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욕망은 의지를 꺽고야 말았다.
친구한테 전화해서
기린 이찌방을 꼭 마시고 싶으니 사달라고 했다.
술을 좋아하지도 않는 친구한테.
청담동에 사는 친구가
싫은 소리 한마디 하지 않고 신촌으로 왔다.
친구는 거의 마시지도 않았는데
난 계속 "맛있지 않냐?" 하며 쭈~욱 들이켰다.
내가 알딸딸한 상태가 됐을 때,
친구는 신랑이랑 심야영화를 보기로 했다며
술값을 계산하고 택시를 타고 청담동으로 떠났다.
생각해 보면 난 참 뻔뻔하다.
누구를 만날 때 항상 신촌으로 오라고 한다.
그것도 오피스텔 바로 앞으로!
신촌까지 온 친구들한테 뻐기기까지 한다.
"나 요즘 바빠서 사람 잘 안 만나는데 너니까 만나는거야.
넌 특별하거든."
이래도 만나주는 친구들이 있으니,
신촌까지 와서 술 사주는 친구들이 있으니 다행이다.
고마워, 친구야!^^
난 신촌 시내 한 복판에 살고 있다.
오피스텔을 나가기만 하면 북적대는 시내 한 복판이다.
오랫동안 한적한 수도권 도시에 살았기 때문에
처음엔 적응이 잘 되지 않았다.
밖에 나가면
지금 입은 옷 그대로 해수욕장에 가도 좋을 것 같은
끈 나시에 아찔한 미니 스커트를 입은 애들이 가득하다.
촌스러운 커플티를 입고 있는 어린 연인들도 많다.
에구...사랑이 영원한지 알겠지? 어린 것들...
아까 잠깐 서점에 갔다 왔는데
손을 꼬~옥 잡고 지나가는 커플들을 보니
쩍 팔리게 덜~컥 외로웠다.
예전에는 똑똑한 남자를 좋아했다.
진중권 같이 글도 잘 쓰는데다 시니컬하게 말도 잘하는 남자를 보면
섹시함을 느꼈다.
지금은...
그런 남자들 트럭으로 갖다줘도 싫다.
시니컬한 남자, 생각 많은 남자 만나면 디따 피곤하다.
"학삐리" 처럼 피곤한 존재가 없다.
뭔가 치열하게 고민하는 것 같은데
하는 짓 보면 다 "뒷북"이다.
하긴...뒷북치니까 학삐리지.
학삐리들은 어떤 여자를 만나야할까?
아카데미즘을 숭상하는 여자?
교수 사위 하나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졸부집 딸?
유쾌하고 명랑한 남자를 만나고 싶다.
쓰레기를 버리면서도, 변기 청소를 하면서도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는 유쾌한 남자!
<밀양>의 송강호처럼 교회 주차 안내를 하면서도
실 없는 사람처럼 싱글벙글 즐거운 남자.
그런 남자가 뿅~하고 나타났으면 좋겠다.
- 출근이 몇시간 남지 않은 직딩의 일요일 저녁 넋두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