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덕




최재덕(1916~)은 경상남도 산청의 큰 지주 집안 태생으로 서울에서 고등보통학교를 다닌 후 동경으로 가서 서양화 전문의 태평양미술학교에 입학하여 1학년을 수료한 후 1936년 4월 제국미술학교 본과 서양화과에 입학했지만 그 해 6월에 중퇴했다.
1940년을 전후하여 동경에서 수학하는 동안 이쾌대 등과 함께 서양화 전람회에 수차례 입선했고 이 시기에 서울의 선전에도 출품하여 입선했다.
그가 이과전에 입선한 것에 대해 1939년 9월 7일자 『조선일보』는 보도했다.


“도쿄화단 가을의 ‘씨츤’인 두頭에서 열린 이과전은 3일부터 공개되었는데, 그림은 총 반입수 3,790점에서 입선작품 429점의 대성황이었다고 한다.
그림과 조각을 통한 신입선 97점 중에는 조선 화가로는 최재덕 씨의 이름이 보일 뿐이다.
그리고 작년에 초입선한 이쾌대 씨(일본미술학교 출신)는 금년에도 연해 입선의 영광을 얻었다 한다.”


그는 1941년에 조선신미술가협회에 창립회원으로 적극 참여했으며, 해방 후에는 미술동맹의 간부로 활약했고, 정부 수립 후 이쾌대, 김만형 등과 함께 보도연맹에 가입하여 사회주의 이념을 버린 듯이 보였으며, 세 사람 모두 1949년 제1회 국전에 추천작가로 참여하면서 <산>을 출품했다.
세 사람을 포함하여 다수의 작가들이 6·25동란 후 공산군 점령 하에 서울에 등장한 조선미술가동맹에 가담하게 되었고 결국 월북하게 되었다.
월북 후의 그의 활동에 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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