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반 데 벨데>
윌리엄 모리스의 사회주의적 디자인 개혁을 가장 열성적으로 지지한 인물로 벨기에의 아르누보 디자이너와 건축가들 가운데 가장 다재다능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앙리 반 데 벨데Henry van de Velde(1863~1957)는 1863년 4월 3일 안트베르펜에서 약제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881년 안트베르펜의 미술아카데미에서 회화를 공부했다.
같은 시기에 빈센트 반 고흐도 그곳에서 공부했다.
반 데 벨데는 1884년과 이듬해에 파리의 초상화가 카롤뤼스 뒤랑의 아틀리에에서 수학했으며, 클로드 모네, 폴 시냐크, 카미유 피사로, 휘슬러 같은 인상주의, 신인상주의 및 상징주의 화가들과 친분을 갖게 되었다.
1880년대에 화가로서 경력을 쌓기 시작한 그는 벨기에 화가들의 단체 뱅(20인회)이 주최한 전시회에 출품된 조르주 쇠라와 반 고흐와 같은 후기인상주의자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
1884년에 형성된 뱅에는 아방가르드에 속하는 일련의 화가들이 있었고 제임스 앙소르James Ensor(1860-1949)도 뱅의 일원이었다.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을 종종 소름끼치고 엽기적인 해골이나 악마의 모습으로 표현한 앙소르가 주로 다룬 소재는 인간 희극의 상징인 그로테스크한 가면으로 이는 그의 작품에서 끊임없이 등장한다.
반 데 벨데는 1889년에 뱅의 일원이 되었다. 그 해에 어머니가 타계하자 정서적 위기에 빠진 반 데 벨데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가 완전히 회복한 건 1893년이었다. 그는 그때부터 공예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뱅이 1893년 해체되기 전 연 마지막 전시회에 그는 <수호천사 A Guardian Angel>라는 태피스트리를 출품했는데, 그것은 동화적이고 순진무구하며 상징주의에 가까운 동시에 율동적이고 선을 강조한 형태의 작품이었다. 이 시기에 존 러스킨의 사상과 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의 이념을 알게 되었다.
1890년대에 이미 아르누보 형식과 동일한 추상화한 식물형태와 유선형으로 가구를 디자인한 반 데 벨데가 가구에 관심을 가진 건 자신의 취향에 맞는 디자인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의 많은 디자인 작품은 국제 아르누보의 징표가 될 선적인 자유로움을 특징으로 한다. 반 데 벨데는 실내장식뿐 아니라 태피스트리, 가구, 은제품, 도자기, 목걸이, 의자 그리고 패턴도 디자인했다.
완벽하게 디자인된 환경을 창조해내려는 그의 초기 시도는 1896년에 아내와 딸을 위해 브뤼셀 근처 위클Uccle에 지은 블루멘베르프 자택Bloemenwerf House이다. 이 집은 그의 디자인 이론을 입증하는 모델로 창호, 가구, 카펫, 커튼에서부터 식기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전통적인 형태의 모방에서 탈피해 합목적성이 있는 종합 디자인으로 완성된 것이다.
모리스를 좇아 반 데 벨데는 집뿐 아니라 내부에 모든 물건들의 배치를 구성했다. 세 개의 궁형 박공을 가진 단순한 이 집은 1858년 필립 웨브가 모리스를 위해 디자인한 레드하우스의 전범을 따른 것이다. 그가 디자인한 가구들은 대부분 만들어 넣은 것이거나 벽에 부착된 것으로 미술공예운동을 지향한 것이었다. 집 외부는 영국의 토착적인 양식이지만, 많이 깎아내어 자유로운 곡선을 이룬 가구와, 역시 자신이 디자인한 패턴 벽지가 있는 내부에는 총체적인 아르누보 전망이 드러난다. 가구와 그래픽 분야에서 반 데 벨데는 프랑스 아르누보를 특징짓게 될 관능적이며 지나치게 세련된 여성적 이미지를 피하고, 트로폰 초콜릿공장Tropone Chocolate Factory을 위해 1897년에 제작한 유명한 포스터에서처럼 유동적인 추상형태를 강조했다.
그는 1899년에 베를린에 있는 하바나 담배회사 상점Havana Tobacco Company Shop의 실내장식을 디자인하고 1901년에는 베를린의 최고 이발사인 프랑수아 하비Francois Haby의 이발소 실내장식을 맡았다. 이발소는 온수와 가스파이프 같은 설비가 겉으로 드러나 장식적인 요소로 이용된 기능적인 실내가 되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하바나 담배회사 상점은 과도한 환상의 표현이었다. 상점의 가구와 비품 그리고 채색장식은 상승적인 선적 운동감을 자아내도록 조정되었다. 그 운동감은 피어오르는 연기를 암시하는 추상적인 소용돌이가 반복되는 장식 띠가 있는 방 꼭대기에서 절정을 이룬다. 규모가 작은 건축설계는 디자이너와 건축가에게 더 많은 창조적 자유를 제공하여 완벽한 장식적 화려함과 극단적인 실험정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장을 제공했다.
미술가는 본질적으로 절대적인 개인주의자이며, 자유롭고 자발적인 창조자이기 때문에 규범이나 유형을 강요하는 규율에 복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반 데 벨데의 재능을 처음으로 인식한 사람들은 독일의 미술전문가들이었다.
빙은 1895년에 반 데 벨데로 하여금 네 명의 동료와 함께 아르누보 갤러리의 네 개 공간 실내장식을 디자인하도록 위탁했다.
1898년 ‘라 메종 모데른 La Maison Moderne’(현대의 집)이란 상점을 연 율리우스 마이어-그레페Julius Meier-Graefe(1867-1935)는 독일 출신의 미술사학자, 작가, 화상으로 파리에서 빙과 가장 치열한 경쟁을 벌였는데, 그조차도 반 데 벨데를 새로운 세대를 위한 스승이자 교육자로 보았다. 마이어-그레페는 1898년 브뤼셀의 민중의 집에서 ‘공예가이자 사회주의자인 윌리엄 모리스’라는 제목의 반 데 벨데의 강연을 듣고 그를 ‘모리스의 직접적인 후계자’로 명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