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바그너 Otto Wagner(1841~1918)>
네덜란드의 건축가, 도시계획가 헨드리크 페트루스 베를라헤Hendrik Petrus Berlage(1856~1934)와 미국 현대 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헨리 홉선 리처드슨Henry Hobson Richardson(1838~86)과 마찬가지로 19세기의 양식 부흥 건축으로부터 벗어나는 데 공헌한 오토 바그너Otto Wagner(1841~1918)는 펜칭Penzing 태생으로 1857년에 빈 공과대학에서 공부한 뒤 베를린으로 가서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Karl Friedrich Schinkel(1781-1841)의 사상에 접하게 되었는데, 싱켈은 비더마이어Biedermeier 양식과 더불어 19세기 고전주의를 드러낸 독일의 대표적인 건축가였다.
과거의 전통에 의존하면서도 19세기에 적합한 새로운 양식의 도래에 대한 싱켈의 예측을 바그너가 빈에서 실현했다.
바그너의 첫 번째 주택은 1886년 빈 교외에 세워졌으며, 그 주택은 거대한 열주가 세워진 정면과 우아한 양식의 정원을 갖추어 교외의 장대한 풍광을 반영했다.
1890년대에는 케른트너Karntner 가에 있는 백화점을 포함한 일련의 수수한 바로크 양식의 주택과 상업용 건물을 설계했으며, 유리와 철근 볼트, 그리고 대리석판으로 마감한 실내장식은 당시에는 보기 드문 단순함과 근엄함을 시위했다.
바그너는 1894년에 일련의 정거장과 도시를 가로지르는 교량들로 구성된 새로운 도시전차Stadtbahn 철도망설계 공모전에 당선되었다.
그리하여 주변의 환경과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한 역사주의 양식의 건물들이 세워졌다.
당시 바그너의 사무실에서 조수로 일한 올브리히가 작업했을 양식화된 해바라기 모티프와 선적 장식이 건물들에 생기를 부여했다.
도시전차 프로젝트는 당시 가장 유명했던 공공사업이었으므로 바그너의 작품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그는 조형예술학교Academy of Fine Arts 학생들을 위해 자신의 교수취임기념강의를 출판한 『현대 건축 Moderne Architektur』(1894)에서 미학적 입장을 밝혔으며 이 책은 20세기 현대건축의 청사진으로 읽힌다.
그는 “필요는 미술의 유일한 어머니 Artis sola domina necessitas”라는 원리를 주창했으며, 건축은 동시대의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고 이를 표현할 적절한 형태를 탐구해야 하고, 과장되고 부적절한 장식을 피하고 양식부흥이라는 잘못된 요소도 버려야 한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경이롭게 받아들여진 작품은 1898년 빈자일레 가 38번지와 40번지에 소재하는 두 아파트로 뮌헨에서 유행하던 유겐트슈틸 장식으로 꾸며졌다.
두 건물은 고전건축과 장식어휘에서 선택된 다양한 요소들을 갖췄으며, 둘 모두에 장미꽃과 아칸서스 잎으로 장식된 벽면에 수평으로 돌출한 돌림띠cornice가 있다.
40번지의 다채색 정면은 위로 퍼져 올라가는 덩굴손과 꽃으로 덮였으며, 수천 개의 도자기타일로 이루어진 장식으로 인해 ‘마졸리카 하우스 Majolica House’라는 별칭을 얻었다.
마졸리카는 지중해의 미요르카 섬 상인이 에스파냐의 도자기를 이탈리아로 반입한 데서 이탈리아인이 명명한 호칭이다.
마욜리카Maiolica라고도 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부터 사용된 마졸리카라는 명칭은 근동에서 발달한 밝게 채색된 유약을 입힌 도자기에서 유래한 명칭이다.
마졸리카 하우스 위쪽 창문에는 세로로 홈이 난 소용돌이 장식 위에 사자 마스크가 놓여있다.
38번지의 아파트는 황금 벽토로 장식되었고, 내부의 계단, 가구 그리고 아파트에 어울리는 도자기 스토브와 같은 마졸리카 설비는 바그너가 새로운 장식적 양식을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잎 무늬로 된 투조透彫장식과 부조浮彫장식 같은 실내디자인 요소들은 기하의 소멸과 빈 아르누보가 성취한 유기적 선의 등장을 알린다.
38번지 건물의 상층부에 깃털로 장식되고 꽃줄기를 늘어뜨린 원형장식이 있고, 건물 꼭대기에는 작은 여성 조각상이 올려져있다.
요제프 마리아 올브리히의 빈 분리파 건물과 마찬가지로 두 건물에서도 전통적 형태와 급진적 근대 장식이 결합되었다.
특히 유겐트슈틸 양식을 사용한 40번지 아파트 정면의 장식 이면에는 기본적으로 고전적 단순함이 존재한다.
바그너의 급진적인 작품은 <오스트리아 우체국 저축은행 Austrian Post Office Savings Bank>에서도 발견되지만 동시에 그의 근대성 옹호가 전통에 대한 완전한 거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강철로 된 아치 모양의 유리지붕, 간결한 세부 그리고 매우 단순한 형태가 돋보이는 은행의 중앙 홀에 대해 동시대 평론가들도 건축의 미래를 제시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우체국 저축은행이 완공된 1906년에 바그너는 65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