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할 수 있는 사람은 창조할 수 있다.”


김광우의 <프랑스 미술 500년>(미술문화) 중에서





이 책은 15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약 500년에 걸친 프랑스 미술을 다루는 것이므로 프랑스 역사를 함께 서술해야 하는 방대한 작업이 되었다.
역사란 한마디로 이야기이다.
하지만 누구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느냐에 따라서 이야기의 틀이 달라지고 그 내용의 본질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보통 권력과 부를 가진 궁정으로부터 시작된 미술사는, 왕족과 귀족의 선택이나 정치적 행동에 따라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정치적인 요인, 나라의 위상을 세우려는 의도, 또한 인접 국가들과의 문화경쟁이 크게 작용한다.
따라서 이야기는 수직적 구조로 단순하게 전개될 수 없고, 큰 틀 속에서 가지 많은 나무처럼 횡적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내용은 고딕 건축 이후 침체해 있던 프랑스 미술이 프랑수아 1세의 예술적 부흥에서 시작하여 지속적인 왕정 정책의 후원을 받아 쿠르베에 이르기까지, 즉 독자적인 회화를 창조해낼 때까지의 역사적 과정이다.
프랑수아 1세가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프랑스로 초청하고 늙은 레오나르도가 프랑스에 뼈를 묻은 것은 이탈리아의 영향 하에 프랑스 미술이 재건했다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다.
프랑스 왕정은 정치적으로 프랑스 미술을 앙양하기 위해서 여러 나라의 예술가들을 프랑스로 초청하는 재정적 뒷받침을 했다.
특히 이탈리아 예술가들의 공헌은 눈부셨으며, 프랑스 대혁명의 시기에 침공과 미술품 약탈을 통해 발생한 이웃나라 스페인의 영향도 매우 컸다.


서양 미술사를 하나의 큰 틀로 볼 때, 앞서 문명이 발달했던 이집트·고대 그리스·로마의 양식들이 끊임없는 모방을 통해 변형을 거듭해왔음을 볼 수 있다.
마네의 누드화의 뿌리는 티치아노에 닿아 있고, 티치아노의 양식은 조르조네에게서 비롯되었으며, 조르조네의 누드는 고대 비너스의 변형이다.
이런 식으로 모방에 모방이 거듭되어왔다.
따라서 미술사 공부는 최초의 양식이 누구의 혹은 어느 시대의 것이며, 그런 양식이 모방을 통해 어떻게 변형되었으며 시대적으로 어떻게 달리 해석되었는가 하는 것을 밝혀내고 이해하는 것이다.
필자는 프랑스 미술을 예로 하여 미술사의 형성과정을 말하고자 했다.
왕족의 취향과 정치적 변수에 의해 미술의 토양이 만들어졌고, 그 토양에서 모방이 가능해졌으며, 모방을 통해 자신의 창조성을 발견하고 만들어나가는 데서 프랑스는 미술의 선진국을 이룩할 수 있었다.


레오나르도가 모방할 수 있는 사람은 창조할 수 있다고 말한 대로 모방은 창조를 위한 자아수련이다.
그 당시는 모방이 아니고서는 기초를 쌓을 수 있는 방법이 특별히 따로 없었던 시대로서 뮤지엄이 곧 미술교실이었던 것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였던 대로 프랑스의 루브르 뮤지엄은 과거에 궁전이었고 또한 궁전 소장품들을 전시하는 곳이었으므로, 그곳에 걸린 작품들은 소수의 왕족과 귀족의 취향에 따라 선별된 것들이었다.
따라서 궁정의 취향이 일반 대중의 취향이 될 수밖에 없었고, 초기의 모방은 매우 한정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후 예술가들이 유럽의 나라들을 쉽게 여행하게 되면서 궁정의 취향보다는 일반 대중의 취향이 더욱 다양하게 나타났으며, 그런 다양성에서 독자적인 양식들이 창조될 수 있었다.


이렇게 되기까지 수세기가 걸렸다. 인터넷으로 모든 자료를 실어 나르는 오늘날에는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모방이 가능하고 따라서 창조도 빠르게 이루어지지만 말을 타고 다니던 시대에는 말의 속도만큼 더딜 수밖에 없었다.
르네상스로부터 19세기 중반까지에는 모든 것이 오래 걸렸으며 정치적 후원 없이는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런 점들이 이 책을 쓰는 동기가 되었다. 미술문화의 발전이 요구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프랑스의 정치와 미술사는 예술부흥을 위한 정치적 노력이라는 관점에서 귀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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