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리히 뵐플린Heinrich Wolfflin(1864~1945)


그는 회화가 선적인 것으로부터 회화적인 것으로 발전했다고 했는데,
회화를 선적인 것과 회화적인 혹은 채색적인painterly 혹은 색면적인colour-field 것으로 양분했지만 그가 타계한 후 유행한 모노크롬 회화의 경우 이는 선적이지도 회화적이지도 않아 그의 이분법적 분류에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고, 이를 아서 단토는 <예술의 종말 이후>에서 지적했습니다.

그가 회화적인 것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추상을 염두에 두고 한 말로 이해됩니다.
뵐플린의 제자 빌헬름 보링거Wilhelm Worringer(1881~1965)는 박사논문 <추상과 감정이입>을 뵐플린에게 제출했는데, 보링거는 추상의 필연성을 주장한 사람입니다. 보링거가 논문을 쓸 당시 칸딘스키와 그의 추종자들이 뮌헨을 중심으로 추상 미술을 추구하고 있었고, 파리에서는 입체주의자들이 사물을 면으로 잘라 분석하는 반추상을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주변의 변화 속에서 쓴 논문이라서 시대정신에 부합되었으며 따라서 보링거의 논문은 책으로 발간되어 재판을 거듭거듭하면서 유명해졌습니다.
제자의 이런 논문을 심사한 것으로 보더라도 뵐플린이 회화적으로의 발달을 주장한 것은 추상화되는 당시의 미술세계를 잘 알고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뵐플린의 순수가시성의 다섯 도식은 유명하고 그의 이름은 빈 미술사 학파를 정초한 알로이스 리글Alois Riegl보다 더 유명하지만,
리오넬로 벤투리Lionello Venturi는 <History of Art Criticism>(1936)에서 뵐플린에 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뵐플린의 사상은 리글보다는 훨씬 더 고도로 세련되어 있지만 독창성을 뒤떨어진다. 가장 중요한 점은 그의 취미가 르네상스와 바로크 미술에 한정되어 있고, 리글의 장점인 폭넓은 보편성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뵐플린은 프리미티브 파 화가들의 미술을 이해하지 못했으므로 그들의 미술에 관해 논할 때 그 미술의 딱딱함, 비긴밀성, 통일성의 결여 등에 관해 말하고 있다."

르네상스에 정통한 벤투리가 뵐플린을 이렇게 비판한 이유는 다음의 이유에서 입니다.

"부르크하르트가 그에게 문화사를 가르쳤고, 힐데브란트는 시각상의 역사를 가르쳤기 때문에 뵐플린은 문화사의 필요성과 미술에 있어서의 심리학적인 전통을 특히 민감하게 자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갖가지 역사적인 방법들을 병치한 결과, 그 방법들은 혼란스러워졌으며 여전히 불완전한 채로 남아 있게 되었다."

벤투리가 <History of Art Criticism>을 쓴 것은 미국에서였습니다.
이 책을 쓴 후 Johns Hopkins University의 객원교수로 초대되었습니다.
1955년에는 Columbia University에서 강의하기도 했는데,
벤투리의 시각은 다분히 미국적일 수 있고 그런 의미에서 스위스 미술사학자로 독일에서 활동한 뵐플린의 사상과는 다르며, 단토도 뵐플린을 비판했지만 미국식 비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뵐플린에 대한 이런 비판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그의 저서를 읽은 것이 유익할까 해서 하는 말입니다.
아무래도 나중 사람의 비판에 설득력이 있을테니까 말입니다.

뵐플린의 다섯 개의 도식은 동일한 현상에 대한 다섯 가지 관점으로 벤투리뿐 아니라 몇몇 사람들이 그의 도식 사용에 문제점을 지적하자 뵐플린은 불가피하게 수정했으며,
벤투리의 말을 빌면,
"뵐플린은 보다 신중하게 형식과 내용간의 날카로운 구별을 회피하면서 각각의 새로운 시각 양식 속에는 새로운 세계가 구체화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다르게 볼 뿐만 아니라 다른 것을 보고 있다. ...
여기에서 뵐플린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일체의 미술작품의 본원은 생명에 있는 것이지, 이전 시대의 미술작품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못했다."

벤투리와 단토 외에도 뵐플린의 이론에 대한 비판이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읽도록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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