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주의의 정의

김광우의 <프랑스 미술 500년>(미술문화) 중에서







낭만주의라는 말은 르네상스시대부터 사용된 말로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이 국경에 있는 로마냐Romagna(로마냐는 로마Roma에서 온 말이므로 굳이 말하면 로마에서 파생된 말이라 하겠다), 즉 라틴어의 방언 로망스어로 쓰인 이야기라는 의미이면서 공상적 혹은 경이적이란 뜻도 내포하게 되었다. .


이 낭만적romantic이란 말의 근대적 기원은 17세기 영국에서 찾을 수 있다.
이 말은 통속어로 전래된 중세의 목인소설이나 기사에 관한 이야기, 예를 들면 아서 왕이나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 사용했다고 믿어지는 성배를 찾으려고 한 원탁기사의 이야기와 같은 중세 모험담에서 시작되었고, 또한 이를 전형으로 근대에 창작된 괴담에서 고딕·낭만 류의 황당무계한 바보 같음을 야유한 것을 기원으로 한다.
이런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로망스라고 부른 이유는 그것들이 라틴어가 아닌 낭만적인 언어 프랑스어와 이탈리아어로 쓰였기 때문이다.
기사도 정신에 입각한 이야기를 프랑스어로 로망스romance라고 하는데, 전기적인 이야기란 뜻으로 이것이 낭만이 되었다.


‘낭만적’이란 말은 ‘기발한 또는 환상적인’ 혹은 ‘있을 법 하지 않은’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미술의 한 양식으로 불린 것은 1798년으로 독일 평론가 프리드리히 폰 슐레겔과 그의 형 아우구스트 빌헬름 폰 슐레겔 그리고 노발리스가 관여한 기관지 『아테네움』(1798-1800)에서 낭만적 시를 가리켜서 이 말을 사용한 후 슐레겔 형제가 후원하는 환상적인 내용의 문학과 중세 미술 그리고 거칠고 원시적인 내용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미술에 사용되었다.


슐레겔은 낭만주의를 넓은 의미에서 근대의 특징을 지적하는 말로 사용했는데 근대 문학이 고전 문학과 다른 한에 있어서 ‘낭만적’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그는 그 특질로 개별적인 모티브의 우위, 철학적 모티브의 우위, ‘충만과 생명력’에서 얻어지는 쾌감, 형식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 규칙에 대한 완전한 무관심, 기괴하고 추한 것 속에 있는 평정함, 환상적인 형식으로 나타나는 감상적인 내용 등을 꼽았다.
그는 ‘낭만적’이란 명칭을 근대 문학 전체에 적용시켰으며 낭만주의는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에게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는 당대의 작가들에게서도 낭만주의를 발견했는데 거기에는 괴테와 실러같이 걸출한 인물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낭만주의의 선구자 괴테는 『독일 건축에 관하여』(1773)에서 스트라스브루크의 대성당을 예로 들어 고딕적 예술을 내면적 정신 혹은 감정에서 생겨난 주관적 원리를 좇는 예술로 보았다.
다시 말하면 낭만주의는 이교적 고대의 미에 반하는 기독교적 근대의 미로 본 것이다.


낭만주의라는 말이 독일 밖에서도 사용된 것은 프랑스의 여류작가 스탈 부인(1766-1817)의 『독일론』(1813)에서 소개된 후였다.
18세기 사람들은 사회적·정치적으로 유행하는 기존 가치관에 반발하면서 이성적·감정적 경험에 만족할 만한 것에 근거하는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고자 했다.
이성적·감정적 경험의 일반적인 공통점은 “자연으로 돌아가자 Return to Nature”였다.
이성주의자들은 자연을 이성의 궁극적 근원으로 존중한 데 비해서 낭만주의자들은 자연을 경계가 없고 거칠며 늘 변하는 것으로 숭배했다.
이들 모두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행위하는 한 악은 사라질 것으로 믿었으며 욕구에 자유를 부여했다.
이런 이상을 마음에 품은 낭만주의자들은 감정을 강렬하게 하는 것을 그 자체 목적으로 삼았다.


신속하게 생기는 경험을 영원한 형태로 남기기 위해서 낭만주의 예술가들은 이에 걸 맞는 양식을 필요로 했다.
그들은 기존의 질서에 반발했으므로 자신들의 시대에 유행하는 로코코 양식은 사용할 수 없었다.
그들은 과거에 경시했거나 냉소한 형태들을 재발견하고 채택하여 그것들 자체를 원리로 진전시켰으므로 재활된 양식들이 낭만주의 양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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