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즈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





지금까지 보이즈의 사상에 관해 살펴보았으며 이제 그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들에 관해 알아보도록 한다.


루돌프 스타이너의 영향

보이즈에게 가장 영향을 준 사람은 루돌프 스타이너Rudolf Steiner(1861-1925)이다.
그는 런던으로부터 신지학을 받아들여 독일 신지학 소사이어티Theosophical Society를 창설했는데 신지학자들과 의견충돌이 잦자 협회를 떠났으며, 1912년에 따로 인류학지혜 소사이어티Anthroposophical Society를 창설했다.
스타이너는 사람에게 물질세계를 초월할 수 있는 정신적 지각능력이 있는데 이 능력은 현대 서양문화에 의해 한정된 물리학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이즈에게 나타난 이런 사고는 스타이너로부터 받은 영향이다.
보이즈는 정신적 지각능력으로 농업, 예술, 경제, 의학, 그리고 교육에서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믿었다.
스타이너는 그리스도가 인간 창조성에 살아있는 힘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는데 이런 사고 또한 보이즈에게 영향을 끼쳤다.
보이즈가 “모든 사람이 예술가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었던 건 정신적 지각능력을 근거로 한 말이었다.


보이즈는 스타이너의 장미십자주의Rosicrucianism 사상에 심취했는데 장미십자주의란 1484년 크리스천 로젠크레우즈Rossenkreuz가 독일에서 창설했다고 전해지는 연금 마법의 기술을 말한다.
스타이너는 현대인에게 심원한 지식보다는 장미십자주의의 신지학 또는 신비주의가 정신적으로 풍요롭게 해준다고 주장했다.
그는 종교와 과학 모두가 편협하게 체계화됨에 따라서 인간을 자유롭게 하는 데 실패한 것을 예술이 대신 성공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이 같은 사고는 그대로 보이즈에게서 전수되었다.
보이즈는 기독교 사상을 도입해서 변형시켜서 원래의 모습을 유지시키려고 했다.
그가 기독교 주제들 피에타, 십자가처형, 슬픔에 빠진 남자 등을 주제로 선택해 작품을 제작한 건 기독교 원형을 회복하려는 사고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십자가의 경우 예를 들면 그는 일반적 상징으로 보편적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표현했다.
그는 예술을 정신적, 사회적으로 재활하는 방법으로 사용하는 데 역점을 두었다.
그가 자신의 조각이론이 “예술의 개념을 확대하는” 것이라고 말한 건 예술이 정신적, 사회적으로 재활의 기능을 지녔음을 의미했다.
1960년대 독일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이해한다면 보이즈의 이러한 혁명적 예술 개념이 그의 시대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사람들이 통행할 수 없도록 동독과 서독에 장벽이 세워진 건 1961년이었고, 동독과 서독은 철학, 종교, 경제, 그리고 정부가 각각 달랐다.
보이즈는 십자가를 상징물로 사용하여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어 보다 건강한 사회로 구성해야 함을 역설했다.


1950년대 말부터 그의 드로잉에서 우중충한 붉은 빛이 감도는 브라운색 십자가가 수 없이 나타났는데 이런 상징은 향후 예술가로서 그의 진로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그는 이 십자가를 “브라운 십자가 Braunkreuz”로 불렀다.
1960년대 초부터 브라운 십자가가 커지기 시작했으며, 좀더 기념비적인 스케일로 나타났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이즈 브라운”이라고 불렀는데 보이즈 브라운은 지방 그리고 펠트와 함께 인생과 예술이 연결된 보이즈의 자필적인 매체로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적십자Red Cross는 상처가 났거나 병든 사람을 긴급하게 치료하는 국제적 기구의 상징인데 반해 보이즈의 브라운 십자가는 기독교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었다.
적십자를 창설한 사람은 헨리 두난트Henry Dunant로 그는 예술가였다.
그는 피아노를 불에 태우는 작품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보이즈는 펠트로 피아노를 뒤집어씌워서 형태만 나타나도록 했는데 이 작품은 두난트로부터 받은 영향이었다.
그는 두난트로부터 예술의 기능에 관해 영향을 받았다.


초대 기독교인들은 장미, 혹은 장미빛을 그리스도의 피로 상징했는데 보이즈는 장미빛을 브라운색으로 바꾸었다.
그것은 복잡한 변형으로 브라운색은 나치의 대량학살을 상기하게 했으며, 히틀러의 급습 군대를 사람들이 “브라운 셔츠 Braunhemd”라는 별명으로 불렀고, 참담했던 당시를 독일 사람들은 오늘날에도 “브라운 과거 Braun Vergangenheit”라고 말한다.
브라운 십자가는 기독교 상징 외에도 나치주의와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한 군국주의의 상징이 어울려진 요소였다.
그는 기독교가 변질되어 유물론과 같아졌다고 믿었으므로 기독교에 신지학을 보태 기독교의 본질을 복구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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