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가로 명성을 날린 김규진





김규진(1868~1933)은 1868년 평안남도 중화군 상원면 흑우리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고 18살 때 청나라로 가서 8년 동안 체류하며 글씨와 그림을 배워 대륙기질의 서화가가 되었다.
그는 북경에서 중국인 진씨의 도움을 받아 서화를 배우며 북경 화가들과 교류했고 명가의 방문과 지도를 받게 되었다.
1893년 가을에 귀국한 고향에서 활동하다가 1896년 29살 때에 서울로 진출했다.
그는 청국어에 능통했으므로 상경 즉시 궁내부 주사 관직을 얻었고 그 후 1907년까지 궁내부 부서였던 내장사 주사, 예식원 문서과장, 비서관, 시종원 시종 등을 거쳐 경리원 기사직을 지냈다.
그는 1901년부터 어린 왕세자였던 영친왕(이근)의 서사書師선생)로서 왕실에 접근해 있었다.
궁내부에서 여러 관직을 역임하면서 왕세자의 글씨 선생으로 시어侍御라는 직함도 받아 수시로 궁중을 출입하면서 서예가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화가로서도 활동했다.
그가 1920년 창덕궁 희정당 내부에 그린 벽화는 <금강산 만물초 승경 金剛山萬物肖勝景>과 <해금강 총석정 절경 海金剛叢石亭絶景>이었다.


그는 글씨에서 행서, 초서, 대필서에서 특출한 필력을 발휘했고 그림은 분방한 용필의 묵죽을 위주로 하여 묵란, 묵국 등 사군자 범주의 묵화에 치중했다.
그러나 산수화와 화조화도 종종 그렸으며 말을 그리기도 했다.
1914년에 그린 <유하백마 柳下白馬>는 소품이지만 그의 역량과 자유로운 표현을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수묵필치로 대범하게 표현한 고목 버드나무의 형상, 강한 바람에 의해 온통 오른편으로 심하게 흔들리는 버들가지의 소란스러운 움직임, 청록색 담채의 신선한 생동감이 현대 화가의 참신한 표현주의를 방불케 한다.
버드나무를 배경으로 엷은 황록색 담채의 풀언덕에 뛰어든 백마의 사실주의 묘사에서 보이는 명쾌한 묵선과 선명한 흰색 표상미도 더할 나위 없는 표현기량을 엿보게 한다.
심하게 바람을 탄 버들가지의 움직임과 반대 방향으로 백마를 달리게 함으로써 시각적인 속도감을 더하여 준다.
버들가지의 투명한 청록색조와 백마의 흰색이 상쾌한 대비를 이루는 것도 지적할 만하다.
언덕 너머 공간에도 전면 푸른 색조로 깊이감이 생기게 담채를 부여해 근대적 화면을 창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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