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주간조선에 기고한 글입니다.


문화는 반드시 이해되어야 한다.




모 출판사의 의뢰로 문화비평가 웨인 코스텐바움의 저서를 번역하면서 문화는 반드시 이해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동성애자로서 독특한 성욕을 타고난 앤디 워홀과 어머니의 등 뒤로 몸을 숨기는 아동과 같이 매우 내성적 성격을 지닌 그의 내면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서 쓴 책으로 최근 미국 문화의 일면을 정확하게 짚어준다.
성적 묘사를 직접적인 방법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어 소위 더러운 낱말들(dirty words)이 많이 등장하고, 섹스에 관한 속어가 많이 사용되었다.
그렇게 해야만 적확하게 사실을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이기도 한 저자의 매우 유려하고 재기 넘치는 언어를 우리말로 옮기는 데 적잖이 어려움을 겪었는데,
영어의 문법을 어떻게 비트는 것이 역효과를 내고, 분수에 넘치지 않는 위트가 오히려 독자의 이해의 폭을 한층 더 넓혀준다는 사실을 잘 아는 저자는 검투사가 자유자재로 칼을 휘두르듯이 역설적인 표현과 은유적인 속어들을 자유자재로 구사했기 때문이다.
저자의 유려한 문장과 위트를 의역으로 전달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며, 특히 은유적인 속어를 의역으로 전달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면 미국 대중문화의 참 모습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반드시 그대로 전달되어야 할 속성을 지니고 있다.
최근 미국 문화와 우리 문화 사이에는 태평양만한 거리가 있어 미국 문화, 특히 동성애자의 문화를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었다.


한국인으로 미국 모 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는 분이 황진이의 시를 영어로 번역했다.
‘자는다 누웠는다’라는 구절을 영어로 ‘자고 있거나 누워있다’라고 번역한 데서 고소를 금치 못했다.
황진이의 시에서 ‘서리서리 넣는다’, ‘구비구비 편다’와 같은 서정적 표현은 도저히 영어로 전달될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우리 문화와 미국 문화의 차이인 것이다.
이런 문화의 차이는 이해하려는 노력에 의해서만 극복된다.
미국인이 우리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삶에 나타나는 서정적 언어의 표현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해야만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외국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삶에 나타나는 서정적 언어의 표현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해야 한다.
이런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문화는 충돌한다.
문화의 충돌이 인명의 살상을 부르는 화를 자초한다.
그만큼 문화의 힘이 큰 것이다.


종교는 문화의 일부분이다.
문화 안에 다양한 유형의 종교들이 있다.
한 종교인은 다른 종교인의 삶을 존중해야 한다.
그들을 포교의 대상으로 삼거나 그들의 종교를 자신들의 종교보다 열등한 것으로 치부하는 건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일 뿐만 아니라 상대방 종교에 대한 침입, 혹은 공격이다.
특히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에 침입, 혹은 공격이 자행되는 걸 본다.
두 종교의 믿음의 조상은 한 분 아브라함이다.
한 조상에서 분파된 종교들이다.
이슬람교의 정경 <코란>에는 구약성서에 있는 많은 이야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수가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난 이야기도 있다.
두 종교가 한 뿌리에서 나왔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에 치열한 침입과 공격이 발발했으며 그로 인해 생명을 잃은 사람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다양한 문화를 인정하지 않은 독선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런 갈등이 오늘날에도 가시지 않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입, 혹은 공격은 오일을 점령하는 데 바탕을 두고 있지만 아랍인들은 이를 부분적으로 종교에 대한 침입과 공격으로 보고 있다.
일부 지식인들이 미국의 중동 개입을 문화적 충돌로 표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국제사회에서의 처신의 일환으로 우리나라는 아랍권에 파병하고 있다.
많은 아랍인은 우리의 파병 목적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침입의 한 유형이다.
자신들의 땅을 점령한 나라의 사람들이 자신들의 나라에 와서 선교까지 한다면 그들은 자신들의 문화마저 말살하려는 악의로 받아들일 수 있다.
충돌이 불가피한 것이다.
더위를 무릅쓰고 번역에 매진하면서 미국 문화, 특히 동성애자의 문화를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알게 된 필자는 외국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여간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걸 말하고 싶다.
문화의 우위를 논하는 사람은 바보다.
문화가 각 지역의 최선이라는 걸 우리는 반드시 수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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