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브 세뤼리에-보비Gustave Serrurier-Bovy(1858~1910)>
앙리 반 데 벨데는 미술공예운동의 구성원들이 제작한 섬유, 벽지, 전등, 판화를 벨기에에 도입한 인물로 귀스타브 세뤼리에-보비Gustave Serrurier-Bovy(1858~1910)를 꼽으며, 그가 영국 미술공예운동의 감성을 최초로 해석한 디자이너이고 자신과 빅토르 오르타가 그의 뒤를 따랐을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벨기에 남동부의 리에주Liege의 미술아카데미에서 수학하고 영국 미술공예운동 소속의 길드가 운영한 학교에 다닌 세뤼리에-보비는 가족이 경영하는 공장에서 가구를 제작하는 일을 했다.
그는 1870년대에 존 러스킨과 윌리엄 모리스 그리고 프랑스의 건축가 외젠 에마뉘엘 비올레-르-뒤크Eugene Emmanuel Viollet-le-Duc(1814~79)의 영향을 받았으며, 프랑스 고딕 부활운동의 대변자 비올레-르-뒤크는 피에르퐁Pierrefonts의 성과 파리 센 강가의 시테 섬에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Notre Dame Cathedral의 복원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강의록인 『건축론 Treatises on Architecture』(1863~72)에서 그는 철과 유리의 과감한 사용을 주창했다.
1884년에 결혼 한 뒤 세뤼리에-보비는 리에주에 실내장식을 제공하는 매장을 열었으며, 그곳에 연 두 번째 매장에서 자신이 제작한 가구와 일본 양식의 공예품을 포함하여 리버티상사의 제품을 취급했다. 그는 자신의 가구공방에서 가구를 설계하고 제작했다.
1894년과 1895년에 자유미학에서 전시회를 열고, 1897년에는 브뤼셀 만국박람회의 콩고 전시관을 짓는 데 기여했다.
같은 해에 그는 파리에 지점을 냈다.
세뤼리에-보비가 1899년경에 제작한 마호가니 침대는 영국 미술공예운동의 중심인물로 서정성을 보여주는 패턴과 가구를 디자인한 찰스 프랜시스 앤슬리 보이지Charles Francis Annesley Voysey(1857~1941)의 떡갈나무로 제작한 <백조의자>와 <필기용 책상>에 나타나는 형태의 단순성과 구조적 정직성을 갖추고 있지만, 미술공예운동을 떠나서 과감하게 부르주아적 안락함이 배어나는 아르누보를 수용했음을 시사한다.
떡갈나무 대신 마호가니를 사용한 것 자체가 사치스러움으로의 전환을 의미하며, 이 점은 곡선적 덮개의 웅장한 형태와 디자인된 꽃문양으로 장식된 패널에서도 확인된다.
이 침대는 파리 지점에 전시되었다.
‘가정 속의 미술 L'Art dans l'Habitation’로 명명된 상점은 부르주아 가정의 방들로 이루어져 있어 1890년대에 디자인한 ‘장인의 방 Artisan's Room’과는 현격한 차이를 드러낸다.
세뤼리에-보비와 르네 뒬롱Rene Dulong이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은 식당인 청색관은 완벽한 아르누보 건축의 드문 예 중 하나이다.
1890년대 후반과 1900년대에 세뤼리에-보비의 가구는 초기작품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고딕부활 양식과 미술공예운동의 영향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고 표현적인 아르누보 형태로 발전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