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주의Constructivism




구성주의는 많은 현대 미술 용어와 마찬가지로 명확히 규정되어 있지 않으며 용어의 사용도 일원화되어 있지 않다.
구성주의와 구성주의적Constructive이라는 용어는 1900년대와 1910년대에는 충동적이고 즉흥적이지 않으며 치밀하게 구성된 미술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당시 구성주의로 분류된 작품이 모두 현재에 구성주의로 일컬어지는 범주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1920년대에는 목적과 관념이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운동이 동시에 구성주의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하나는 소비에트 러시아에 국한되어 일어났으며, 다른 하나는 유럽의 여러 국가에서 일어났다.
현재는 후자를 국제적 구성주의 또는 유럽 구성주의라고 명명하여 러시아 구성주의와 구별한다.


러시아 구성주의가 매우 구체적인 명칭인 반면 유럽 구성주의는 의미가 모호하며 점차 비재현적, 또는 비표현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광범위한 화파와 양식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동일한 명칭 때문에 두 운동은 근본적으로 하나인 이론의 두 가지 갈래인 것처럼 논의되었으며 이로 인해 혼란이 야기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스티븐 맨은 1974년 구성주의 관련 자료 모음집인 『구성주의 전통 The Tradition of Constructivism』에서 러시아 화가, 조각가, 그래픽 디자이너 엘 리시츠키El Lissitzky(1890~1941)가 구성주의와 ‘새로운 인간 New Man’을 동일시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적었다.


“구성주의에 대해 분명하게 밝힐 수 있는 것은 구성주의가 인간의 감정과 외부 세계 사이의 수동적으로 부여된 조화를 배격한다는 점이다.
반대로 구성주의는 인간을 호의적이지도, 적대적이지도 않은 세계 속에서 스스로 질서를 창조하는 자로 보며, 예술가는 이런 질서의 유형을 결정하는 데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주요 유럽 구성주의 화파 중 러시아 구성주의의 기본적인 이념을 수용한 화파는 전혀 없다.
오히려 유럽 구성주의의 목적과 작품은 러시아 구성주의자들이 선언문을 통해 ‘순수 미술’이라고 비판한 종류의 것이었다.


유럽 구성주의는 전통 미술의 근본적 토대를 무분별하게 공격한 다다이즘, 그리고 무의식적인 창조와 자동주의라는 초현실주의 강령에서 지침을 찾은 충동적이고 직관적인 구성에 대한 반동에서 비롯되었다.
구성주의는 다다이즘 그리고 초현실주의와는 달리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미적 원리와 일치하는 의식적이고 신중한 구성을 지지했다.
유럽 구성주의 예술가 단체의 최초의 공식 선언은 1922년 뒤셀도르프에서 개최된 국제 진보예술가대회에서 이루어졌다.
이때 테오 반 두스뷔르흐Theo van Doesburg(1883~1931), 리시츠키와 한스 리히터Hans Richter(1888~1976)는 국제 구성주의 분파의 이름으로 연합 시위를 벌였다.
1920년대에는 공식적인 조직은 형성되지 않았지만 구성주의 원리를 문학, 건축, 영화에 확산시키려는 시도가 있었다.


1930년대 후반 많은 구성주의 예술가들이 2차세계대전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하여 런던에 정착했다.
러시아계 미국 조각가 나움 가보Naum Gabo(1890~1977), 나움 가보의 형 러시아계 프랑스 조각가 앙투안 페브스네르Antoine Pevsner(1886~1962), 항가리계 미국 화가이며 조각가 라슬로 모흘리-나기Laszlo Moholy-Nagy(1895~1946), 독일 건축가로 바우하우스의 설립자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1883~1969), 네덜란드 화가 피트 몬드리안 등이 영국으로 피신했다.
이들은 데임 바바라 헵워스Dame Barbara Hepworth(1903~75), 벤 니컬슨Ben Nicholson(1894~1982), 헨리 무어Henry Moore(1898~1986), 비평가 허버트 리드Sir Herbert Read(1893~1968)와 교류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곧 미국으로 이주했으므로 1950년대까지 영국에서는 독자적인 구성주의 운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1937년 가보는 벤 니컬슨, 젊은 건축가 J. L. 마틴과 공동으로 ‘구성주의 미술에 대한 국제적인 고찰’이라는 부제가 붙은 자료 모음집인 『서클』을 편집했다.
가보는 여기에 ‘미술에 있어서의 구성주의적 이념’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 글에서 가보는 ‘구성주의적 이념’을 확장시켜 이를 과학, 예술 또는 기타 영역에서의 ‘뛰어난 창의력’과 구별하지 않았다.
그는 입체주의가 자연주의적 미술을 완전히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입체주의 이후 미술계에 남은 것은 폐허뿐이었다.”

자연주의적 미술을 복원시킬 토대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적었다.


“대상 세계의 외관을 재현하지 않는 미술이라는 것은 예전에는 결코 생각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입체주의 이후 미술의 회생은 매우 힘들었다.
구성주의 이념은 선, 색채, 형태와 같은 시각예술 요소는 외부 세계와 무관한 독자적인 표현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편적인 법칙으로 한다.
즉 이러한 요소들의 생명과 활동은 이간의 본성 속에 내재되어 있으면서 스스로 조절되는 심리적 현상이다.
이는 단어와 숫자처럼 공리적인 이유 때문에 관습적으로 선택되는 것이 아니며, 단순한 추상적 기호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과 즉각적이고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법칙이 드러나면서 미술의 영역이 광범위하게 확장되어 그 동안 간과되었던 인간의 충동과 감정 표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이러한 요소들은 문학이나 시 등으로도 가능한 이미지의 연상을 위해 잘못 사용되어 왔다.”


가보의 주장은 구성주의의 의미를 확대시켜 표현적 추상을 비롯한 모든 비재현적인 추상 미술을 함께 아우르는 것이었다.
이는 칸딘스키의 생각과 유사하며 일반적으로 정서적 표현이 배제된 것으로 여겨지는 구성주의보다는 표현적 추상에 적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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