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끼 드롭스 3
우니타 유미 지음, 양수현 옮김 / 애니북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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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사랑할 내가 심는 나무
 [만화책 즐겨읽기 148] 우니타 유미, 《토끼 드롭스 (3)》

 


  예전에 살던 시골집에 살구나무 두 그루를 심었습니다. 예전 시골집에서 오늘 살아가는 시골집으로 옮기며 살구나무 두 그루도 파서 옮길까 하다가 그만두었습니다. 아직 어린 나무였으니 옮겨도 될 만하다 싶었는데, 그냥 두고 왔습니다. 아쉽거나 안쓰럽기에 그대로 두지는 않았습니다. 새롭게 살아갈 터에서는 새롭게 누리는 우리 아이들 두 나무 새 씨앗으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나는 어릴 적 나무를 옳게 생각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둘레에서 듣던 얘기는 많아, 나도 내 나무 한 그루 건사하고 싶었습니다. 예부터 가시내가 태어나면 오동나무를 심는다 했어요. 가시내가 무럭무럭 자라 시집을 갈 무렵 오동나무 또한 무럭무럭 자라, 옷장 하나 짤 만큼 우람하게 자란다 하더군요. 그렇다고,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서 어른들이 오동나무 심는 모습은 못 보았어요. 더 먼 옛날, 사람들이 흙에 기대어 흙집 짓고 흙밥 먹던 때에나 오동나무를 심었다 했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가만히 듣다가, ‘그러면 가시내 말고 사내가 태어나면 무슨 나무를 심나요?’ 하고 물으면, 딱히 무어라 말이 없습니다. 사내가 태어날 때에 사내더러 아끼거나 사랑할 만한 나무를 굳이 어느 한 가지로 삼지는 않았다고 할까요.

 

 


- “음, 그러니까, 린 학교 입학 기념으로 나무를 심는 거야.” “기념.” “그러니까, 추억 같은 거지.” … “난 비파가 좋아!” “비파?” “응! 이거! 급식 때 나온 비파 씨앗이야.” “씨앗을, 심겠다고?” “비파 맘대로 먹게.” (11, 14∼15쪽)
- “야, 코우키! 놀고만 있으면 생활 시간 끝나버리잖아! 빨리 앉아서 그림 그려! 쟤네들 따라서 딴짓 하면 안 돼!” (152∼153쪽)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라며 늘 ‘내 나무’는 어떤 나무로 심으면 좋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내 집도 내 땅도 없는 주제라 할 테지만, ‘내 나무’를 꿈꾸었습니다. 오동나무? 감나무? 배나무? 이런 나무 저런 나무를 떠올립니다. 그러다가 이내 입시지옥 생각으로 빠지며 나무 생각을 잊습니다. 한창 학교 수업을 받거나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을 하다가 나무를 생각하곤 했는데, 내 꿈생각은 오래 갈 수 없었습니다.


  2008년에 첫째가 태어납니다. 그렇지만 이때에도 도시에서 살림집을 거느리느라 ‘내 나무’는커녕 ‘아이 나무’조차 바라지 못합니다. 2011년에 둘째가 태어납니다. 둘째가 태어나기 앞서 세 식구가 시골로 살림을 옮겼기에, 이제 세 식구 나무를 생각할 만합니다. 먼저 ‘두 아이 나무’를 생각합니다. 두 아이가 우리 시골집을 떠올리도록 할 만한 나무로 무엇이 좋을까 생각한 끝에 어린 살구나무 두 그루 마련해서 마당 가장자리에 심었어요. 그런데 어린 살구나무 두 그루 심고 나서 여섯 달 뒤에 새터로 옮깁니다. 아이들이 씩씩하게 커서 어른이 될 무렵 ‘우리 집은 살구나무 두 그루 예쁘게 자라는 집’이라 말하고 싶었으나, 이 꿈이 깨집니다. 이 꿈이 깨지니, 딱히 살구나무까지 파내어 새터로 옮기고 싶지 않더군요.

 


- ‘솔직히 나는 불안하기 이를 데 없다. 딱히 위험하지도, 멀지도 않은 길을 린이 걸어다니는 것뿐인데. 나는 여섯 살 때부터 유치원에 혼자 걸어서 다녔고, 그것도 린보다 먼 거리였던데다가 자전거 타고 친구 집에 놀러 가기도 했을 정도였는데.’ (51쪽)


  오늘 살아가는 우리 시골집은 여러 나무가 함께 살아갑니다. 이 시골집에서 예전에 살던 홀로 남은 할머니하고 어깨동무하던 나무들입니다. 딸아들 모두 도시로 보내고 시골에 남은 할머니는 나무들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을까요. 후박나무하고 동백나무하고 감나무하고 무슨 이야기를 속삭였을까요. 뒤꼍 뽕나무와 무화과나무와 매화나무와 옻나무와 탱자나무와 모과나무하고는 어찌저찌 이야기꽃 피웠을까요.


  봄을 맞이한 나무들이 새잎을 틔우고 새꽃을 피울 때, 곁에서 나뭇가지와 잎사귀와 꽃망울을 살살 어루만지며 말을 건넵니다. 참 예쁘구나, 참 곱구나, 참 좋구나. 너희는 어쩜 이리도 어여쁜 꽃과 푸른 잎을 달며 튼튼하게 잘 자라니.


  후박나무 꽃봉우리 터질 때, 둘째를 번쩍 안아 휘휘 위로 던져 올리며 후박꽃 내음을 맡도록 했습니다. 좋은 마음 고운 생각 맑은 꿈을 서로서로 싱그러이 북돋우며 이곳에서 다 함께 즐겁게 살자고 바랍니다.


  문득, 옛 생각 하나 떠오릅니다. 국민학교 다니던 무렵인데, 내 나무 한 그루 심을 데 없던 도시였지만, 길과 골목마다 모든 아이들이 제 이름을 걸고 나무 하나 심도록 할 수 있으면 참 좋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꼭 멀디먼 멧자락을 찾아가 민둥산에 나무를 심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았어요. 사람들이 보금자리 이루어 살아가는 곳에서 예쁘게 심고 예쁘게 돌보면 넉넉하리라 생각했어요. 메마른 도시라 한다면, 푸른 기운 넘실거리며 사랑스러운 도시가 되도록 아이들이 새롭게 나무를 심어 스스로 ‘내 나무’를 돌보고 사랑하도록 하면 좋으리라 꿈꾸었어요. 이렇게 하면, ‘내 나무’를 돌보던 아이들이 커서 고향을 떠난다 하더라도, 어릴 적 돌보던 ‘내 나무’를 그리며 고향을 찾아갈 테고, 나중에 아이를 낳아 아이들 손을 잡고 어린 나날 ‘내 나무’ 우람하게 자란 모습을 올려다보며 굵직한 줄기에 온몸을 맡기며 나무내음을 맡을 수 있어요.

 

 


- “박스를 다루는 업무는 우리 회사에서 누구나 항상 하는 일입니다. 바쁠 때는 부장님도 상품을 포장하고 짐을 나르기도 합니다. 음, 뭐, 확실히 지루한 업무일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이건 단순작업이 아닙니다. 고객에게 가는 출고, 고객에게서 오는 반품, 거래처에서 오는 입고, 거래처로 보내는 출고, 촬영용 샘플, 회의용 샘플, 겉보기에는 똑같은 갈색 박스들이지만, 내용물의 의미는 제각각 다릅니다.” (86쪽)
- “으이그 이것아! 여기 일은 여자들한테 무리야.” “어머! 요새는 모집공고에 성별 구분 하면 안 된다고요!” “여자라도 남자 못지않게 팔힘이 있고, 피부 같은 거 신경 안 쓰면 상관없어.” (95쪽)


  우니타 유미 님 만화책 《토끼 드롭스》(애니북스,2008) 셋째 권을 읽으며 자꾸자꾸 나무 생각이 떠오릅니다. 만화책에 나오는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둘레 어른들이 나무 이야기를 자꾸자꾸 되새겨 주니 참 부럽도록 좋겠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나무를 생각하고 나무를 그리며 나무를 바라보며 자라는 아이는 언제나 나무 한 그루 소리와 내음과 빛깔과 무늬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살아가겠지요. 나무를 이루는 작은 씨앗을 생각하고, 작은 씨앗으로 큰 나무 이루어질 앞날을 그리며, 크게 자란 나무에서 다시 얻을 씨앗을 바라는 아이는, 늘 좋은 사랑과 착한 믿음을 고이 건사하겠지요.


- ‘슬프도다. 일을 안 하면 돈을 못 번다. 애 키우려면 일하는 시간이 줄어드니까, 수입도 준다. 다들 대체 어떻게 잔고를 맞추고 있는 거지? 내 경우엔 확실히 월급이 줄긴 했지만, 입사 9년차 기본급은 챙겨 받고 있으니까, 린 하나쯤이야 별 문제 없이 키울 수 있다. 하지만, 젊은 엄마 혼자 버는 집은 사정이 어떨까?’ (119쪽)
- ‘입으로는 투덜대지만, 이 녀석들은 정신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무슨 일이 있어도 린의 어머니처럼 될 것 같진 않아 보인다.’ (123쪽)

 

 


  나무 한 그루는 어미나무가 맺은 씨앗이 흙에 떨어져 새로 자랍니다. 아이들은 어버이가 사랑으로 맺은 씨앗이 얼크러져 새로 자랍니다. 씨앗 한 알에는 온누리 뭇사랑이 깃듭니다. 씨앗 한 알은 지구별을 아름다이 어루만집니다. 씨앗 한 알에서 새 삶이 열리고, 씨앗 한 알부터 새 이야기 펼쳐집니다.


  나무와 살아가는 아이는 나무와 함께 꿈을 꿉니다. 아이를 곁에서 바라보며 무럭무럭 크는 나무는 아이와 함께 사랑을 맺습니다. 봄을 맞고, 여름을 누리며, 가을을 즐기다가는, 겨울을 기다립니다. 봄에는 봄 이야기를 맺고, 여름에는 여름 이야기를 피우며, 가을에는 가을 이야기를 엮다가는, 겨울에는 겨울 이야기를 일굽니다.


- “린. 네가 키운 용담꽃 갖고 가면 할아버지도 좋아하시겠지만.” “그치? 그치? 그렇지?” “하지만, 할아버지는 네가 오는 거 자체를 제일 좋아하실 거야. 분명히. 그게 1위야.” (169쪽)
-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많지 않다. 외할아버지 집은 외삼촌 집으로, 내 집은 나와 린의 집으로, 변한다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208∼209쪽)


  어떤 나무를 어디에 어떻게 심어 어떤 마음으로 어떤 살림을 꾸릴 때에 내 하루가 즐거울는지 생각합니다. 내 둘레 어떤 나무를 어떤 눈길로 바라보며 어떤 생각으로 사랑하거나 아낄 때에 내 꿈이 빛날는지 헤아립니다.


  나한테서 좋은 생각이 솔솔 퍼져 내 둘레 나무들한테 스며듭니다. 내 둘레 나무들한테서 좋은 내음이 살살 퍼져 내 몸으로 깃듭니다. 손바닥을 나무줄기에 댑니다. 볼을 나뭇잎에 댑니다. 손가락을 꽃잎에 댑니다. 이마를 나무열매에 댑니다. 콩닥콩닥 뛰는 숨소리를 느낍니다. 콩닥콩닥 노래하는 숨결을 주고받습니다.


  신나게 들길을 걷다가 우뚝 서서 두 발바닥으로 지구별 숨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기쁘게 멧길을 오르내리다가 살짝 멈추어 두 발바닥으로 지구별 숨결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사랑할 사람은 곁에 있습니다. 사랑할 나무는 가까이에 있습니다. (4345.5.14.달.ㅎㄲㅅㄱ)

 


― 토끼 드롭스 3 (우니타 유미 글·그림,양수현 옮김,애니북스 펴냄,2008.12.22./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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