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 유학파
고희동의 노력으로 1918년에 출범한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 단체인 서화협회는 이듬해 일어난 민족봉기 3.1운동과 안중식, 조석진 두 사람의 잇단 타계로 1921년 4월 1일에야 창립전을 개최했다.
언론은 이 전람회를 주목했다. 『동아일보』는 4월 2일자 지면에 기사를 적었다.
“꿈속에 있던 조선 서화계의 깨우는 첫 소리 … 서화협회의 첫번 서화 전람회는 예명과 같이 일일 오전부터 계동 일번지 중앙학교에서 첫날을 열었다.
침쇄 하기 거의 극한에 이르렀다 할 우리의 서화계로부터 다시 일어나는 첫걸음을 걸으려 하는 이 새 운동이 과연 어떠한 성적을 보일는지 이 전람회의 성공과 실패는 조선 서화계에 대하여 중대한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1920년대 초에 단체들이 생겨났지만 동인들의 이익을 대표하는 소규모 그룹들이었다.
1923년에 결성된 고려미술회는 창작을 발표하고 강습소를 운영하는 단체였다.
이 단체의 회원은 박영래, 강진구, 정규익, 김석영, 김명화, 나혜석, 이병직, 이재순 등이었고 이들은 후진을 양성하는 강습소 교수로 김복진과 김은호를 초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