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도(1630~1707년 이후)
석도의 본명은 주약극朱若極이다.
아버지 주형가가 감국監國을 자칭한 죄로 복주에서 처형당하자 태감太監이 어린 그를 데리고 도주했고 그는 후에 승려가 되었다.
그는 청초의 승려화가로 창조를 주장하고 옛 것을 모방하는 데 반대한 산수화의 대가가 되었다.
그는 저서 『화어록 畵語錄』에서 “일一로서 만萬을 다스리고 만으로써 일을 다스린다”고 했는데, 개별과 일반, 보편과 특수의 관계로서 그의 변증법적 사상을 표현한 말이다.
그는 『화어록』에서 일획이란 말과 이와 동의어인 36개의 일一자를 사용했다.
대부분의 석도 연구자들은 일획은 곧 일필일획 혹은 “붓을 일으키거나 붓을 대는 것(起筆落筆)”이라 하여 일一이 서수序數라고 본다.
석도는 당시의 복고주의에 반대하여 말했다.
“비록 어떤 화가를 핍진하게 닮았다 하더라도 또한 어떤 화가가 먹다 남은 국을 먹는 것일 뿐이다.
…
예전 사람의 수염과 눈썹은 나의 얼굴에 날 수 없고 예전 사람의 폐와 내장은 나의 배와 창자에 들여놓을 수 없다.
…
내가 예전에 대하여 어찌 배우기만 하고 변화시키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필묵의 기교에 관해서는 “먹은 정도正道를 닦지 않으면 정기精氣가 없고 필은 생활生活이 없으면 신묘하지 않다”고 했다. 그는 “필과 먹이 마땅히 시대를 따르는”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