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한 낭만주의 개념

김광우의 <프랑스 미술 500년>(미술문화) 중에서







아르놀트 하우저는 낭만주의를 서양 정신사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의 하나로 보며 낭만주의자들은 스스로 역사적 역할을 의식하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고딕 이래 감수성의 발달이 그때처럼 강한 자극을 받고 자신의 감정과 본성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예술가의 권리가 철저히 강조된 적이 일찍이 없었음을 지적했다.


낭만주의자들이 묘사한 예술감정과 세계감정의 특징에는 늘 향수 아니면 고향상실이라는 사고가 나타나 있다.
낭만주의자들은 스스로 목적도 끝도 없는 방랑을 했고,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것을 찾고자 했으며, 찾은 후에는 그로부터 벗어나려는 고독을 택했다.
낭만주의자들은 세상으로부터의 소외를 괴로워하면서도 이런 소외를 긍정하고 소망했다.
그래서 노발리스는 낭만주의 시를 “쾌적한 방식으로 사물을 소외시키는 예술, 즉 사물을 낯설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친숙하고 매력 있게 만드는 예술”로 규정하며 모든 것은 “그것을 먼 곳으로 옮겨놓을 때” 낭만적·시적으로 되고 또한 “평범한 것에 신비스러운 외관을, 잘 알려진 것에 미지의 위엄을, 유한한 것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할 때” 모든 것은 낭만화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노발리스가 삶을 낭만적으로 묘사했을 뿐 아니라 삶을 예술에 적응시키고 미학적·유토피아적 생존의 착각 속에 잠기게 했다.
이런 낭만화는 인생을 단순화시키고 통일화하며, 모든 역사적 존재의 고통스러운 변증법으로부터 인생을 해방하는 것을 뜻하며, 해결될 수 없는 모순을 인생으로부터 제거하고 소원성취의 꿈과 환상에 대한 합리적 저항을 약화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혁명 이후의 시대는 한마디로 환멸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현재를 무미건조하고 공허한 것으로 느끼기 시작했다. 지식인층은 날이 갈수록 더욱 더 다른 사회계층들로부터 유리되었으며 정신적으로 활동하던 이들은 그들만의 고립된 삶을 영위했다.
속물이라는 개념과, 시민과 대비되는 부르주아라는 개념이 생겨났고, 예술가와 시인들이 자기들의 물질적·정신적 생존을 힘입어왔던 바로 그 계급에 대해 경멸과 증오를 퍼붓는 유례가 없던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낭만주의자들은 초기 낭만주의가 시도한 것처럼 자기들의 유미주의를 통해 다른 세계로부터 단절된 그리고 자기들만이 지배할 수 있는 하나의 영역을 구축하려고 했다.


예술가들에게 낭만주의는 자의로 그리고 타의로 붙여졌다.
낭만주의와 유사한 경향을 띤 과거 예술가들도 낭만주의에 속하게 되었다.
낭만주의의 선조인 디드로는 『극적 시에 관하여』(1758)에서 시는 “무지막대하고 야만적이며 미개한 것을 목표로 삼는다”라고 했는데, 이는 낭만적 속성들 중 하나이지만 낭만주의가 시작된 시기에 비하면 40년 전의 선언이었다.
원래는 작가들에게만 한정되었던 ‘낭만적’이란 명칭이 유사한 사고를 가진 당대의 다른 예술가들에게도 붙여지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면 화가로는 들라크루아·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조각가로는 당제르, 작곡가로는 슈만·베버·베를리오즈 등이었다.
작품의 형식이나 내용상의 유사성만으로 계보를 이루게 된 것이다.
심지어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이 계보에 속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밖의 사람들도 포함되었다.
타칭으로 분류된 예술가들 사이에 유대가 없었으므로 하나의 계보에 속했다 하더라도 공통된 권리를 행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낭만주의자라고 하면 매우 다양하고 서로 이질적인 인물들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 결과 낭만주의에 대한 정의가 애매모호하게 되어버렸다.


타타르키비츠는 낭만주의에 대한 무수한 정의 가운데 25개를 선별하여 저서 『미학의 기본개념사』에 소개했다.
타타르키비츠는, 이 모든 정의들은 다양하지만 어느 면에서 서로 관련이 있음을 지적했는데, 우선 낭만주의가 고전주의의 반대임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는 다양한 정의들에서 낭만적인 미를 다음과 같이 종합적으로 요약했다.
강력한 열정의 미, 상상력의 미, 시적인 것의 미, 서정적인 것의 미, 형식이나 규칙에 종속되지 않는 정신적이고 무정형인 미, 이상야릇함, 무한함, 심오함, 신비, 상징, 다양성의 미, 힘, 갈등, 고통의 미일 뿐 아니라 환상, 소원함, 그림같이 생생함의 미, 강력한 효과의 미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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