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주간조선에 글을 연재하기로 했습니다.)
거꾸로 건 그림은 거꾸로 보일 뿐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게오르그 바젤리츠(1938-)의 ‘러시안 페인팅’ 시리즈를 전시하고 있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그린 41점이 7월 15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과거에 그린 것들을 변형하거나 사진을 기초로 그린 것들이다.
테마가 된 이미지들 모두 과거 러시아에 대한 것으로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예를 들면
수세식 변기도 사용할 줄 모르는 러시아 병사가 피아노를 연주하는 장면은 러시아 정부가 러시아군을 지적이며 감성적임을 선전하기 위해 사회주의 화가로 하여금 그리게 한 이미지이지만 바젤리츠가 이를 조야한 이미지로 변형하여 냉소하고,
러시아의 영웅 레닌을 반누드의 평범한 늙은이 모습으로 편지, 혹은 연설문을 작성하는 이미지로 격하했으며,
정치 선전 그림만 그리던 화가가 사회주의 몰락 이후 빈 캔버스 앞에 앉아 무엇을 그릴지 알지 못하는 모습 등을 보여준다.
바젤리츠는 독일 경제전문지 <캐피탈>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가 중 6위에 오른 인물이다.
1위, 3위, 4위 모두 독일 미술가들이 차지하여 선정에 객관성이 없다는 느낌이지만 그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신경향의 국제적 명성을 얻은 화가들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그는 독일 신표현주의의 선두주자들 중 하나다.
1970년대 말에 등장한 신표현주의를 신야수주의, 혹은 격렬하고 폭력적 회화라고도 하는데, 재료 처리방식이 매우 거칠며 짧은 기간에 제작하여 격렬함을 작가의 주관으로 두드러지도록 표현하는 회화이다.
그래서 ‘나쁜 회화 Bad Painting’로 불리기도 한다.
1969년부터 그림을 거꾸로 걸기 시작했으며 ‘거꾸로 된 그림의 화가’로 불린다.
거꾸로 건 그림은 거꾸로 보일 뿐이다.
미술관에 가서 그의 작품을 바로 감상하려고 목을 45도로 갸우뚱해보았지만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오른편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목을 90도가 되게 갸우뚱해보았지만 마찬가지였다.
180도 거꾸로 걸었기 때문이다.
시스티나 예배당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장화를 목을 뒤로 제치고 보다가 결국 제대로 보지 못하고 목만 아팠던 기억이 새롭다.
사람들이 자신의 그림에 호기심을 갖고 오랫동안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서 거꾸로 건 바젤리츠는 “거꾸로 된 이미지는 더 잘 보일 뿐만 아니라 보는 이의 눈을 향하게 된다”면서 “거꾸로 그려진 이미지는 오브제로 부적합하므로 오히려 회화에 적합하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고 오랫동안 주목받기 위해 바젤리츠 식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
연예인과 정치인들 중에 많으며 심지어 지식인들 중에도 있다.
이들은 말을 돌리기 때문에 그 진의를 파악하기 몹시 어렵다.
고개를 90도로 갸우뚱해도 그 진의를 알 수 없는 까닭은 180도로 돌려서 말하기 때문이다.
포퓰러리즘popularism(대중주의, 혹은 인기주의)을 타고 유명해지기를 바라는 이들의 목적은 매우 불순하다.
광고는 거의 거꾸로 된 이미지와 말이다.
미국의 어느 제약회사가 “이것은 100퍼센트 비타민 C이다”라고 광고했다가 당국으로부터 저지당한 적이 있다.
100퍼센트 사과가 있을 수 없듯이 100퍼센트 비타민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지를 숨기려는 화가는 그림을 거꾸로 건다.
진의를 숨기려는 사람은 말을 거꾸로 한다.
거꾸로 건 그림을 바로 보기 위해서 우리는 물구나무를 서야 한다.
미술관으로 와서 물구나무를 서라고 요구하는 건 너무하다.
거꾸로 말을 하면 상대방을 속이는 궤변이 된다.
‘둥근 사각형’, 혹은 ‘네모난 원형’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림을 바로 걸어야 하고 말은 돌리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세상이 매우 어지러워진다.
목에 통증이 오고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어느 연예인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진 적이 있었다.
그것도 말이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다보니 머릿속이 복잡해진 것이다.
FTA에 재협상이란 있을 수 없다고 큰소리치던 정부가 추가 협상에 나섰다.
국민은 재협상이 곧 추가 협상인 줄 알기 때문에 속임수에 분노하는 것이다.
노무현 씨가 대통령이 되자 의기양양하여 민주당을 탈당한 의원들이 얼마 전 탈당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표명했다.
그들 말의 진의를 알 수 없다.
필히 탈당해야 했다면 유감을 표명할 일이 아니고 유감을 표명할 거라면 그때 잘못했다고 시인해야 궤변이 안 된다.
안희정 씨는 노무현 대통령을 가리켜서 “나라의 왕이고, 집안의 가장이 돼야 할 대통령이 연일 선관위로부터 경고장을 받고 있다”고 궤변을 뱉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왕에 비유하는 건 민주 정체를 부정하고 왕정을 주장하는 것이라서 도무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에 궤변인 것이다.
그림을 바로 걸고 말을 바로 해야 세상이 어지러워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