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폰스 마리아 무하Alphons Maria Mucha(1860-1939)>
프랑스의 아르누보는 특히 여성적 형태를 많이 사용했다. 뫼렌Mohren에서 태어나 빈과 뮌헨에서 교육을 받은 체코의 그래픽 디자이너 알폰스 마리아 무하Alphons Maria Mucha(1860-1939)는 프랑스 여배우 사라 베른하르트Sarah Bernhardt(1844-1923)를 주제로 일련의 연극포스터를 통해 파리 아르누보의 이국적이고 무절제한 성과 동일시했다.
1890년대에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인 베른하르트는 무하에게 자신의 연극포스터를 아르누보 양식으로 디자인해줄 것을 의뢰했다.
<지스몽다 Gismonda>(1894)에서 무하는 베른하르트를 대담하게 양식화된 모습으로 묘사했다.
베른하르트의 물결치는 듯한 의상은 포스터라는 이차원 형태에 적합한 무하의 복잡하고 정교한 선적 양식과 잘 어울렸다.
무하의 이미지는 1890년대 중반에 파리 대중에게 독창적이며 인상적으로 받아들어졌으며, 그가 묘사한 여배우의 모습은 이상화된 세기말 여성을 대중화하는 데 한 몫을 했다.
<라 사마리텐 La Samaritaine>(1894)을 위한 포스터에서 무하는 베른하르트의 물결치는 머리카락을 중점적 장식 모티프로 사용해 구불구불한 선과 곡선에 초점을 맞추었다.
무하는 많은 포스터에서 그녀의 몸을 가늘고 길게 늘어진 모습으로 표현했다.
세기말적 이상을 충족시키기 위해 실제 모델을 보고 그린 드로잉에 베른하르트의 머리를 붙였다.
무하는 1901년 루아이알Royale 가에 소재한 조르주 푸케Georges Fouquet(1862-1957)의 보석상점을 디자인했다.
꽃문양 모티프를 사용하여 새로운 유형의 보석을 창조한 푸케는 1900년에 무하가 디자인한 보석을 생산하여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베른하르트를 위해 제작한 포스터로 성공을 거둔 무하는 일련의 상업포스터를 제작하게 되었고, 욥Job 담배종이 같은 제품을 위한 포스터에서 대중에게 유혹적이며 방종한 자세로 아라베스크 모양을 이루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으로 가득 찬 낭만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무하는 욥 담배종이에 나타난 환상을 3차원으로 표현하는 방법으로 푸케의 상점을 장식했다.
상점 계산대에는 두 마리의 공작이 장식되었는데, 한 마리는 꼬리를 활짝 펴서 자신의 화려함을 한껏 과시하는 조각이다.
공작은 1870년대와 1880년대 심미주의운동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모티프로 일본화에서 유래했다.
공작의 양식화된 묘사는 많은 디자이너들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1877년 제임스 애벗 맥닐 휘슬러James Abbott McNeill Whistler(1834-1903)의 <공작의 방 The Peacock Room>이 유명하다.
공작은 동양을 연상시킬 뿐만 아니라 자부심과 과시를 함축하는데, 이는 아르누보의 낭만적 개인주의에도 남아 있는 심미주의운동의 주요 주제였다.
유행과 부를 구현한 공작은 푸케의 상점을 위한 완벽한 모티프가 되었다.
실내에는 거품이 이는 샘물에서 솟아오른 요정의 조각과 여성 형상을 주요 모티프로 한 환상적인 벽난로가 있다.
벽난로의 기단부 양쪽에는 웅크린 두 인물이 측면에 매달려 있으며, 연체동물 형태의 난로로 가리개 위쪽에는 반투명 옷을 걸치고 팔을 든 채 서 있는 여신상이 있다.
그림이 그려진 벽난로 장식 선반에는 웅크리고 앉은 채 아래를 내려다보는 여인이 묘사되어 여성의 몸이라는 주제가 지속된다.
이는 현란한 과시가 진보적 디자인 개념만큼이나 중요했던 고객을 겨냥한 것이다.
베른하르트는 자신의 활약을 통해 신여성의 이상을 구현했다.
여성의 지위에 대한 사회의 관심은 프랑스 아르누보에 반영된 많은 동시대 주제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이다.
19세기 말경에는 신비주의와 같은 반이성주의나 심리학과 신경학에서의 새로운 연구를 통해 밝혀진 꿈과 무의식에 대한 활발한 관심이 나타났다.
두 세계에 대한 관심은 아르누보의 이미지에도 반영되었다.
무하가 1899년판 주기도문인 <르 파테 Le Pater>를 위해 제작한 표지그림에는 일곱 개의 별 속에 들어 있는 18세기 초 영국에서 시작된 세계시민주의적, 인도주의적 우애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 프리메이슨 상징과 히브리 상징이 보인다.
주기도문을 위한 표지로서는 비기독교적인 이 디자인은 세기말의 미술계에 퍼진 종교에 대한 절충적인 태도를 잘 드러낸다.
히브리 상징은 19세기 말에 새롭게 관심의 대상이 된 고대 유대인의 신비주의 전통에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