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것에 관심을 둔 미국의 1960년대 미술(4)




해프닝Happening

1960년대에 새로운 미술 형태로 널리 통용되기 시작한 해프닝은 1959년 앨런 캐프로Allan Kaprow(1927~)가 창안해낸 것이다.
캐프로는 1959년 뉴욕의 루빈 화랑에서 열린 ‘여섯 부분으로 나뉜 18개의 해프닝 18 Happenings in 6 parts’이라는 자신의 전시회를 위해 만든 명칭이다.
이는 천재를 요구하는 역할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관람자, 혹은 참여자에게 권한을 부여하려는 아티스트들이 선택한 방식이었다.
캐프로는 해프닝에서 참여자로서의 관람자는 오브제나 회화와 같으며 도구와 지침서는 캔버스의 천과 같다고 했다.
관람자는 사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적극적인 참여는 정신적인 수준에서 요구되었다.
캐프로는 해프닝의 가능성을 잭슨 폴록의 액션페인팅에서 발견했다.
캐프로는 해프닝을 궁극의 실존적 참여라는 점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인간적 자세로 보았다.


존 케이지는 예술 창조에 있어서 우연이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한 이론을 펼쳤는데 그의 이론과 마찬가지로 해프닝은 ‘자발적이며 줄거리가 없는 연극적 이벤트’로 일컬어져 왔다.
해프닝의 개념에는 화가들이 화랑과 미술관과 같은 엘리트 의식으로 뭉친 세계에서 탈피하여 거리나 시장으로 뛰쳐나와 한다는 점이 내포되어 있지만 이 명칭은 요제프 보이즈가 벌인 많은 해프닝들과 같이 정치-사회적인 신념을 표현하기 위한 시위나 기존의 도덕 체계에 충격을 가하기 위한 표현을 다루는 데 이용되었다.
다른 측면에서는 일상적인 삶과 평범한 과학기술을 기이하고 낯선 상황이나 사건으로 바꿔 연출하는 것을 해프닝의 특성으로 본다.


퍼포먼스 아트Performance art

해프닝과 관련 있지만 보다 철저하게 계획되며 관람자의 참여를 수반하지 않는 퍼포먼스 아트의 전통은 자신들의 작품이나 사상을 선전하기 위해 익살스럽거나 도발적인 이벤트를 무대에 올린 미래주의자, 다다주의자, 초현실주의자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며, 1950년대에 관람자 앞에서 그림을 그린 프랑스 화가 조르주 마티외나 1960년대 초 물감을 몸에 바른 누드모델들을 지휘한 이브 클랭의 작업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퍼포먼스 아트가 그 자체로서 미술의 한 범주로 인식되게 된 건 1960년대 이후, 특히 1970년대였다.
해프닝이 의도적으로 내건 것과는 달리 퍼포먼스는 관객과의 즉흥적 협동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
퍼포먼스는 ‘재연’, ‘구경거리’를 의미한다.
이벤트도 퍼포먼스의 한 형태이며, 신체적 출현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해프닝, 이벤트, 퍼포먼스의 구별은 명확하지 않다.


퍼포먼스 아트는 새로운 형식 중에서 가장 파악하기 쉽다.
퍼포먼스 작품에서는 아티스트 현전의 즉시성이 보장되고, 아티스트와 관객 사이 대면의 직접성이 보장된다.
아티스트는 가능하면 폭발적인 전이를 성취하려고 노력한다.
퍼포먼스 아트를 여성 다수가 차지하는 건 페미니즘 전략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퍼포먼스는 자연스럽게 정치적이 되기도 하는데, 요제프 보이즈에게서 보듯 의식의 변화를 통해 행위자가 변화된 사회를 의도하기 때문이다.
퍼포먼스 아트의 형태와 경향은 매우 다양한데, 빈 행위파는 사디즘과 마조히즘, 외설 취미에 탐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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