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문화협회




1939년에 결성된 미술문화협회의 중심인물은 일본에 초현실주의를 유행시킨 후쿠자와 이치로였다.
시인 앙드레 브르통이 1924년에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문’이 일본에 유입된 것은 1925년 문학에 의해서였으며 1930년을 전후로 초현실주의 작품이 이과전에서 하나둘씩 소개되었다.
후쿠자와 이치로福澤一郞가 1931년 파리에서 귀국하면서 조르조 데 키리코, 막스 에른스트 등의 영향이 나타난 초현실주의 작품을 발표하면서부터 이 이념이 유행했다.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1888~1978)


그리스 볼로 태생의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는 형이상학적 회화의 창시자이다.
1906~09년 뮌헨에 머무는 동안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철학에 흥미를 가졌고, 1909`~10년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수수께끼 그림을 그렸다.
이 작품들은 움직임이 없는 빈 공간, 비논리적인 그림자, 예기치 못한 원근법으로 인해 설명할 수 없이 이상하고 불편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파리에 머무는 동안 사물의 일반적 관계를 무력화하고, 새롭고 신비로운 관계 속에 위치시킴으로써 일상적인 사물 뒤에 있는 숨겨져 있는 현실을 볼 수 있게 하는 ‘형이상학적 통찰력’에 대한 정교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키리코는 사물들이 본래 지니고 있는 정서적 의미를 없애기 위해 1914년부터 인간의 모습 대신 재봉용 마네킹을 그렸으며, 그 외에도 조상, 석고 두상, 고무장갑 등을 그렸다.
또 사물의 병치와 회화 공간의 형식적 특성을 이용하여 불안한 분위기를 창출했다.
이런 면에서 그는 초현실주의의 한 특징을 예견했다.
비록 초현실주의의 자동주의 기법을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키리코 작품에서 보이는 반쯤은 꿈같고 반쯤은 병리학적인 효과를 지닌 신비스러움은 초현실주의자들이 목표로 한 정서적인 효과와 유사했다.
또한 초현실주의 운동은 “미술 작품에는 상식과 논리가 들어올 자리가 없으며 훌륭한 작품은 꿈이나 어린이의 정신 상태와 매우 가깝다”는 키리코의 믿음과 전적으로 일치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의 그림은 더욱 철저한 묘사와 엄격한 기법을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의미는 결여되어 있었다.


막스 에른스트Max Ernst(1891~1976)


독일계 프랑스 화가 막스 에른스트는 1908~14년 본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해지만 회화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정신질환자의 그림에 매료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1919년 쾰른의 다다 그룹을 이끌었으며 ‘다다막스’란 이름으로 활동했다.
또한 콜라주와 포토몽타주 기법을 초현실주의에 접목시켰다.
1922년 파리에 정착하여 이런 기법들을 퍼뜨렸으며 1924년 초현실주의 운동의 형성에 참여했다.
에른스트의 작품은 종잡을 수 없고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주며 항상 실험적이었다.
전성기에 제작한 작품들은 초현실주의 작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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