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야기>
어제 대전에 소재하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 가기 위해 서울역으로 갔습니다.
기차에 탑승하기 전에 담배 한 대를 피우는 건 습관입니다.
노숙자 한 사람이 다가와 “형님, 담배 하나 주십시오” 한다.
하나를 건네주었다.
그는 “동료에게 줄 것도 하나 주십시오” 한다.
“안 돼!” 하고 말했다.
“알았습니다” 하고 저만치 간다.
기차를 타러 가면서 내가 왜 안 된다고 말했을까 생각해보았다.
처음에는 제 주제에 동료의 것까지 챙기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생각했다.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호두과자를 먹고 있었다면 그에게 그의 동료의 것도 주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평소에 유해음식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걸 그의 동료에게까지 준다는 게 싫었던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꼭 한 시간 만에 대전에 도착했다.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국립문화재연구소로 가자고 하니,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
주소를 말하니 기사가 자신의 머리를 가리키면서 “이놈의 내비게이션이 빨리 작동하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하고 말한다.
그쯤 유모가 있는 사람이라면 대화가 가능할 것 같아 대전 특산 음식물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없다면서 대전시가 근래에 삼계탕과 칼국수를 대전의 특산 음식물로 지정했다고 말한다.
그게 대전 특산물이 되겠느냐고 물으니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시장이 그렇게 정했다고 말한다.
대전이 특색 없는 도시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온천에 관해 물었다.
지난번 유성온천장에 묵었는데, 호텔마다 다 온천수를 사용하는 건 아닌 것 같다고 하자,
그는 자신이 과거에 목욕탕을 한 경험이 있어 잘 안다면서 온천수를 100% 사용하는 데는 한 곳도 없고, 정부에서 관리하는 곳에서는 70%의 온천수를 사용한다고 한다.
보통 온천수를 탱크에 받아 수돗물과 섞어 사용하는데, 온천수를 30%만 사용하는 곳도 많다고 한다.
물을 미끄럽게 만드는 곳도 있는데, 소금을 섞기 때문이라며 그런 곳은 좋지 않다고 말한다.
온양온천도 마찬가지라며 정부에서 온천수의 사용을 법으로 제한하기 때문에 많이 사용할 경우 부과세를 더 내야 하므로 물을 많이 섞는다고 말한다.
몇몇 곳은 온천수를 60%까지 사용한다면서 그런 온천장을 말해주었다.
기사를 통해 온천에 대한 지식이 생겼다.
기사의 다음 이야기는 마음을 어지럽혔다.
자신의 하반신은 마비된 상태이고 오줌만 겨우 눌 수 있다고 한다.
어떻게 운전을 하느냐고 물으니 집에만 있기 답답해서 손으로 운전한다고 말한다.
기사의 말인즉,
자신이 큰 규모의 목욕탕을 논산과 대전에 각각 열고 사업이 잘 되었는데, 아내와 큰아들이 자기도 모르게 누군가의 보증을 섰다가 두 곳 다 날아갔다는 것이다.
법정관리가 6개월인데, 자신이 그 사실을 안 건 6개월 하루 뒤였다고 한다.
손쓸 시간도 없이 하루아침에 재산을 날렸다고 한다.
2004년의 일인데, 너무 분해서 신경성으로 서울 병원에 오래 입원해 있었고,
결국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성으로 하반신이 마비되었다는 것이다.
의사도 병인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에도 자다가도 누군가가 불방망이로 자신의 허리를 쑤시는 듯한 환상에 빠지고, 한 번은 아내를 죽이려고 목을 졸라 아내가 중환자실에 실려 간 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 대목에 이르러선 “이거 택시를 잘못 탔구나” 하고 생각했다.
기사와 승객이 가볍게 나눌 수 있는 대화로서는 섬뜩했다.
세상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담배를 청한 노숙자에게도 이야기의 보따리를 풀라고 하면 뜻밖의 이야기가 술술 나올 것이다.
사람들은 각자 남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품고 산다.
나에게도 아무한테나 말할 수 없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값싼 동정심을 받게 되면 더 부아가 치밀 것 같아 말하지 않고 꼭꼭 숨겨놓은 이야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꼭꼭 숨겨놓게 된다.
값싼 동정심과 맞바꾸기에는 너무 애절한 이야기라서 스트레스로 남기게 된다.
어쩜 택시기사는 섬뜩한 이야기이지만, 자신의 아내를 목 졸라 죽이려고 했다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히는 이야기이지만, 그렇게 해서 그는 고통의 통로를 벗어난 것 같았다.
스트레스는 말로 쏟아내는 것이 상책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도착하자 따뜻한 공기가 뺨을 스치는데, 기사의 이야기 때문인지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오랜만에 만난 강실장이 맛있는 차, 백설기, 포도주, 고량주 등으로 대접해주어 담소하느라 우울한 이야기는 이내 사라졌다.
미식가인 강실장이 데려간 곳에서 굴국밥과 굴부추전을 먹으니 일품이었다.
대전의 특산물로 삼계탕과 칼국수 대신에 굴국밥과 굴부추전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 책상 앞에 앉으니 그 택시기사의 이야기가 다시 생각난다.
아내의 목을 졸랐다는 인생,
하반신이 마비된 인생,
분노를 삭이며 살아가야 하는 그 인생이 여간 딱하지 않다.
세상에는 딱한 이야기가 아주 많은 것이다.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이야기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