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의 현대미술관에서 5명의 작가에 관해 강의했습니다.
한 명씩 글을 올리겠습니다.
로스 블렉너Ross Bleckner(1949~)
뉴욕 태생의 블렉너는 N.Y.U.에 재학할 때 화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1972년 캘리포니아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수학한 후 1973년 뉴욕으로 돌아왔다.
1989년 밀워키 미술관을 비롯한 미국 순회전을, 90년에는 취리히 미술관을 비롯한 유럽 순회전을 가졌고, 휘트니 비엔날레에 여러 차례 참가했으며, 1995년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첫 회고전을 가졌다.
블렉너는 옵아트를 사용한 신경향 작품을 제작했다.
옵아트는 텍스타일 패턴, 선물포장지와 매우 유사해지면서 종말을 맞았는데, 블렉너는 옵아트가 맹목적인 숭배의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심리적 요소를 불어넣어 관람자의 기억 혹은 경험에 의한 의미가 되게 했다.
그는 추상을 상황에 들어맞도록 하기 위해 언어를 사용했는데 그가 붙인 제목이 상황을 한정한다.
그는 제목에 <신은 오지 않을 것이다>(1983), <우리의 서클>(1987), <기사 없는 밤>(1988), <다섯 번째 성찰의 삶>(1989) 등을 붙여 언어를 통해 관람자의 심리를 자극했다.
그는 옵아트를 차용하는 것은 시각을 자극하는 옵아트의 기교가 심리적으로도 자극제가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추상을 배경으로 사용하여 재현적인 요소가 끊임없이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기를 바란다.
빛은 그의 작품에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그는 자연의 빛을 재현하기도 하고 물감을 통해 물리적인 빛이 방사하게도 했으며 이런 점을 1994년 작품 <추모 I Memorial I>(아트 76)에서 볼 수 있다.
<추모 I>는 세로 가로 244cm 305cm이다.
이렇듯 작품이 크기 때문에 빛의 효과는 더욱 강렬하다.
그는 <추모 I>에서 동일한 트로피와 비행하는 비둘기를 반복해서 그린 후 빛에 의한 트로피의 반사와 비둘기의 흰색 그리고 군데군데 흰색 물감에 의한 물리적 빛의 방사가 한데 어우러지게 했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빛은 단순한 자연의 빛이 아니라 종교적이고 초월적인 빛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어두운 색과 밝은 색의 심한 대비 속에 여기저기에서 섬광처럼 번쩍이는 빛의 반사는 매우 극적이며 관람자에게 신비로움을 느끼게 해준다.
그는 그림에 에이즈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 넣어 망자들의 혼을 자유롭게 비행하는 비둘기에 비유했다.
흰 비둘기를 기독교 종교화에서 평화와 성령의 도상으로 그가 망자들의 혼을 비둘기에 비유한 것이다.
트로피는 망자들의 기념물이면서 승리를 상징한다.
블렉너는 1986년에 에이즈로 희생된 사람들의 혼을 위로하는 제의적 그림을 그린 후 제목을 <8122+1986년 1월 현재>(현대 345)라고 붙였는데,
향로에 화환을 올려놓고 그 위에 투명한 망사를 씌운 것 같이 보이도록 한 후 장미 한 송이를 올려놓았다.
그는 그림 네 귀퉁이에 8 2 2 1이란 숫자를 검은 색으로 적었다.
8221이란 숫자는 1986년 1월 현재 에이즈로 사망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는 추상 공간에 향로, 트로피, 새, 화환, 샹들리에, 성배, 리본, 촛불 등을 그려 넣었는데, 이런 것들은 전통적인 도상으로 상징적 의미를 지닌 이미지들이다.
그가 사용한 이미지들은 대가들의 작품에서 따온 것들이며, 섬광의 효과, 표면에 입힌 광택의 효과 등도 차용한 것들이다.
그 밖에도 그는 신문, 잡지, 책 등 닥치는 대로 자료를 수집하여 사용했으며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사용하기도 했다.
차용은 컨템퍼러리 아트에서 용인된다.
블렉너 작품의 특징은 양면성으로 비극적인 감정과 키치의 양극을 함축하고 있는 점이다.
예를 들면 그가 <추모 I>에서 사용한 이미지 트로피는 망자의 기념물로서 비극적인 감정을 일으키게 하면서 동시에 승리의 상징이며,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지만 죽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8122+1986년 1월 현재>에 사용한 화한은 축복과 애도 모두에 사용되는 이미지이다.
이런 점은 신경향의 대표적인 예술가 제프 쿤스에게서도 발견되는데 그는 키치의 이미지를 역설적인 방법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쿤스는 자신의 작품에 어떠한 역설적인 점도 없다고 부인하면서 “그것은 내게 있어서 비극적 감정이다”라고 말한다.
키치kitsch는 독일어로 ‘값싸게 하다’ ‘감상적으로 만들다’라는 의미의 동사 verkitschen에서 나온 말로 ‘천박한 쓰레기’를 의미하며, <옥스포드 독일문학사전>(1976)에는 “원래 감상적인 중, 장편 소설과 시, 그런 경향의 시각예술 작품 등 덧없고 쓰레기 같은 작품에 적용되었다”고 적혀 있다.
팝 아티스트들은 키치의 사용으로 고급 미술과 저급 미술 사이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었다.
컨템퍼러리 아트에서 키치의 역설적인 사용이 고급 미술과 저급 미술의 구분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신경향에 나타나는 이런 양면성은 네오-지오와 신표현주의의 특징을 모두 수용한 데서 생겨났다.
신야수주의로도 불리는 신표현주의Neo-Expression!ism는 격렬하고 폭력적이며 거친 회화에 붙여진 명칭으로 프랑스에서는 자유 구상으로 이탈리아에서는 트랜스아방가르드로 알려졌다.
1970년대 말에 등장한 회화 운동으로 재료를 처리하는 거친 방식과 강렬한 감정적 주관성을 특징으로 한다.
신표현주의 회화는 크기가 크고 짧은 기간 내에 제작되며 키퍼의 경우 지푸라기를 사용했고, 슈나벌의 경우 깨진 도자기를 화면에 부착했다.
보통 구상적이며 폭력과 죽음을 모티프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미지는 진동하는 표면 효과에 흡수된다.
그러나 평론가들은 신표현주의자들이 전통 기법을 모두 무시하고 일부러 형편없게 작품을 제작한다고 비난했다.
신표현주의의 일부 작품에 ‘배드 페인팅 Bad Painting’이란 명칭이 붙여졌고 ‘평크 아트 Punk art’와 ‘어리석은 페인팅 Stupid Paintong'이란 명칭은 ‘배드 페인팅’을 대신하는 용어들이다.
신표현주의 작품을 판단하는 기준은 우선 감정적 가치를 위해 의도적으로 조야함을 추구한 ‘배드 페인팅’인지 단순히 쓰레기와 같은 ‘배드 페인팅’을 제작한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이다.
네오-지오Neo-Geo는 신기하학적 개념주의Neo-Geometric Conceptualism의 약어이다.
네오-지오는 신표현주의의 주정주의에 반발하여 1980년대 중반 뉴욕에서 일어난 운동이다.
그들의 회회, 조각, 또는 제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차갑고 비개성적이다.
이 그룹의 가장 잘 알려진 작가가 제프 쿤스이다.
쿤스는 다다의 레디메이드를 재생시킨 진공청소기와 같은 소비 상품을 전시했다.
많은 평론가들은 이들의 작품을 냉소적이며 공허한 것으로 본다.
자신의 작품에 나타난 양면성에 대해 블렉너는 “이런 양면성이 명확한 상징을 제공하기보다 문제점을 두드러지게 한다”고 말했다.
블렉너가 사용하는 도상들은 그의 말대로 문제점을 제시할 뿐이기 때문에 궁극적 화해와 희망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19세기 상징주의 회화와는 구분이 된다.
일반화된 의미를 전복시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알레고리 충동’의 전형이며 다의성을 추구함으로써 일관성을 와해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