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콜리 번-존스Sir Edward Coley Burne-Jones(1833-98)>





성직자가 되려고 했으나 1855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윌리엄 모리스를 만나 미술에 흥미를 갖게 된 에드워드 콜리 번-존스Sir Edward Coley Burne-Jones(1833-98)는 로제티를 만난 뒤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 대학을 중퇴하고 화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 후 모리스와 런던에 정착하여 단테 가브리엘 로제티의 지도를 받으며 함께 작업했다.
성직자의 삶을 포기한 그는 회화와 사랑에 빠졌다.
토머스 콤브Thomas Combe가 소장하고 있던 라파엘전파의 작품을 보고 매료되었다.
무엇보다도 로제티의 <베아트리체의 머리를 그리고 있는 단테>와 <엘핀-미어의 처녀들>이 그를 감동시켰다.
그는 교회의 의식과 일치하는 것처럼 보인 예술의 반복적인 계율과 중세주의에 매력을 느꼈는데, 로제티의 이런 작품들은 그의 취향에 대한 답을 제공해주었다.
번-존스는 런던으로 이주했을 때 대부분의 라파엘전파 구성원들을 만났으며, 밀레이의 최근 작품들을 보았다.
회화 미숙했던 이 시기에 그는 때때로 라파엘전파의 자연주의적인 양식을 따르는 회화를 시도했다.


화가로서의 번-존스의 경력은 로제티를 열렬히 추종하고 그의 작품을 모방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지만 라파엘전파에 속하는 화가는 아니었다.
두 작품 <클라라 폰 보르크 Clara von Bork>와 <시도니아 폰 보르크 Sidonia von Bork>(1860)에서 번-존스는 로제티가 가장 좋아하는 책인 빌헬름 마인홀트Wilhelm Meinhold(1797-1851)의 소설 『시도니아 마법사 Sidonia the Sorceress』(1847)를 그림으로 그린 로제티의 양식을 베꼈다.
번-존스는 옥스퍼드 유니온의 벽에 그림을 그리는 동안 고급 피지에 펜과 잉크로 아서 왕을 주제로 <아름다운 숄을 두른 알리체 Alice la Belle Pelerine>, <전쟁터로 가다 Going to the Battle>, <갤러해드 경 Sir Galahad>과 같은 작은 드로잉을 그렸다.
이것들 가운데 가장 잘된 드로잉은 <전쟁터로 가다 Going to the Battle>로 좀 더 조용하고 덜 감정적이라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로제티의 목판화 삽화와 유사하다.
관람자를 향해 등을 보이는 두 여인과 옆모습의 여인이 궁전의 정원에서 전쟁터로 떠나는 기사들의 행렬을 바라보고 있다.
전경, 중경, 후경으로 공간을 구분하는 전통적인 방법이 여기서는 세 구획으로 변형되었다.
로제티의 작품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대로 지평선을 향해 후퇴하는 느낌을 찾을 수 없으며, 성벽을 중심으로 가까이 있는 사물은 모여 있고 먼 곳에 있는 사물은 흩어진 느낌을 받게 된다.
사실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화면의 빛줄기는 빛 체계의 일부이자 드레스의 무늬로 나타나 있다.
열십자무늬를 가까이서 보면 격자 울타리에서도 작은 크기로 반복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가운데 구획에 창들이 갑자기 연달아 나타나고, 임무를 수행하러 혹은 전쟁터로 가려고 성을 떠나는 기사의 차분한 얼굴이 보인다.
임무를 수행하는 것과 죽는 것 모두 번-존스의 회화에서 반복되는 주제이다.
하지만 실제로 이런 일은 일어날 법 하지 않은데, 그의 화면은 실제 세계와는 다르고 모든 것이 정지하고 일체의 동요도 없이 조용하기 때문이다.


번-존스의 색채는 종종 노란빛을 띠지만 결코 빛나는 법이 없으며, 초기에는 따뜻한 대비와 상당히 강한 색채를 사용했지만, 그것은 로제티의 작품을 모방한 결과였을 뿐이다.
이와 유사하게 번-존스의 화면에는 대기가 존재하지 않고 그 어느 것도 강조되어 있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얼굴 표정은 없고 팔은 무기력하게 달려 있다.
거기에는 어떤 긴장감도 없는데 자신이 아는 것만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발견하기 위해 그리는 것이 아니라서 그의 회화에는 발전이 없다.


번-존스는 1859년에 이탈리아로 갔으며, 1862년에는 베네치아와 밀라노에서 러스킨과 함께 활동했다.
1877년 이전에는 거의 작품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그 후 곧 명성을 얻었으며 외국에서도 많은 추종자가 생겼다.
그는 형태와 표현양식의 순수성 그리고 중세 미술의 고양된 도덕성을 회복하려고 했다.
주제를 성서와 고금의 문학작품에서 취하고 유려한 선묘, 단정한 구도, 풍요로운 색채로 신비적이고 낭만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에게 일어난 유일한 변화라면 자신을 로제티에게서 해방시킨 것이었다.
로제티가 번-존스에게 끼친 영향은 1862년 혹은 1863년경부터 점차 줄었고, 그때부터 번-존스는 독자적 양식을 발전시켰다.
번-존스는 좁고 폐쇄된 상상력을 화면에 펼쳐놓았고 큰 규모로 작업하면서 등장인물들에게 더 큰 공간을 제공했다.
그는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해감에 따라 한 주제에 집착하지 않았다.
이를 안 러스킨은 번-존스가 북유럽과 그리스 신화 전부를 자유롭게 그릴 수 있는 능력을 발전시켰으며 폭넓은 공감으로 이를 기독교 전설의 전통과 조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고 옥스퍼드에 있는 자신의 학생들에게 말했다.
하지만 번-존스는 그리스 신화, 북유럽 신화, 기독교 신화가 관념과 감정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을 차별하지 않고 동일한 톤으로 약화시켜버렸다.
그의 회화는 신화의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라 신화에 대한 연구의 결과물이었다.
그가 신화를 그대로 옮겨놓았으므로 인간의 세계가 아닌 세계로 관람자들을 이끌었다.
이는 그의 이상주의의 함정으로서 허위의 구체성으로 나아갔다.
이런 사실은 그의 누드화에서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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