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흥’ ‘인상’ ‘구성’


칸딘스키는 1909년 여름부터 ‘즉흥 Improvisation’ 연작을 그리기 시작했다. ]
‘즉흥’ 연작에서 인물, 건물, 산 등의 형태가 불분명하게 나타나는데 그것들은 재현적 형태가 아니라 기호의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즉흥’이란 제목은 그가 가능한 한 자발적인 방법으로 그리고 의식적 제어작용을 극소화한 상태에서 화면의 구성을 완성했음을 시사한다.
‘구성 Composition’ 연작은 ‘즉흥’에 기반을 두고 계획적으로 확장시킨 것들이다.
1913~14년에 제작한 다수의 작품에서 특정한 대상의 형태를 생략했음을 본다.
그것들은 기하적 추상과는 구분되며 추상에 이르는 또 다른 과정으로서 특기할 점은 기하적 추상과 칸딘스키의 비정형 추상을 적대적 양식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913년 [폭풍]에 기고한 논문에서 칸딘스키는 ‘즉흥’ ‘인상’ ‘구성’을 규정했다.

1. ‘인상 Impression’은 외부 자연으로부터의 즉각적인 느낌이다.

2. ‘즉흥’은 무의식적이며 자연 발생적이고 내재적이며 비물질적인 전체의 특성을 지닌 표현이다.

3. ‘구성’은 장기간의 작업을 통해 서서히 형성되며 현학적 면모마저 지니는 내재된 느낌의 표현이다.

여기서는 이성, 의식, 확실한 목표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이 역시 계산이 아닌 느낌에 의해 이루어진다.

‘인상’ 연작 중 하나로 <인상 III - 콘서트>(1911)를 예로 들면 이 작품은 칸딘스키는 아르놀트 쇤베르크의 음악회에 다녀온 후 그린 것으로 ‘인상’은 “외부세계에 대한 직접적인 인상 a direct impression of external nature”을 표현하기 위해 선택한 제목이다.
그가 말한 인상은 시각적 인상뿐 아니라 비재현적인 방법으로 표현하는 모든 종류의 감각적 인상을 의미한다.
이 작품은 특히 청각적 체험에 대한 인상을 표현한 것으로 형태와 색을 콘서트홀의 분위기와 소리에 대한 상징으로 표현하면서 노란색과 검은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도록 흰색으로 보완했다.
그는 청각적 인상과 시각적 인상을 동시에 표현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검은색을 칠한 면은 무대 위의 그랜드 피아노를 상징한 것이며 왼편 여러 개의 검은 곡선들은 무대 가까이 앉아 있는 청중이다.
피아노를 중심으로 양편의 흰 기둥은 소리기둥을 은유한 것이다.
가장 인상을 주는 요소는 노란색으로 상징되는 쇤베르크의 소리가 홀을 가득 매운 것이다.
노란색은 칸딘스키에게 소리를 상징하는 색으로 1909년 무대 구성에 관한 글에 {노란 소리}란 제목을 사용했다.
이 작품은 회화와 음악이 서로 영향을 주는 공감각synesthesia을 표현한 것으로 공감각은 20세기 초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클레의 작품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칸딘스키는 색과 각 악기의 소리를 연관시키면서도 회화와 음악에는 자체의 특정한 자원이 있다고 주장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칸딘스키는 신지학theosophy과 강신술spiritualism에 심취해 있었으며, 인지학anthroposophy 사상가 루돌프 스타이너Rudolf Steiner의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신지학에 관한 많은 논문을 소장한 시인 스테판 조지Stefan George를 중심으로 한 뮌헨 서클에 관련되어 있었다.
이런 배경 안에서 그는 내면의 경험 혹은 정신적 현상을 시각화하는 일에 전념했다.
<즉흥 19>와 <즉흥 19a>(1911)는 이런 창작 환경에서 창안된 것들이다.
색이 분방하고 모호하게 칠해져 물체와 공간이 구별되지 않는다.
다양한 밝은 색들이 사용되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어두우며 색과 색이 마찰을 일으킨다.
이 작품은 자연에 정신이 내재해 있다는 가정 하에 그것을 표현하려고 한 것이다.
자연에서 받은 느낌을 전달한 것이다.
언덕을 가로지르는 뾰족한 산 정상은 자연의 형태를 떠나 칸딘스키의 직관에 의한 회화적 구성 요소로 변형되었다.


<즉흥 21a>(1911)는 1911년에 제작한 작은 유리그림 <태양과 함께>를 변형시킨 것이다.
그는 1913년에 <단순한 기쁨>이란 제목으로 다시 유화로 제작했다.
세 작품 모두 동일한 주제를 사용했지만 약간 다른 양식으로 제작되었으며 모두 유리그림의 회화적 언어를 사용했으므로 그의 추상 의지와 과정을 알게 해준다.
<태양과 함께>의 이중 언덕은 그의 다른 작품에도 종종 등장한 언덕으로 예외 없이 그곳에는 낯익은 러시아 건축물이 실루엣으로 세워져 있다.
왼편에 세 기사가 말을 몰고 언덕을 올라가고 있고, 상단 오른편에 검은색의 구름이 있으며, 그 아래 세 사람이 탄 보랏빛 배가 물결을 가르고 호수를 지나고 있다.
이 작품은 새로운 정신적 시대가 열렸음을 알리는 칸딘스키의 묵시론적 관념의 세계이다.
<태양과 함께>를 염두에 두고 <즉흥 21a>를 보면 이해가 수월해진다.
<즉흥 21a>를 그린 지 약 18개월 후인 1913년 여름에 그는 <단순한 기쁨>을 그렸다.
<태양과 함께>에서의 상단 왼편 빛을 발하는 대각선으로 흰색을 칠한 곳이 <즉흥 21a>에서는 붉은 태양이 삽입된 곳이다.
언덕 위에는 <태양과 함께>에서와 마찬가지로 둥근 지붕을 한 러시아 교회가 있다.
언덕 왼편의 말을 몰고 올라가는 세 기사는 여기에서 그리고 <단순한 기쁨>에서는 더욱 생략되었다.
노 젓는 세 사람의 모습도 역시 흐릿한 색으로 더욱 생략되었다.
특히 <즉흥 21a>에서는 색을 문질러 흐릿하게 한 부분들이 많으며 <태양과 함께>에서의 밝은 색상들이 회색으로 덮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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