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 The Great Couples 3
김광우 지음 / 미술문화 / 2003년 6월
평점 :
절판


에드바르트 뭉크를 이해하기 전에

 <뭉크, 쉴레, 클림트의 표현주의>(미술문화) 중에서


앙리 마티스(1869-1954)는 『화가의 노트』(1908)에서 말했다.
“나는 자연을 비굴하게 모사할 생각이 없다. 자연을 해석하여 그것을 회화의 정신에 복종시켜야 한다.”
이 말은 에드바르트 뭉크(1863-1944)의 회화에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다.
마티스는 “회화는 결국 표현이다”라고 주장했다.
‘표현’이란 말을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20세기 초에 들어서면 회화는 표현적이어야 한다는 공감이 이루어지게 된다.
로제 비시에르(1888-1964)는 “나의 회화는 나의 인생의 이미지이며, 나의 약점까지도 포함한 나 자신의 모두를 비추는 거울이다”라고 했는데, 이는 “회화는 결국 표현이다”라는 마티스의 말에 대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표현’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마티스이지만 표현주의 그림을 마티스에 앞서 그린 사람은 뭉크이다.
그는 빈센트 반 고흐(1853-90), 폴 고갱(1848-1903), 제임스 앙소르(1860-1949) 등과 함께 표현주의의 선구자로 칭송받고 있다.

화가가 관람자를 감화시킴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든다 작품 속에 구현된 감정이나 느낌에 의해 표현성을 띠게 된다는 생각이 19세기 말 다수의 화가들에 의해 일어났다.
그러나 구현의 의미와 방식에 대해서는 화가들마다 달랐다.
뭉크에게 있어 구현의 의미는 그가 26살 때 한 말에서 알 수 있다.

나는 숨 쉬고 느끼고 괴로워하고 사랑하는 사람, 즉 살아 있는 사람을 그릴 것이다. 사람들은 이 직업의 신성함을 이해할 것이며 교회에서처럼 모자를 벗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 구현의 방식은 심리적이고 감정적인 모티프를 강렬하게 다룸으로써 관람자로 하여금 동일한 느낌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었다.
뭉크는 일찍부터 사회적 행동과 도덕 및 미술에 대해 새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자유분방한 사람들과 교류했으며, 그런 환경이 그로 하여금 인습의 굴레에서 해방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의 회화의 가장 중요한 점은 성의 문제와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인간 조건에 대한 그의 회화적 표현은 관람자의 감정에 호소하는 강렬한 힘을 갖고 있다.
이런 호소력이 그를 노르웨이에서 가장 위대한 화가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초기 현대 회화의 발전의 가장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가 독일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그의 회화는 자연히 독일 표현주의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뭉크처럼 자신의 내면세계에 집착한 화가는 드물 것이다.
그가 외부세계보다 내면세계에 집착하게 된 것은 죽음에 대한 경험과 불안 때문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와 누이를 잃었으며 자신도 병에 시달렸다.
그는 자신의 가정을 죽음의 가정으로 기억하고 그런 불행을 극복할 수 없었음을 고백했다.
끊임없이 죽음을 의식하고 있었으므로 그런 의식이 그대로 회화에 반영될 수밖에 없었다.

뭉크의 회화는 한마디로 ‘혼의 고백’이다.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혹은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것들을 고백의 형상들로 창조해내는 것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현대인의 불안이다.
뭉크의 작품에는 정신적 동요가 대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물론 더 나아가 기억의 형태까지도 변화시키는 요소가 있다.
뭉크의 회화는 전통을 무시한 새로운 양식의 회화이며 표현이 매우 강렬해서 회화가 결국 표현임을 충분히 웅변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