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만끽
요즘 날씨가 너무 좋아서 시간을 횡재했는데도 그것을 어디에 써야 좋을지 몰라 망설여지는 기분입니다. 철학자 니체는 9월생인데 자신의 생일을 가을이라고 했습니다. 가을은 과연 축복과 결실의 계절이란 생각이 듭니다. 축복은 마당에 있는 물든 감나무의 잎에서도 발견할 수 있으며, 시선을 멀리하면 산이 붉게 물든 데서 알 수 있습니다. 결실 또한 마당에 있는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감에서 그리고 시선을 멀리하면 황금빛 들판에서 알 수 있습니다.
금년에는 과거보다는 더 가을을 타는 느낌이라서,
지지난 주말에는 전등사에 갔습니다.
가기 전에 검색을 하니 381년 소수림왕 11년에 아도가 창건했고, 고려 충렬왕(1274-1308)의 비 정화궁주가 이 절에 옥등을 시주한 데서 전등사란 명칭이 비롯했다고 나왔습니다. 실은 과거에 간 적이 없었던 절이라 검색을 통해 매우 들뜬 마음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막상 가서 보니 난장판이었습니다. 그날 축제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건 절이 아니라 시장에 온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절 입구에는 고구마와 강화도 토산물을 파는 사람들이 있었고, 중이 경을 읽는 소리를 확성기로 크게 틀어놓아 매우 시끄러웠습니다. 경 읽는 소리는 바람을 타고 겨우 흘러나와야 멋있는 것인데 확성기로 시끄러울 정도이면 전시적일 뿐입니다. 그리고 명부전이야 천장에 명패를 주렁주렁 달아 사자의 저승길을 편히 해주려고 기복신앙으로 뒤덮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대웅전에서 조차 명패를 천장에 주렁주렁 매달아놓은 것은 꼴불견이었습니다.
그렇잖아도 절에 가기 전에 문인들과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모든 종교는 우리 고유의 샤머니즘과 융화되어 기복신앙으로 나타난다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기독교도 그렇고. 암튼 우리나라에서의 종교는 복을 비는 곳입니다. 물론 돈을 갖다 바친 후에 그에 상응하는 복을 기원하는 것이지요. 사자의 혼이 중들의 염불로 좋은 곳으로 간다는 것은 매우 웃기는 일이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49제를 통해 그것을 믿는다는 것은 매우 웃기지도 않는 일입니다. 명부전은 원래 인도의 불교에는 없는 것인데 중국에서 만들어져 우리나라로 들어온 것입니다. 샤머니즘의 뿌리가 내리기 쉬운 것으로 만들어진 것이지요.
대웅전은 참으로 마음에 드는 말입니다. 부처를 큰 영웅으로 부르는 것은 매우 타당해보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법주사에 갔습니다. 신라시대에 의신義信이 인도에 가서 경전을 얻어 귀국한 후 나귀에 싣고 속리산으로 들어가 553년, 진흥왕 14년에 이 절을 창건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법法이 안주할 수 있는 탈속脫俗의 절이라 하여 법주사란 명칭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선덕왕 대에 중수했는데, 현존하는 석물들이 그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법주사는 기대에 부응할 정도로 인상이 매우 좋았습니다. 매우 큰 절이고 주변의 산들이 붉게 물들어 더욱 흡족했습니다. 쌍사자석등이 특히 훌륭했고, 석련지석등, 마애여래의상 등 석물들이 보기에 좋았습니다. 불국사에서도 느낀 바이지만, 신라시대의 절에 가면 여전히 꿈과 이상이 있고, 종교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다는 느낌입니다. 조선시대에 손본 절들치고 아름다운 절은 없는 것 같습니다. 고려 때만 해도 삼국시대에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문화가 퇴보했지만, 그런대로 봐줄만 하지만, 조선시대에 와서는 정말이지 퇴보가 극심합니다.
암튼 가을을 만끽한 주말이 두어 번 있어서 글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