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에버렛 밀레이Sir John Everett Millais(1829-96)>






존 에버렛 밀레이Sir John Everett Millais(1829-96)가 어려서 미술에 재능을 보이자 그의 부모는 그의 재능을 키워주기 위해 런던으로 이주했다.
밀레이는 저지Jersey 지방의 부유한 지주가문이었다.
아버지는 맨체스터 하우스Manchester House의 경영자이자 면화 도매업자로서 아들에게 경제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들의 작품을 왕립미술원의 관장이던 마틴 아처 시Sir Martin Archer Shee에게 보여주자 그가 감명을 받았다.
사스 학교 과정을 매우 짧은 시간에 끝낸 밀레이는 1840년에 전례 없이 어린 나이인 열한 살에 왕립미술원의 견습학생이 되었고, 재학 중에 아카데미의 모든 상을 휩쓸었다.
사스 학교는 왕립미술원에 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준비단계로서 어린 예술가들이 기초 기술을 배우는 곳이었다.


밀레이가 제작한 완벽하게 라파엘전파주의에 합당한 첫 작품은 <이사벨라 Isabella>(1848-49)로 주제는 이 공동체의 계획에서 시작되었다.
이 작품은 1849년 로제티의 첫 라파엘전파 작품보다 한 달 늦게 왕립미술원의 전시회를 통해 소개되었는데, 환각적일 정도로 사실적이어서 관람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화면 속의 형제들은 라파엘전파의 구성원 일곱 명과 비슷해서 그가 라파엘전파 구성원들에 대한 자신의 형제애를 표명이라도 하듯 이사벨라의 의자 가장자리에 PRB라는 이니셜을 새겼다.
왼편에 포도주잔을 들고 있는 인물이 프레더릭 조지 스티븐스로 화가로 출발했지만 나중에 유명한 평론가가 되었다.
인물들의 얼굴표정에서 그가 모델들을 철저하게 관찰했음을 본다.
이사벨라의 아버지로 보이는 냅킨을 머리에 두른 노인의 모델은 밀레이의 노망든 아버지였다.
밀레이는 직업모델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나 지인을 모델로 함으로써 충실한 묘사를 통해 각 인물의 특징을 살릴 수 있었으며 생동감을 부여할 수 있었다.
이런 사실주의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전통주의를 적극적으로 표방한 것이다.
인물들이 매우 좁은 공간에 자리 잡고 있어 왕립미술원의 우등생이었던 밀레이가 원근법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것이 분명하다.
존 키츠의 시 <이사벨라, 혹은 바질 단지 Isabella: or the Pot of basil>는 라파엘전파 구성원들로 하여금 새로운 원칙을 완전히 실행하게 될 회화로 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키츠는 조반니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 등장하는 이사벨라와 로렌초Lorenzo의 이야기를 시의 소재로 다루었다.
따라서 주제와 모델들의 의상이 라파엘로 이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키츠의 시에서 이사벨라는 오빠들의 하인이었던 로렌초와 사랑에 빠진다.
<이사벨라>는 오빠들이 여동생을 정략적으로 결혼시키려던 계획이 방해받자 매우 화가 난 모습을 나타낸 작품이다.
불운한 운명의 연인을 주제로 한 이 작품에서 이사벨라와 로렌초가 운명의 핏빛 오렌지를 나눠먹는다.
후에 로렌초의 머리를 벤 뒤 숲속에 묻어버리는 오빠들 가운데 하나가 호두를 거칠게 까면서 오른발을 앞으로 쭉 뻗어 이사벨라의 개를 괴롭히고 있다.
이로 인해 수평적 화면이 극적 효과를 자아낸다. 밀레이의 작품은 자연에 대한 충실과 의식적인 의고주의 양식 모두를 보여준다.
<이사벨라>는 사실적이면서도 매우 양식화되어 있으며 계획된 신선함이 있다.
인물들의 빈틈없고 다양한 묘사, 어느 정도 시대착오적이기는 하지만 세부에 대한 고고학적이며 정확한 관찰, 멍청한 두 형제의 악의를 포착하는 화가의 방법 등이 잘 나타나 있다.
개를 걷어차기 위해 다리를 뻗치는 모티프는 계획적이다.
개를 쓰다듬는 이사벨라의 자연스러운 우아함은 로렌초에게서 오렌지 반쪽을 힘들게 받아들이는 상징적인 동작과 대조를 이룬다.
그리고 치밀한 세부묘사는 전체적인 구도의 비현실과 충돌한다. 배경에 보이는 항아리는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는 상징물로 존재하는데, 로렌초가 살해당한 뒤 그의 영혼이 이사벨라에게 나타나 진실을 밝히자 그녀는 시체를 파내어 그의 머리를 항아리 속에 담아둔다.


밀레이는 자신의 많은 작품에서의 선례가 되는 <최후의 만찬>과 같이 열세 명의 사람이 식탁에 둘러앉는 전통을 무시했다.
아카데미에서 훈련받은 화가로서는 이런 구도를 만들어내기란 어려운 일이다.
구도는 화면의 테마가 되는 중심사건에서 급격하게 왼편으로 기울어져 있다.
관람자의 눈은 천천히 왼편을 향하면서 울퉁불퉁하게 나열되어 있는 인물들의 얼굴을 보게 되며, 이는 다시 건너편에 앉아 있는 인물들의 초상을 훑어보다가 불운한 여인의 부드러운 태도에 머물게 된다.
뒤쪽 벽을 덮고 있는 태피스트리의 평면성과 바깥쪽 풍경이 보이는 인접 벽면 사이의 관계 설정이 쉽지 않았음을 보는데, 공간이 애매모호하며, 풍경이 보이는 벽면은 테이블의 오른쪽 선과 평행을 이루면서 뒷면의 태피스트리로부터 오른쪽으로 꺾이는 각도로 설정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태피스트리와 나란하게 옆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밀레이는 회화 공간을 재편성하려고 시도했지만, 자연주의적 관점의 요구에 구성의 대담함을 적용시키는 일이 자신에게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라파엘전파는 피사의 캄포 산토에 있는 15세기 프레스코를 본뜬 조반니 파올로 라시니오의 석판화집에서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아 동일한 양식으로 일련의 드로잉을 재작했는데, 이는 구성원들 모두가 동일한 양식을 구사한 유일한 예였다.
밀레이가 1848년에 그린 드로잉 <장미덩굴 곁의 연인들 Lovers by a Rosebush>은 <이사벨라>를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두 연인은 물론 개까지도 <이사벨라>와 동일한 모델로 보인다.
꽃에 대한 묘사에서 밀레이가 자연을 철저하게 관찰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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