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레 로제티Gabriele Rossetti>






런던에서 태어난 이탈리아계 영국 화가이며 시인인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Dante Gabriel Rossetti(1828-82)는 정치적 압력에 의해 고국을 떠나 1824년에 영국에 정착한 이탈리아의 시인이자 학자 가브리엘레 로제티Gabriele Rossetti(1783-1854)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브리엘레 로제티는 1441년 헨리 6세에 의해 설립된 명문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의 이탈리아어 교수가 되었고,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자식 네 명을 두었는데 로제티는 둘째였다.
로제티는 열세 살 때 사스 학교에 입학하여 4년 동안 재학했는데, 그가 이 학교에 입학하기 2년 전인 1839년에 해협제도에서 온 총명한 존 에버렛 밀레이가 이 학교에 입학했다.
총명한 밀레이와는 달리 로제티는 이 학교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스스로도 다음 단계로 올라갈 만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1845년 여름이 되자 그도 왕립미술원의 견습학생이 되었다.
현재 내셔널 갤러리가 있는 트라팔가 광장Trafalgar Square 안의 건물의 동쪽 반을 차지하던 왕립미술원Royal Academy of Arts은 1853년까지만 해도 수련과정이 10년 걸리는 학교로 학생들은 처음 수년 동안 고대학교Antique School에서 고전주의 조각들을 드로잉 해야 하고 그 뒤 유화를 그리며 실제 모델을 그릴 수 있었다.
건물이 비좁아 여름 전시기간에 학생들의 작품을 전시할 공간은 거의 없었다.
왕립미술원은 1768년 조지 3세의 칙허를 얻어 조슈아 레이놀즈Joshua Reynolds(1723-92)를 초대회장으로 설립되었다.


로제티는 1848년 봄 포드 매독스 브라운에게 제자가 되게 해달라고 청했다.
당시 무명이었던 브라운은 로제티가 자신을 놀리려고 그러는 줄 알고 회초리를 준비하며 혼내주려고 했으나 사실임을 알고는 받아들였다.
그러나 불과 몇 달 동안만 배운 로제티는 여름에 브라운을 떠나 윌리엄 홀먼 헌트에게 몰입했다.
두 사람은 곧 같은 작업실을 사용하게 되었다.
작업실은 작은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다소 지저분한 런던의 웨스트엔드West End의 클리블랜드 가Cleveland Street에 위치했으며, 스티븐스에 의하면 “크고 썰렁한 방”이었다.
그 해 헌트는 빅토리아 시대의 대중작가 불워 리턴Edward Robert Bulwer Lytton(1831-91)의 14세기 로마를 배경으로 한 소설의 한 구절을 소재로 <정의를 반드시 구하겠다고 맹세하는 리엔치 Rienzi vowing to obtain Justice>를 그렸는데 로제티가 주인공의 모델이었다.
헌트가 당시 고어 가Gower Street에 있던 밀레이의 작업실에서 그린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초상 Portrait of Dante Gabriel Rossetti>을 보면 영감이 풍부한 천재의 모습이다.
천재로서의 화가라는 이미지는 낭만주의운동에서 화가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개념이었으므로 헌트가 그렇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로제티는 불규칙적으로 수업에 참가했으며 예술과 문학에 대한 취향도 일정한 규칙을 따르지 않았다.
이 시기에 그는 시인이며 화가로서 왕립미술원에 재학한 적이 있는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1757-1827)를 발견했다.
블레이크는 어릴 때부터 비상한 환상력을 지녀 창가에서 천사와 대화하고 언덕에 올라 하늘을 만진 체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영박물관에서 블레이크의 원고를 우연히 본 로제티는 동생에게 빌린 10실링으로 시, 드로잉, 경구적인 산문, 그리고 <조슈아 레이놀즈의 강연에 대한 주해 Annotations to Sir Joshua Reynold's Discourses>가 수록된 원고를 구매했는데, 여기서 블레이크는 레이놀즈의 강연록을 “위선자의 속임수”로 묘사했다.
로제티는 또한 알프레드 테니슨Alfred Tennyson(1809-92)과 더불어서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1812-89)의 활달한 시를 좋아하여 시각적으로 표현하기를 갈망했다.


로제티는 시인과 화가 모두 되고자 했으며 왕립미술원에서의 공부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비개성적이고 틀에 박힌 수업에 거부감을 느꼈다.
그는 학업을 도중에 그만두었다. 그가 영감을 얻기 위해 선택한 사람은 포드 매독스 브라운이었다.
브라운에게 끌린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아카데미와 무관한 데 있었다.
로제티는 브라운으로부터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써의 색채방법을 배우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자 그를 떠났다.
그는 헌트를 통해 그의 친구 밀레이를 만났다.
밀레이는 헌트의 생각에 공감했는데, 그것은 레이놀즈의 가르침이 영국 회화에 해악이 되고 있으며, 아카데미 화가들의 존경을 가장 많이 받는 라파엘로는 <그리스도의 변모 Transfiguration>에서 “진실의 단순함을 무시하고, 열두 제자를 호화스런 자태로, 그리스도를 세속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로제티가 스무 살의 나이에 처음 그린 라파엘전파주의 작품은 <성모 마리아의 소녀시절 The Girlhood of Mary Virgin>로 1848년 늦은 여름 내내 헌트의 지속적인 지도하에 그린 것이다.
마리아의 모델은 여동생 크리스티나 조지나 로제티이다.
이 작품은 PRB라는 글자를 처음으로 대중에게 알린 것으로 런던의 자유전The Free Exhibition에 출품되어 1849년 3월 24일에 소개되었다.
그는 좌측 하단에 서명한 뒤 그 아래에 붉은색으로 PRB라고 적었다.
이 작품이 선보였을 때 어느 누구도 아카데미에 대한 반동의 의미를 지녔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최초의 라파엘전파 작품으로 아카데미의 관습을 거부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복고양식이 사용되었다.
이 종교화는 원래 세 폭으로 구상되었다.
종교적 주제는 14세기 양식의 회화에 매우 적합했으며 로제티의 성향과도 잘 맞았다.
그를 매혹시킨 것은 <성모 마리아의 소녀시절>이 관람자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보다는 깊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데 있었다.
이 작품은 종교적 주제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장치가 배제되었다는 점에서는 어느 정도 자연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으나, 로제티의 기법이 미숙했으므로 사실적 회화라고 할 수는 없다.
주목할 점은 그가 상징적인 세부에 매료된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소녀시절>은 상징적 의미를 무겁게 지니고 있으며, 로제티는 그림의 액자에 붙여놓은 소네트에 이를 자세히 설명해놓았다.
예를 들면 책은 성모 마리아의 미덕을, 백합은 순결함을, 일곱 개의 가시가 있는 찔레와 일곱 개의 잎이 있는 종려나무는 성모 마리아의 ‘크나큰 슬픔과 이에 대한 큰 보답’을 의미한다.
그러나 일부 평론가들은 성가족을 신의 모습보다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내려고 한 데 대해 비난했다.


<성모 마리아의 소녀시절>은 라파엘전파의 개혁의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특정한 효과를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과거의 어색한 듯한 양식을 차용했다는 점에서 전통주의 작품이다.
여기에는 중세와 초기 르네상스 회화에서 볼 수 있는 많은 회화적 장치들이 사용되었는데, 어색한 구성, 중세 필사본의 한정된 공간과 대담한 배열방식이 돋보인다.
기법에서 보면 캔버스의 표면이 판지처럼 매끄럽게 될 때까지 애벌칠을 한 뒤 수채화 붓으로 유채를 칠해 모든 색조가 투명해졌다.
양식에서 보면 일종의 소박한 참신함이 나타나 있지만 어느 부분이 계산에 의한 것인지 혹은 능력의 부족 때문에 그렇게 표현된 것인지를 구분하기 어렵다.
헌트와 브라운은 로제티에게 원근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원근법은 로제티에게는 지루하고 성가신 것이었다. 그가 원근법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모든 인물이 화면에 빽빽하게 구성되고 말았다.
성 요아킴St. Joachim이 혼란스럽게도 관람자 가까이 불쑥 나타나 있으며, 왼편 마루와 오른편 마루의 소실점이 일치하지 않는다.
카탈로그에 실린 로제티의 시를 통해 상징물들의 의미를 알 수 있는데, 예를 들면 난간 위에 걸쳐져 있는 붉은색 옷은 그리스도가 수난 때 입었던 옷을 상징한다.
성 안나St. Ann 뒤 담쟁이덩굴로 감겨 있는 수평선과 수직선의 고안물의 형태가 십자가인데 이는 십자가를 상징한다.
그리고 정원의 황금빛 후광 속의 비둘기는 전통을 좇아 성령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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