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인슈타인과 철학>




아인슈타인은 초기에 데이비드 흄의 철학에서 영향을 받았다.

상대성이론은 그 자체로 실증주의를 의미한다. 그런 사고방식은 나의 노력에 큰 영향을 주었다. 가장 대표적으로 마르가 그랬고, 흄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했다. 나는 상대성이론을 발견하기 직전에 흄의 『인성론』을 감탄하면서 열심히 읽었다.

흄은 자신의 회의적인 엄격함을 시간의 개념에 적용했다.
그는 시간이 우리가 움직임으로부터 시간을 정의할 수 있도록 해주는 관찰할 수 있는 물체와 무관한 절대적 존재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이디어와 느낌의 연속으로부터 시간의 아이디어를 형성한다. 시간 자체가 홀로 형상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절대적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아이디어는 훗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도 등장한다.
시간에 대한 흄의 구체적인 생각보다는 인식과 관찰에 의해 정의할 수 없는 개념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그의 일반적인 통찰이 아인슈타인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

아인슈타인은 “칸트는 흄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단계가 된 아이디어를 내놓았다”고 했다.
“이성 그 자체를 근거”로 하는 “명백하게 확실한 지식”의 범주에 포함되는 진리도 있다.
이는 분석적 명제analytical proposition로 예를 들면 모든 총각은 미혼이라거나 2 더라기 2는 4라거나 삼각형의 합은 항상 180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훗날 칸트의 분석적 명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삼각형의 합은 180도이다”처럼 순수하게 분석적인 것으로 보이는 명제도 비유클리드 기하학이나 (일반상대성이론에서처럼) 굽은 공간에서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훗날 그는 기하학과 인고상의 개념에 대해 말했듯이 “물론 오늘날 앞에서 이야기한 개념들에는 칸트가 그런 개념의 탓이라고 했던 확실성이나 고유한 필요성이 전혀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했다.

아인슈타인은 에른스트 마흐 덕분에 한 단계 더 발전했다.
훗날 아인슈타인은 마흐의 천재성이 부분적으로 그의 “절대 변하지 않는 회의주의와 독립성” 때문에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인슈타인의 설명에 따르면 마흐 철학의 핵심 “개념은 우리가 그것이 뜻하는 대상과 그것이 그런 대상에게 부여하는 법칙을 정의할 수 있는 경우에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즉 개념이 의미가 있으려면 그것에 대한 현실적인 정의, 즉 그런 개념이 작동하는지를 관찰할 수 있는 방법을 설명해주는 정의가 있어야 한다.
그런 철학은 몇 년 후 아인슈타인과 미셸 베소Michele Besso가 두 사건이 동시에 일어난다는 단순한 것처럼 보이는 개념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관찰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유용했다.

마흐가 아인슈타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뉴턴의 절대적 시간과 절대적 공간에 대한 개념에 그런 접근법을 적용하도록 한 것이다.
마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관찰을 근거로 그런 개념을 정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마흐는 뉴턴의 절대적 공간의 개념적 기괴함을 비웃었다.
그는 그것을 “경험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순전한 상상의 것”이라고 했다.

바루흐 스피노자가 아인슈타인에게 준 영향은 주로 종교적인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감탄을 자아내는 아름다움, 합리성 그리고 자연법칙의 통일성에 반영되는 무정형의 신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스피노자와 마찬가지로 아인슈타인도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보상하고, 벌을 주며, 간섭하는 개인적인 신은 믿지 않았다.
더욱이 아인슈타인은 스피노자로부터 자연법칙은 우리가 이해하기만 하면 불변의 원인과 결과를 결정하고, 신은 어떤 사건이 무작위적이나 비결정론적으로 일어나도록 해주는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결정론에 대한 믿음을 이어받았다.
스피노자는 “모든 것은 성스러운 자연의 필요에 의해서 결정되어 있다”고 주장했으며, 양자역학이 그런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했을 때도 아인슈타인은 확고하게 그런 주장이 옳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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