있는 것이니 … 개개의 사물에 따라 하나하나를 결정하고, 그때그때에 사물을 처리하는 것이 내 마음에 있다.


성호 이익과 다산 정약용을 위시하여 북학파라고 불리우는 학자들은 양명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양명학은 실생활과 유리된 공리 공론을 배격하고 실사구시와 이용후생을 존중하는 실학에 영향을 미쳤다.
이익과 정약용은 양지良知 양능良能, 즉 선천적으로 타고난 인간의 사유 능력과 실천 능력이 만물을 창조하고 주재하는 조요한의 말로 하나의 높은 님을 존경하게 된다고 보았다.
류승국은 『철학사상의 제문제 II - 한국 철학의 근원탐구』(1984)에서 정하상의 『상재상서 上宰相書』도 이 양지 양능에 초점을 맞추어 새로 도입된 서학과 전통 유학의 관계를 양명학이 매개한 것으로 보았다.
당시 서학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정치권에서 배제된 기호畿湖 남인南人 학자들이었다.
이 시기는 권력의 독점과 부패 그리고 신분 차별의 심화와 대중의 궁핍으로 민심이 집권층을 떠난 때였으므로 현실 개혁을 의도한 선비들에게 서양의 평등사상이 개혁의 지침으로 받아들여졌다.


서학이 도입되면서 성호 이익과 그의 학풍을 이은 성호학파와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로 이어지는 북학파의 활동 속에서 서학연구가 정착되었다.
담헌 홍대용은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새로운 개명을 괴한 청나라를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고, 연암 박지원은 담헌을 이어 지전설地轉設을 주장하며 오행에 대한 상생상극의 이론을 부정하고 그에 따르는 갖가지 미신적 사고에 젖어 있던 당시의 우주관과 인생관을 타파하고 합리적인 생활방식을 지향할 것을 주장했다.
그는 젊어서 『양반전』을 비롯한 9편의 소설을 통해 사회의 불합리한 측면을 풍자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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