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용기를 준 잭슨 폴록
다음은 Naver에서 청탁한 원고입니다. `트렌드 지식창고`를 새로이 만들면서 검색순위 1위를 차지한 잭슨 폴록에 관해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2006년 11월 2일, 뉴욕타임스는 컬러 스파게티를 엉클어놓은 듯한 잭슨 폴록Jackson Pollock(1912-56)의 회화 <넘버 5>(1948)가 멕시코의 금융인 데이브드 마르티네즈에게 1억4천만 달러에 팔린 것을 보도하면서 이는 얼마 전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1862-1918)의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I Portrait of Adele Bloch-Bauer I>(1907)이 1억3천5백만 달러에 팔린 기록을 갱신했음을 세상에 널리 알렸다.
클림트의 초상화가 기록을 세우기 전까지만 해도 파블로 피카소Pablo Ruiz Picasso(1881-1973)의 <파이프를 든 소년 Garcon a la pipe>(1905)이 2004년 5월 5일 뉴욕의 소더비경매장에서 1억980만 달러에 팔려 세계 경매사상 최고가를 유지하고 있었다.
피카소는 자타가 공인한 한 세기에 나올까 말까한 미술가로 92해를 사는 장수를 누리면서 화화를 대량생산했더라도 세계경매시장을 누비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가 20세기 미술에 끼친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클림트는 어떠한가?
주로 부유층의 아낙의 초상을 당대에 유행하는 최고의 의상을 걸친 모습에, 우아하고 성적으로 매력적인 포인트를 차고 넘치게 부여하여 아낙으로 하여금 자신의 저택 거실에 걸어놓고 방문객들에게 미모를 뽐내게 해주었다.
게다가 비싼 황금을 넉넉하게 칠해 현대판 비잔틴 성상으로 만들어 종교적인 거룩한 분위기까지 만들었다.
거의 실제 인물의 크기에 비싼 황금을 발랐으므로 불과 두 달 전인 9월 18일에 1억3천5백만 달러에 팔렸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을 때만 해도 사람들은 그리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폴록의 스파게티가 두 사람을 제치고 정상에 오른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경악해하는 분위기이다.
스파게티가 초상화를 누르다니!
피카소와 클림트의 초상화는 분명 많은 시간을 요한 그림들이다.
그러나 폴록의 스파게티는 하룻밤에 그린 것이다.
화가의 인건비로 봐도 폴록의 작품에 놀라운 비용을 지불한 것이다.
그가 네이버의 검색순위 1위를 차지한 건 당연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그의 작품을 5달러 주고 샀다는 미국 할머니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폴록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졌다.
5달러짜리 스파게티는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곧 진품인지 판명 나겠지만 혹시 할머니가 끓인 스파게티는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든다. 왜냐면 피카소와 클림트의 그림을 모방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폴록의 그림을 모방하기란 너무나도 쉽기 때문이다.
잭슨 폴록의 생애를 짧게 정리하면, 1930년 가을 서부로부터 열여덟 살 시골뜨기의 모습으로 뉴욕에 왔다.
1939년에 알코올중독 치료를 받았고 또한 정신질환 치료를 18개월 동안이나 받았다.
우수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건 1942년부터였으며, 운 좋게도 다음해에 개인전을 열었다.
1942년 10월 20일에 뉴욕에 금세기 미술 화랑을 연 페기 구겐하임이 행운을 그에게 선사한 것이다.
폴록의 개인전을 뉴욕의 유명 잡지들이 일제히 보도했으므로 스타의 탄생이 단번에 이루어졌다.
그는 13년 동안 작품을 제작했고 1956년 8월 11일 술에 취한 채 뚜껑을 연 올드스모빌을 운전하다가 커브길에 속력을 줄이지 못해 전복되어 죽었다.
폴록은 벌써부터 인기를 누려야 마땅했을 화가였다.
그럴 기회가 얼마 전에 우리에게 있었지만 우리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폴락’이란 제목의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된 지 얼마 안 되어 흥행실패로 퇴출되었다.
그의 이름을 폴록이 아닌 Pollack으로 발음한 것도 문제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인물을 이름으로 소개한 것이 흥행실패의 요인이었다.
폴록의 그림을 본 사람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소묘를 할 줄 몰라도 돼. 붓을 살 필요도 없어. 물감깡통에 막대기를 넣었다가 꺼내 기분 내키는 대로 캔버스에 뿌리기만 하면 돼. 그것도 귀찮으면 깡통에 구멍을 내 이리저리 뿌리면 돼.”
그렇다, 그렇게 그리면 된다.
누구라도 폴록과 같은 그림을 결과물로 획득할 수 있다.
필자도 그런 실험을 해봤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경매장에 가서 <넘버 5>와 같은 그림을 1천3백13억 원의 돈을 지불하고 살 필요가 없다.
소묘할 줄 모른다는 소리를 폴록은 친구들로부터 들었고 그도 그 점을 인정했으므로 한때 회화를 포기하고 조각가가 되려고 했다.
인간은 불완전해야 노력하게 된다.
폴록은 소묘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사실적 묘사의 그림을 그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사물을 재현하는 그림 대신에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리기로 한 것이다.
감정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서 사실적 묘사를 할 줄 몰라도 할 수 있는 일이다.
격렬한 감정을 전달하는 데는 격렬한 행위가 따른다.
그는 그림을 그릴 때 격렬한 행동을 취했다.
어려서 서부에서 본 대로 인디언이 춤을 추며 모래에 그림을 그리듯이 그런 식으로 바닥에 늘어놓은 캔버스 주위를 신명을 내 돌아가며 물감을 뿌리고 떨어뜨렸다drip-and-pour.
따라서 평론가 해롤드 로젠버그Harold Rosenberg가 그의 그림을 액션페인팅Action Painting이라고 명명한 건 매우 적절했다.
미리 생각을 하고 그리는 것이 아니라 즉흥적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목을 붙일 수 없어 <넘버 1>(1950), <넘버 7>(1951), <넘버 28>(1950) 등 숫자를 적어 단지 작품을 구분했을 뿐이다.
폴록의 그림이 왜 유명할까?
그가 처음 물감을 뿌리고 떨어뜨리는drip-and-pour 기법을 사용했기 때문에?
아니다.
그가 처음 실행에 옮긴 것이 아니다.
그는 말했다.
“기법에 관해 어떤 이론도 갖고 있지 않다. 기법은 어떤 것을 말하려고 할 때 절로 생기지만 기법이 무엇을 말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면 내면의 감정을 화산처럼 격발시켰기 때문에 유명해진 것일까?
아니다.
그런 회화는 이전에도 존재했다.
그의 행동이 20세기 후반에 끼친 영향 때문이다.
폴록이 타계하고 3년 후 앨런 캐프로Allen Kaprow는 해프닝이란 장르를 창안해 냈는데, 그는 폴록이 캔버스 주위를 돌아가면서 그림을 그린 데서 아이디어를 이끌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해서 그려진 그림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과정에서의 행동만으로도 충분히 미술작품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캐프로는 폴록의 전례를 좇아 즉흥적으로 행동했는데 그것이 해프닝의 시작이 되었다.
해프닝은 곧 퍼포먼스라는 또 다른 장르를 잉태했다.
해프닝이 즉흥적 행동으로 관람자의 참여를 유도하는 것인 데 비해 퍼포먼스는 각본을 갖고 계획대로 행동하면서 관람자의 참여를 요구하기도 요구하지 않기도 하는 걸 말한다.
다음은 설치미술Installation에서 폴록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
잡동사니들을 화랑이나 미술관 바닥에 어지럽게 흩뜨려놓는 설치는 2006년 11월 1일에 고가에 팔린 폴록의 <넘버 5>와 같은 작품을 3차원으로 한 것이다.
현대인의 복잡한 정신상태를 나타내는 그런 설치는 폴록에게서 이끌어낸 아이디어인 것이다.
폴록이 차세대 미술가들에게 끼친 영향은 소묘를 못해도 화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예이다.
소묘만이 회화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화가가 되기 위해 미술학교로 진학하여 소묘를 배우느라 고심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에 의해서 회화가 사물에 대한 모사라는 고대 그리스인으로부터 강요된 관념이 박살났고, 회화가 붓으로 물감을 칠하는 것이라는 오래된 관습도 깨졌다.
회화는 내면세계를 거울처럼 반영하는 것이므로 어떤 방법으로라도 반영하여 타자에게 보여줄 수 있으면 그만인 것이다.
폴록이 이런 점을 의도했는지 아니 했는지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를 통해서 후세 사람들은 그런 점을 깨달은 것이다.
폴록은 평론가 클레멘트 그린버그에게 말했다.
“저는 제 그림이 어디에서부터 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그저 그려질 뿐입니다.”
폴록의 회화방법에 호기심을 가진 어느 여인이 폴록에게 다가가 물었다.
“선생님은 언제 그림이 완성되는지 아십니까?”
폴록이 여인에게 반문했다.
“당신은 언제 당신의 섹스가 완성되는지 아십니까?”
뉴욕의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은 여인과 같은 질문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게 묻는 건 실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