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유




정대유(1852~1927)는 서예가이며 괴석과 난죽을 주로 그린 문인화가 정학교의 아들로 아버지와 같이 서화에서 탁월함을 보였다.
대한제국시대에 외부와 농상공부에서 국장을 역임했고 한일합방 후에는 서화가로 활동했다.
서화협회가 결성되자 13인의 발기인들 중 한 명으로 참여하여 후진에게 서법과 문인화를 가르쳤으며, 1922년 선전이 시작되자 김규진, 김돈희와 함께 사군자가 포함된 서부의 심사위원을 여러 차례 역임했다.


그의 문인화는 거의 전해지지 않고 낙장으로 발견된 <괴석 怪石>은 1918년 누군가를 위해 조석진, 안중식을 비롯한 7명의 화가가 작은 크기로 한 폭씩 그려 화첩을 만든 것들 중 하나이다.
낙관에 “우연히 독필을 시험하였으나 잘 되지 못해 부끄럽다”고 적혀 있다.
소품이지만 묘취 있는 형상과 츨필 기법 및 담채의 표현이 고격하고 괴석이 입체적으로 묘사되어 현대적 표현의 형상물로 보이면서도 짙은 청록색을 수반한 작은 태점들로 전통 화격을 유지한다.
곳곳에 찍은 세모꼴의 태점들이 작은 수묵점들과 조화를 이루고 돌틈의 난초잎 수묵선들이 괴석에 자연적인 정취를 보태준다.
화제 보천여흔補天餘痕은 “하늘의 이지러진 곳을 채운다”라는 뜻으로 여왜씨女蕃氏가 하늘의 이지러진 데를 기웠다는 중국 고사에서 인용한 글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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