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급예술과 저급예술 그리고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
두 주에 걸쳐 관훈클럽에서 강의하면서 ‘고급예술과 저급예술 그리고 좋은 취향과 나쁜 취향’에 관해 언급했습니다.
언론인들이라서 강의를 소화하는 능력이 일반인들을 위한 강의에 비해 현저하게 높았습니다.
예술이 반드시 고급이어야 하는가? 하고 물으면, 답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팝아트가 출현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즉 1950년대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예술이 고급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19세기 중반 이후 예술은 소수를 위한, 즉 지성인들을 위한 예술로 자리매김 되었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에 들어서, 특히 존 케이지의 영향 하에, 삶과 예술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팽배했고, 삶이란 폭넓은 대중의 삶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예술의 주제를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대중이 관심을 갖는 데서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예술은 매우 친근하게 대중에게 다가갔지만, 질이 현저하게 떨어졌습니다.
고급예술이 저급예술로 그 격이 떨어진 것입니다.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예술이 고급이다 저급이다 하고 판단하는 기준은 시대마다 다릅니다.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취향과 미에 대한 판단에 따라서 이뤄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가 시대 사람들의 취향과 미에 대한 판단은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릅니다.
동시대를 살고 있더라도 서양과 동양의 문화적 배경이 다르므로, 동양이라도 각 나라 혹은 민족의 문화적 배경이 다르므로 그 사람들의 취향과 미에 대한 판단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문화적 배경은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지구가 하나의 생활권이 되면서 문화적 배경은 다양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존중되고 있습니다.
문화적 배경 때문에 창작을 가려지는 경우는 드뭅니다.
주목해야 할 점은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이 취향과 미에 대한 판단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관훈클럽에서 언급한 내용으로 다음의 예를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클래식음악을 전혀 듣지 않고, 오페라나 뮤직컬, 재즈 등 다양한 음악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태진아와 송대관의 노래만 나오면 신이 나서 따라 부른다면, 그 사람은 음악에 대한 나쁜 취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음식의 종류가 다양한데, 짜장면과 짬뽕만 맛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음식에 대한 나쁜 취향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취향과 관련해서 집단취향이란 말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나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아주 많으면 집단취향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나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미에 대해서 좋은 판단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앞서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이 취향과 미에 대한 판단에 의해 이뤄진다고 했는데, 집단취향이 나쁘면 그 사회의 예술은 저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은 취향을 갖기 위해서는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고, 다양한 것들에 대한 경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이나 음식에 대해 좀 더 알고 좀 더 경험한 후에 어떤 것이 좋다고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취향과 미에 대한 판단은 어차피 주관적인 것입니다.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다양성을 존중하고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어느 것을 선택하여 취향에 적합하다거나 좋다고 판단한다면, 그 사회의 예술은 고급화됩니다.
오늘날의 예술에서의 문제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입니다.
대중성을 띠어야 하지만, 질을 높여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술가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대중성 속에 일반 사람들의 취향과 미에 대한 판단이 근거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보편적인 혹은 평균적인 사람들의 취향이 나아져야 또는 미에 대한 판단이 질적으로 향상되어야 예술가가 거기에 걸맞는 예술작품을 생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급예술이 성행하는 나라의 사람들의 취향은 고급입니다.
반대로 저급예술이 성행하는 나라의 사람들의 취향은 저급입니다.
예술의 고급화는 관람자의 취향이 먼저 고급화되는 데서 이뤄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