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메리카 인디언 - 눈빛 아카이브
에드워드 커티스 지음, 이주영 옮김 / 눈빛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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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아름다운 넋을 사진으로 담다
 [찾아 읽는 사진책 52] 에드워드 커티스, 《북아메리카 인디언》(눈빛,2011)



 해맑게 웃음지으면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해맑게 웃음짓곤 합니다. 잔뜩 찌푸린 얼굴이었어도, 고단한 일에 시달려 지친 몸이었어도, 둘레에서 해맑게 웃음지으면서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이 아이들한테서 해맑은 웃음과 기운과 넋과 꿈을 조금씩 나누어 받습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옷을 마련해 줍니다. 아이들은 아직 스스로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할 줄 모를 뿐 아니라, 길쌈이나 실잣기나 물레질을 하기 힘듭니다. 오직 어른들이 온갖 일을 치러서 옷을 한 벌 마련한 다음 아이들한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어른들은 아이들한테 옷을 비롯해 밥과 집을 마련해 줍니다. 어른이라면 누구나 내 아이나 이웃 아이한테 옷과 밥과 집을 베풀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어른입니다. 아이라면 내 어버이나 이웃 어버이한테서 옷과 밥과 집을 얻어야 합니다. 마땅한 노릇이에요. 아이들은 사랑을 받아먹어야 하고, 밥을 받아먹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좋은 잠자리를 고마이 얻어야 하며, 좋은 옷을 기쁘게 얻어야 해요.

 한편, 어른들은 아이들한테서 꾸밈없이 자라는 넋을 나누어 받습니다. 어른들 누구나 내 아이나 이웃 아이와 같이 어린 나날이 있은 줄을 되새깁니다. 아이들을 낳아서 돌보든, 이웃 아이들을 사랑스레 보살피든, 이 어린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내 지난날을 되짚고 내 앞날을 돌아봅니다. 내가 걸어온 길과 아이들이 걸어갈 길을 살핍니다. 내가 어른이 되기까지 걸었던 길이 얼마나 아름답다 할 만한가를 짚고, 이 아이들이 앞으로 걸어갈 길을 얼마나 아리땁게 건사할 만한가를 가눕니다.

 전문 사진쟁이가 되든, 여느 어버이나 아저씨나 아주머니가 되든, 사진기를 손에 쥐고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으려는 이들은 웃습니다. 아이들 해맑은 낯빛을 바라보며 함께 웃는 ‘사진기를 손에 쥔 모든 어른’입니다. 아이들 슬프거나 괴롭거나 고단한 얼굴빛을 마주하며 함께 우는 ‘사진기를 손에 쥔 모든 어른’입니다. 궂은 일을 숱하게 치르며 잔뜩 찌푸리던 어른이라 하더라도, 근심걱정 훌훌 털고 맑게 웃으며 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사진을 찍을 때에는, 궂은 일을 숱하게 치르며 짓눌렸던 마음이 스르르 풀어집니다. 좋은 일을 끝없이 누리면서 활짝 웃던 어른이라 하더라도, 근심걱정이 잔뜩 쌓여 몹시 슬프고 아프며 괴로운 몸짓을 하는 아이들을 마주하면서 사진을 찍을 때에는, ‘내가 이 아이들한테 무엇을 나눌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하는 슬픔과 아픔과 괴로움을 나란히 나누어 받습니다.

 누군가는 ‘나부터 아름답게 살겠습니다’ 하는 다짐을 새기면서 참말 아름다이 살아가려는 넋과 말과 몸짓을 건사하면서 사진을 찍겠지요. 누군가는 먹고살기 팍팍한 나머지, 또는 웬만큼 돈을 벌고 이름을 얻으면서 ‘티없이 꿈꾸던 첫마음’을 잃거나 내려놓은 나머지, 아름다운 사람과 사랑과 삶을 수수하게 껴안는 넋과 말과 몸짓이 없어진 채 사진을 찍겠지요.

 어떠한 넋과 말과 몸짓이건, 착한 꿈과 참다운 말과 고운 몸짓으로 웃으면서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사진을 찍는 ‘사진쟁이 어른’은 아이들한테서 착한 웃음과 참다운 눈물과 고운 삶을 느낍니디. 어른들은 아이들한테서 마음밥을 나누어 받고, 마음옷을 나누어 입으며, 마음집을 나누어 지냅니다.

 미국사람 에드워드 커티스 님이 빚은 사진과 글을 그러모은 두툼한 사진책 《북아메리카 인디언》(눈빛,2011)을 읽습니다. 그동안 한국땅에서는 북아메리카 토박이를 담은 에드워드 커티스 님 사진을 요모조모 가위질해서 내놓는 책이 더러 있었습니다. 이런 책이든 저런 책이든, 북아메리카 토박이 삶과 넋과 말을 다루는 책에서, 으레 에드워드 커티스 님 사진을 조용히 가위질해서 쓰곤 했습니다. 언제나 사진만 살짝 가위질해서 쓸 뿐, 에드워드 커티스 님이 북아메리카 토박이와 함께 지내면서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들어 책으로 일군 땀방울을 깊이 돌아보거나 넓게 살핀 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모르는 노릇이지만, 우리 한국땅에서 에드워드 커티스 님 사진책이 한국말로 옮겨질 일은 없으리라 여겼습니다. 퍽 비싼 값을 치러야 하지만, 일본에서 나오는 책이나 미국이나 유럽에서 나오는 책을 장만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글판으로 예쁘게 엮은 무겁고 두툼한 책을 만지작거립니다. 일본말과 영어로 된 책만 뒤적이면서 오직 사진만 읽던 책이 아니라, 한글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지작거리다니 마치 꿈만 같습니다. “아이들과 연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굳이 해석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인디언들은 아직도 자연 가까이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상업적인 이익을 보여주는 통계수치로 가득한 이야기가 아니라 큰 나무와 키 작은 덤불나무, 태양과 별, 번개나 비와 같은 우주 현상에 따르고 순응하는 그들만의 이야기를 나눈다. 모든 자연의 현상은 인디언들에게는 생명이 있는 창조물이다(12쪽).”처럼 한글로 옮겨진 에드워드 커티스 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어 고맙습니다.

 책을 덮고 곰곰이 헤아립니다. 에드워드 커티스 님은 북아메리카 토박이들이 서로서로 주고받는 말을 ‘알 수 없’었다고 밝힙니다. 그렇지만 ‘굳이 낱낱이 풀어서 알아야 한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북아메리카 토박이가 스스로 자연이 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에드워드 커티스 님 또한 자연으로 살며시 녹아들면서 마주할 때에는 가슴과 가슴으로 느낄 수 있는 말이 있거든요. 당신은 이 마음말이나 가슴말로 사진을 찍으면 됩니다. ‘목숨이 깃든 아름다운 넋’을 사랑하는 참말 ‘목숨이 깃든 아름다운 넋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하나하나 옮기면 넉넉합니다.

 예부터 이 나라 옛 어르신이나 북아메리카 토박이는 이야기했습니다. 사진을 찍으면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 얼이 조금씩 빠져나간다고.

 사진을 찍는 나는 늘 느낍니다. 사진을 찍으면 사진으로 찍힌 사람 얼이 틀림없이 조금씩 빠져나갑니다. 사진을 찍히는 사람은 제 얼을 조금씩 나누어 줍니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내 사진에 깃드는 사람들과 푸나무와 집과 땅과 하늘과 빨래와 벌레들 모두가 고맙습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 언제나 되새깁니다. 나한테 당신 얼을 조금씩 나누어 주는 사람들 따스한 사랑을 포근하게 껴안자고 되새깁니다. 당신은 나한테 사진에 깃드는 얼을 나누어 준다면, 나는 사진기 단추를 누를 때마다 이 손짓에 내 얼을 담아서 고스란히 나누어 주자고 생각합니다. 내 얼과 네 얼이 사진 한 장에 예쁘게 어우러지도록 하자고 다짐합니다.

 《북아메리카 인디언》에 담긴 사진들을 조용히 바라봅니다. 사진으로 찍힌 사람들 얼이 보입니다. 사진을 찍는 사람 얼이 나란히 보입니다. 두 얼이 서로 만납니다. 두 얼은 즐겁게 만나 기쁘게 춤을 춥니다.

 억지로 멋을 부리려 했다면, 사진으로 찍히는 사람이 얼을 나누어 주지 않습니다. 마음을 닫은 사람을 애써 멋들어지거나 거룩하게 보이도록 찍는댔자, 가슴으로 북받칠 만한 즐거움이나 기쁨이 샘솟지 않습니다. 이때에는 그냥 ‘그럴싸해 보이는 사진’이 ‘만들어졌구나’ 하고 느낍니다.

 사진은 만들 수 없습니다. 사진은 찍을 뿐입니다. 사진은 애써 꾸밀 수 없습니다. 사진은 수수하게 살아가는 그대로 투박하게 찍을 뿐입니다.

 “에드워드 커티스는 30여 년에 걸쳐 북아메리카 인디언의 전통과 풍속을 사실적이면서도 예술성 높은 사진으로 기록하였고, 1907년부터 1930년에 걸쳐 전 20권의 전집으로 출판하였다. 커티스가 인디언을 기록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에는 5년 안에 전 20권을 모두 출판할 계획이었지만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게 되면서 작업이 지연되어 193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완간할 수 있었다(762쪽).”고 합니다. 그러나, 나는 좀 달리 느낍니다. 에드워드 커티스 님은 “사실적이면서도 예술성 높은 사진으로 (북아메리카 토박이를)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에드워드 커티스 님은 다른 숱한 사진쟁이들하고 다르게 ‘찍히는 사람과 찍는 사람 얼이 나란히 사진 한 장에 깃들 수 있게끔’ 서로 어깨동무하면서 사진삶을 누렸습니다. ‘사라지는 북아메리카 토박이 삶’을 ‘적바림(기록)’하는 일을 짊어진 에드워드 커티스 님이라고는 느끼지 않습니다. J.P.모건이라는 재벌한테서 돈을 조금 받아서 사진책을 낼 수 있었다는 에드워드 커티스 님이라지만, 누구한테서 돈을 더 받거나 안 받거나 한다고 사진이 달라진다면, 이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부터 가슴으로 피어날 사랑꽃은 아예 없습니다. 돈이 넉넉히 있거나 값진 장비를 알뜰히 갖추었기에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없습니다. 돈이 모자라거나 값싼 장비를 한 가지만 겨우 갖추었대서 사진을 못 찍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부터 내 마음을 사랑씨앗 담아서 내밀고, 나와 마주한 벗이 당신 마음을 사랑열매로 일구어 나눌 때에, 시나브로 사랑꽃 어여삐 오래도록 흐드러지는 사진이 태어납니다.

 사진책 《북아메리카 인디언》을 찬찬히 넘기면서 새삼스레 느낍니다. 나한테 있는 에드워드 커티스 님 다른 사진책을 옆에 나란히 펼치고 넘기면서 한결같이 느낍니다. 어느 누구도 등떠밀려 사진으로 찍히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못마땅한 얼굴인 채 사진으로 찍히지 않습니다. 어느 누구도 싫은데 사진으로 찍히지 않습니다. 떳떳하고 스스럼없으면서 즐거이 사진으로 찍힙니다. 기쁘며 반갑고 예쁘게 사진으로 찍힙니다.

 내 아이를 사진으로 담거나 이웃 아이를 사진으로 담을 때 노상 느낍니다. 아름다운 넋으로 뛰노는 아름다운 아이들을 사진으로 담는 동안 내 몸과 마음은 어느새 아름다운 넋과 아름다운 손길로 거듭납니다.

 사진기를 손에 쥔 때뿐 아니라, 사진기를 손에서 내려놓은 자리에서도 나부터 내 아이와 이웃 아이 모두한테 아름다운 넋으로 아름다운 삶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어른으로 즐거이 꽃필 수 있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한 가지 덧붙입니다. 훌륭하게 처음 태어난 《북아메리카 인디언》이라는 사진책 하나 몹시 고맙습니다. 아주 기쁘게 장만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진책에 실린 사진결은 퍽 아쉽습니다. 에드워드 커티스 님이 애써 삶을 바쳐 찍은 사진이 꽤 많이 ‘새까맣게 죽었’습니다. 에드워드 커티스 님은 얼굴 주름 하나까지 사진으로 담으려 했고, 손으로 지은 옷 무늬와 바느질 결까지 사진으로 옮기려 했습니다. 머리카락 한 올 두 올까지 낱낱이 사진으로 담으려 했어요. 그렇지만 한국판 《북아메리카 인디언》은 이러한 결과 무늬와 느낌을 많이 죽이고 말았습니다. 너무 오래된 자료를 바탕으로 책을 묶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을 텐데, 판이 작은 사진이든 판이 커다란 사진이든, 더 많은 사진을 차곡차곡 싣는 일 못지않게 사진 하나하나 더 보드라이 매만져야 했다고 느낍니다. 한국판 사진책만 장만해서 읽는 분은 잘 모를는지 모르나, 나라밖에서 나온 여러 가지 사진책을 장만해서 읽은 사람이라면, 한국판이 더없이 아쉽다고 여길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이만 한 책이 한국에서 나온 일이 아주 고맙고 기쁩니다. 앞으로 찬찬히 가다듬거나 북돋우면 되지요. (4344.9.11.해.ㅎㄲㅅㄱ)


― 북아메리카 인디언 (에드워드 커티스 글·사진,이주영 옮김,눈빛 펴냄,2011.8.8./2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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