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미술




1)아스카 시대와 나라 시대

아스카 시대의 미술은 크게는 중국의 육조 시대 위나라와, 직접적으로는 우리 나라의 백제와 신라의 불교 미술 양식을 받아들였다. 백제의 아좌태자는 일본에 건너가 성덕태자상을 그려주었다고 한다. 다카마쓰 옛 무덤의 벽화는 고구려 바탕에 토착 요소가 가미되어 있어서 일본의 고대 문화가 한국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 것이다.

나라 시대의 미술은 중국 당나라 미술을 받아들여 불교 미술이 성행하였으며 고구려의 영향을 받았다. 대표적인 그림으로 고구려 스님 담징이 그린 법륭사 금당벽화인 「아미타정토도(阿彌陀淨土圖)」는 일본 회화 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자랑하고 있다.




2)헤이안 시대

헤이안 시대(794-1185)는 견당사 파견을 중지한 894년을 분기로 하여 헤이안 전기와 헤이안 후기로 양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헤이안 전기는 나라시대 이래 당의 문화가 일본으로 이행되는 과도기라 할 수 있다. 불교는 사이쵸와 구우카이가 당불교의 교학을 배우고 돌아와 천태종과 진언종을 창시했다. 궁중에서는 한시와 한문이 성행하는 등 높은 수준의 문화가 형성되었고, 9세기 후반에는 '가나'문자가 나타났다. 9세기말에는 독자적인 일본 문화가 성장했다. 10세기경에는 권문세가의 장원이 늘어나 화려한 궁정 문화가 조성되었다. 헤이안 후기에는 자연을 동경하여 자연과 생활을 조화시키는 주택 건축 양식이 생겼다. 이 때 야마토에 등 여러 분야에서 일본 양식이 성립되었고 이후 일본 문화의 고전이 되었다. 11세기에는 궁정 문화가 완성되었으며 정토교 미술이 유행하였다. 한편 민중에 관심을 돌린 설화문학과 민중의 모습을 소재로 다룬 에마키모노가 나와 귀족 사회 말기의 새로운 시대적 기운을 반영했다.




3)카마쿠라 시대

카마쿠라 시대(1185-1333)는 쿄토의 공가(公家)와 카마쿠라 지방의 무가(武家)가 대립 또는 교류하면서 이원적 문화가 형성되었던 시기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강력한 힘을 추구했던 시대의 내면에는 아름다움을 회상하는 무상관(無常觀)이 감돌았다. 새로운 미술의 출발점은 도다이지의 부흥 사업이었다. 남송의 건축 양식이 채용되고 텐표 양식의 복고적 성격의 불상 조각이 조성되었다. 후반에는 무가의 지지를 받은 선종의 송원 문화가 카마쿠라에 이식되어 수묵화가 시작되기도 했다. 한편 정토종·진종·시종등 신흥 종파와 남도 불교는 포교활동에 에마키모노를 활용했고, 수이쟈쿠 미술도 성행했으며 민중의 감각이 미술에 나타 나기도 했다. 말기에는 쿄토·카마쿠라에 중국 취향이 강하게 나타났다.




4)무로마치 시대

일본 무로마치 시대(1333-1573)는 새로운 아시카가 막부의 권력과 남북조 통일, 대명 무역 등을 기반으로 한 시대였다. 이 시대의 미술은 선종미술과 무가(武家)의 카라모노(唐物) 취미등으로 상징된다. 송원화(宋元畵)를 규범으로 한 정상과 도석인물화가 부흥하고, 카오오와 모쿠안등의 선승 화가가 나타 났다. 1368년부터 1441년까지 계속된 키타야마 문화에서는 수묵화가 애호됐고, 공무(公武)와 연가(連歌)가 성행하였다. 슈분은 남송과 조선의 산수 양식을 섭취하여 수묵화를 일본화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1467년부터 히가시야마 문화가 탄생했는데 이 시대 문화적 성격은 서원·정원 ·차 꽃등을 취미로 하는 왕조문화와 민중 문화의 성숙을 특징으로 하는 장식적인 쇼헤이화 와 공예등이 발전했다. 특히 한화(漢畵)가 융성했는데 소오탄, 쇼오케이, 가쿠오를 비롯하여 다이토쿠 지일파, 코아미파, 카마쿠라파, 카노 오파등이 유명하다. 카노오파의 카노 모토노부는 야마토에의 기법을 가미하여 근세 회화의 기초를 확립 했다.




5)모모야마 시대

일본 모모야마 시대(1573-1615)는 쇼쿠호 정권에서 도쿠가와 막부의 강력한 권력에 의해 근세로 진입한 시기로, 고대·중세적인 권위의 몰락을 반영한 강렬한 표현과 호화로운 장식을 보여주는 현세주의적 인간 중심의 문화적 경향을 볼 수 있다. 전국을 통일한 여력은 장대한 성을 구축하고, 미술의 제 분야를 동원 하여 장대한 장식 미술을 창출했다. 평화로운 현세를 반영한 의장(意匠) 감각과 고전 문화의 부흥을 의도한 공공연한 결집 등의 기운도 이 시기의 특색이다. 또 하나의 특징으로 센리큐의 '와비차'는 간소하고 한적한 미의식을 추구하여 당시의 호화로운 미의식에 대응했다. 여기에서 일본화적인 독자적 화풍이 싹트기 시작한다. 무가의 초상화, 부처와 부인상, 유아상등 풍속화가 확립되었고 쇼헤이(障屛) 그림의 황금 시대를 이루었다. 금·은을 사용한 금벽화가 유행하였다. 소서원(小書院)등의 사적인 곳에서는 수묵화를 선호했다. 이 시대의 화가들은 중국 그림을 일본화하고 다각적인 표현으로 유파를 형성했는데 카노오파가 대표적이다. 성화(聖畵)의 모사와 서양 판화의 제재를 이용한 인물도, 세계도 등을 제작한 풍속도 있었다.



6)에도 시대


에도 시대(1603-1867)에는 막번체제 확립에 의한 봉건 사회가 완성되고 사농공상의 신분제와 쇄국 등의 정책으로 국내 평화가 유지된 시기였다. 상공업의 발달과 민중 계급이 형성되고 봉건제와의 갈등이 표출된 갖가지 문화가 이루어졌다. 초기에는 모모야마 양식이 남아있는 웅장한 금벽장 벽화가 묘사되어 화조 화, 풍속화 등이 주제가 되었다. 전통적인 미술이 보급되었고, 주자학을 관학으로 한 무가의 미적 선호 경향이 나타났다. 소타즈는 민중을 기반으로 하여 야마토에의 전통을 장식적이고 독특한 양식으로 창조했는데 이것은 린파로 계승되었다.
또 신흥계급의 성장으로 사치스런 속세의 향락을 추구하는 미술이 전개되었다. 중기 이후에는 나가사키를 통하여 수용된 청나라와 네덜란드의 지식에 의해 서양화가 탄생했다. 후기에는 막번의 모순이 심화되어 퇴폐적인 풍조가 가득했고 도시 대중들 사이에는 가부키등 상징적인 미의식이 유행했다. 나가사키를 통해 들어온 유리공예는 병, 그릇 , 잔 등으로 실용화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