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존스의 <방앗간 The Mill>





번-존스는 자연스럽게 윌리엄 모리스에게 가까이 갔고, 신화를 사용하는 방법이 모리스의 것과 유사해졌다.
그는 모리스에게서 <목신과 프시케 Pan and Psyche>의 주제를 따오기도 했다.
프시케는 아프로디테의 사악함 때문에 고통을 받아 물에 빠져 자살하려고 한다.
그러나 강은 프시케를 살며시 강가로 밀어 올렸으며 그곳에 앉아 있는 목신이 그녀를 위로한다.
목신은 헤르메스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목인牧人과 암염소 사이에서 태어났다고도 한다.
허리에서 위쪽은 사람의 모습이고 염소의 다리와 뿔을 가지고 있으며, 산과 들에 살면서 가축을 지킨다고 여겨져 왔다.
춤과 음악을 좋아하는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인 동시에 잠든 인간에게 악몽을 불어넣기도 하고, 나그네에게 갑자기 공포를 주기도 한다고 믿어져 ‘당황’, ‘공황’을 의미하는 패닉panic이란 말이 이 신에서 유래했다.
목신은 로마 신화의 파우누스Gaunus에 해당한다. <목신과 프시케>는 번-존스가 초기 이탈리아 작품에서 무엇을 어떻게 끌어냈는지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런던 국립미술관에 있는 피에로 디 코시모Piero di Cosimo(1462-1521)의 <프로크리스의 죽음 Death of Procris>(1510)을 고쳐서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번-존스는 준準 인간의 감정, 즉 때때로 개에게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그리고 목신이나 그와 유사한 것을 그린 작품에서 종종 나타나는 것에 대한 놀랄 만한 느낌을 재현했다.
그는 신화의 동떨어진 세계에 대한 느낌을 매우 섬세하게 묘사했지만 이런 효과를 자주 창출해내지는 못했다.


번-존스 작품의 핵심은 우아함이다. <방앗간 The Mill>은 유미주의적 특성이 강하게 나타난 작품으로 자연주의를 배제하고 색조와 색채를 미묘하게 조화시킨 그림이다.
오른편에 세모꼴의 현이 달린 타악기의 일종으로 해머로 연주하는 덜시머dulcimar를 연주하는 꿈결 같은 인물은 미술과 음악의 관계를 보여준다.
구성이 우아하고 장식적이며 이탈리아 회화의 영향이 여러 곳에서 보인다.
색채의 처리가 유미주의자들이 가장 좋아한 성기 르네상스의 베네치아 화가 조르조네Giorgione(1477?-1510)의 양식과 유사하고 왼편의 풍경에서는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의 양식이 발견된다.
프리즈 형태는 번-존스가 사우스 켄싱턴 미술관South Kensington Museum(현재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Victoria and Albert Museum)에서 본 이탈리아의 혼례용 서랍장 앞면에 채색된 부분을 참고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멀리 물방아 저수지에서 목욕하는 작은 인물들은 그가 내셔널 갤러리에서 보고 극찬한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1439?-92)의 <그리스도의 세례 The Baptism of Christ>(1450-55)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것이다.
번-존스가 이탈리아 회화에서 찾으려고 한 특징은 초기 라파엘전파의 구성원들이 닮고자 한 명확함과 자연에 대한 충실함과는 다른 것이었다.
그는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차가운 빛보다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색의 변화를 표현할 때 사용하는 음영법인 스푸마토sfumato 같은 부드러운 빛과 깊은 그림자를 좋아했다.


수수께끼 같은 작품 <방앗간> 전경의 아름다운 세 여인은 이 작품의 구매자인 콘스탄틴 알렉산더 이오니데스Constantine Alexander Ionides의 딸 애그랄리아 코로니오Aglaria Coronio와 메리 잠바코Mary Zambaco, 마리 스파르탈리Marie Spartali를 모델로 한 것이다.
세 여인 모두 그리스 태생으로 런던의 부유한 그리스인 동호회에서 ‘삼미신三美神’으로 알려진 여성들로 작품에서도 삼미신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세 여신의 발은 땅 위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균형, 좌우대칭, 제스처는 솜씨 있게 표현되었지만 여신들은 육중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춤이라면 그들은 매우 느린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번-존스의 개인적인 사연도 들어 있는데, 그는 1867년에 메리 잠바코와 사랑에 빠졌다.
당시 그녀는 남편과 헤어진 여자 상속인이자 여류조각가였다.
잠바코의 연애행각은 스캔들이 되었고 번-존스의 결혼생활도 평탄치 못했다.


<비너스의 칭송 Laus Veneris>은 번-존스의 작품세계가 성숙단계에 이른 작품이다.
수평적인 면들을 이용하여 공간감을 주고 색채를 대담하게 사용한 것은 1850년대 로제티의 수채화들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전된 것이다.
이 작품은 미술과 음악과의 관계를 보여주는데, 번-존스가 흠모한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1813-83)는 1861년 파리에서 3막으로 된 낭만적 오페라 <탄호이저 Tannhauser>를 처음 공연했을 때 호평을 받지 못했지만 1876년 런던의 코벤트 가든Covent Garden에서 재연했을 때는 관중들의 갈채를 받았다.
독일 시인 탄호이저(1200?-70)의 이름이 전해 내려오는 참회의 노래로 민승전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탄호이저는 바이에른 지방의 기사 출신으로 전해오는데 경력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으나 각지를 편력하고 십자군에도 참여한 것으로 전해온다.
그에 관한 이야기는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1797-1856)의 시에서 다루어지고 바그너의 낭만적 오페라로 유명해졌다.
바그너의 <탄호이저>에서 방랑기사 탄호이저는 자신의 타락을 후회하면서 교황에게 사면을 청원하게 되는데 번-존스는 <비너스의 칭송>에서 그가 타락하는 순간을 포착하고 있다.
탄호이저는 열린 창문 너머로 에로틱한 비너스와 시녀들을 훔쳐보고 있다.
비너스의 집Venusberg 내부는 육체적 쾌락에 싫증이 난 듯 나른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비너스가 손으로 무심히 머리를 쓸어내는 포즈는 로제티 후기 여인상들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작품은 비너스의 모습이 메리 잠바코와 유사한 점에서 번-존스의 개인적인 사연과 관련지울 수 있다.
화면의 대부분이 장식적이며 표면이 태피스트리 같다.
실제로 비너스의 집안 가구들은 모리스 상사가 번-존스의 디자인으로 생산해낸 제품들과 비슷하다.
작품 자체가 수공예 정신의 모범적인 예가 되었다.
비너스가 입고 있는 의상의 무늬는 색이 마르지 않은 상태에서 도장을 일일이 찍어 만든 것으로 14세기 이탈리아의 방식을 좇은 것이다.
<비너스의 칭송>는 그로스베너 화랑Grosvenor Gallery에서 열린 두 번째 전시회에 출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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