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용transfigiration


단토로 하여금 예술의 종말을 감지하게 한 또 하나의 중요한 개념은 시각예술에서의 변용의 미학이다.
평범한 것을 변용을 통해 아이콘으로 만들고 대중적인 미술과 고급 미술과의 구별을 흐리게 하는 데 있다.
일차적으로는 변용을 통해 평범한 사물을 고급 미술의 미학적 사물로 격상시키고 결과적으로는 대중적인 미술과 고급 미술의 경계가 사라지게 했음에 주목했다.
변용은 기독교의 개념으로 소위 말하는 ‘변화산 정상의 사건’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17:1~3에 적혀 있는 사건이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동생 요한만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다.
그때 예수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하여 얼굴은 해와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눈부셨다.
그리고 난데없이 모세와 엘리야가 나타나서 예수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변용은 대상 자체인 예수의 모습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 베드로, 야고보, 요한의 인식에 변화가 생기는 사건이다.


팝아트는 관람자의 인식을 문제 삼은 미술이다.
동일한 사물을 다르게 인식하는 사유의 문제를 제기한 미술이다.
단토는 팝아트가 그토록 자극적일 수 있었던 원인으로 변용은 지적한다.
단토는 말한다.

“팝아트 자체는 미국 고유의 업적이며, 그것에 도처에서 그토록 전복적이었던 것은 기본 입장이 변용되기 때문이다.”


단토는 팝아트가 평범한 것들인 일상적 문화 경험의 대상과 아이콘을 미술로 변용시킨다고 보았다.
추상 표현주의는 문화 경험의 대상과 아이콘에 숨겨진 과정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초현실주의적인 전제에 기초했음을 지적했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관점이다.
그는 추상 표현주의자들이 원초적인 힘과 접촉하는 무당 노릇을 하려고 했음을 지적했다.
팝아트가 추상 표현주의에 반발하여 생겨난 운동이었으므로 그는 팝아트와 추상 표현주의의 상이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두 가지 상이한 점을 지적한다.

“추상 표현주의가 철저하게 형이상학적이었다면 팝아트는 가장 일상적인 삶의 평범한 것들, 즉 콘틀레이크, 수프통조림, 비누, 인기 영화배우, 만화 따위를 찬양했다.
그리고 변용의 과정을 거쳐 팝아트는 이런 것들에게 거의 선험적인 분위기를 부여했다.”

분석철학자인 단토는 철학이 종말에 이르게 된 것으로 1930년대에 성행한 분석철학을 꼽았다.
분석철학이 유지되어온 형이상학을 무용지물로 만들었음을 지적한 후 분석철학이 철학을 종말에 이르게 한 것처럼 팝아트가 예술의 종말을 재촉했음을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둘 다 인식가능성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분석철학과 팝아트 모두 해방적이다.
그는 비트겐슈타인이 파리통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파리에게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 말한 적이 있음을 예로 들어 분석철학과 팝아트가 사람들로 하여금 정형화된 인식으로부터 새로운 인식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미술은 이러저러하다든가 미술작품은 이러저러해야 한다던가 하는 고정관념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 것이 팝아티스트들의 성과임을 말한다.
그는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이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우리를 억압한 과거의 인식 체계로부터의 해방을 말한다.
분석철학과 팝아트 모두 과거의 철학과 미술을 총괄적으로 조망했음을 지적한다.
분석철학은 플라톤으로부터 하이데거에 이르는 철학 전체와 대립했으며 팝아트는 실제적 삶을 위해 미술 전체에 대립했다.


단토는 미래의 미술을 철학의 문제로 본다.
분석철학과 팝아트 모두가 비슷한 시기에 오래된 고정관념의 인식 체계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며 둘 모두 인류에 봉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동반자라는 것이다.
그는 미학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을 통해 원래 예술과 철학은 동반자의 관계였는데 정치적 상황에 의해서 플라톤이 예술을 수준 낮은 것으로 치부해버렸으므로 철학과 거리가 생긴 것이라고 했다.
현재 철학과 예술의 관계가 회복 내지는 정상화되었다고 본 그는 말한다.

“1950년대 중반 철학과 예술 둘 다 당시의 인간의 심리 저 깊은 곳에 있던 어떤 것에 응답하고 있었으며 바로 이 점이 그것들로 하여금 미국 장면 밖에서는 그토록 대단한 해방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팝아트에 대한 그의 희망적 청사진은 대단했는데, “팝아트가 의식 속으로 끌어올린 것은 우리 모두 세상에 홀로 남겨져 살아간다는 것으로서, 이는 누구라도 원할 수 있는 훌륭한 삶이었다”라고 한 말에서 알 수 있다.
그는 팝아트가 심대한 사회적, 정치적 변화를 예고하고 예술 개념에 있어 심원한 철학적 변화를 성취한 대격변의 모멘트였다고 말한다.


변용을 뒤샹의 레디메이드에서도 찾아볼 수 있지만 뒤샹은 평범한 것을 찬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레디메이드를 팝아트와 구별했다.
하지만 뒤샹이 미적인 것의 중요성을 감소시키고 미술의 경계선을 실험한 공로는 인정하면서 미술사에 있어서 이와 같은 일을 한 사람이 없었음을 지적했다.
뒤샹과 팝아트 사이에 외적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우리로 하여금 꿰뚫어 볼 수 있게 해주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며 팝아트의 성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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