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구분되어야 합니다.




해프닝Happening과 이벤트Event 모두 사건임에는 분명합니다.
홈에버Homever에 가면 시식코너가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집어먹습니다.
이는 해프닝에 비유할 수 있지요.
해프닝을 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을 의식하고 그들을 자신의 행위에 끌어들입니다.
내가 잘게 썰어놓은 소시지를 집어먹었다면, 나는 그 사람의 해프닝에 참여한 것이지요.
이벤트라고 주변 사람들을 참여시키지 말란 법은 없으나 구태어 구분하자면, 해프닝은 지방뉴스라면 이벤트는 전국뉴스라고 할까?
스케일이 더 크면 이벤트가 됩니다.
홈에버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여럿 시위를 할 때 주변에 있던 경찰관들이 다려들어 그 사람들을 끌어내어 버스에 태우면, 주변사람들이 참여한 것인데, 이는 해프닝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이벤트라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왜냐면 스케일이 커졌기 때문이지요.
말하자면, 해프닝은 작은 사건, 이벤트는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의적으로 구어적으로 이벤트는 좀더 큰 사건에 사용됩니다.
암튼 해프닝과 이벤트는 같습니다.

그러나 퍼포먼스는 다르지요.
가령 가수가 노래를 부르다말고 객석에 내려와 객석에 앉아있는 사람에게 한 구절 노래를 따라부르게 해서 그 사람을 참여시킬 수는 있더라도 그것은 분명 퍼포먼스입니다.
퍼포먼스는 해프닝과 달리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미리 준비한 각본대로 하는 것입니다.
약간의 해프닝적인 요소를 첨가시킬 수는 있습니다.
요즘 탈장르시대라서 다른 장르의 형식을 조금은 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된 것은 가수가 원래의 악보대로 노래를 불렀다면 그것은 퍼포먼스이지요.
재즈에 즉흥연주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애매한데, 해프닝이라고 말할 수 있더라도 주변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면, 연주자 혼자 건반을 두드렸다면 파포먼스로 보아야 합니다.
퍼포먼스는 그러니까 미리 준비한 것을 장소와 상관없이 진행하는 것입니다.
이와 달리 해프닝이나 이벤트는 장소에 따라서 그 형식을 달리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연'의 요소를 받아들이며 '즉흥성'입니다.
따라서 해프닝은 장소에 따라서 주변의 사람들의 성격에 따라서 다르게 진행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 제맛이 나는 것이지요.

그리고 제 몸을 매개로 삼아 하는 행위는 바디아트Body art로 따로 구분해야 합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지만, 무대 위에서 오줌이나 똥을 눈다던가, 자위행위를 한다던가(비토 어콘치가 여기에 해당됩니다) 하는 것은 바디아트입니다.
제 몸에 색을 칠하든가 몸을 일그러뜨린다던다, 햇볕에 붉게 태운다든가(오펜하임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하는 것은 바디아트입니다.
어느 젊은 여성 아티스트가 유난히 몸의 노출을 드러내며(미니스커트를 입고) 자신의 선정적인 모습(풍만한 젖가슴을 볼륨 있게 하고)을 부각시키던데, 이런 경우는 바디아트도 아니고 해프닝도 아니며 그저 또라이의 행위라고 보면 됩니다.
또라이의 행위라고 말하는 이유는 예술과는 전혀 상관없기 때문입니다.

결론으로 말하면 해프닝(혹은 스케일에 따라서 이벤트), 퍼포먼스, 바디아트 그리고 또라이의 행위를 확실하게 구분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