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을 읽다.(웬디 베케트 지음/이주헌 감수/김현우 옮김/예담>
웬디 수녀는 우리의 자매다. 웬디 수녀는 페미니스트다.
<유럽 미술 산책> 읽고, 무슨 얘기냐고? 웬디 수녀는 기존 평론가들의 "편견"을 갖고 있지 않다. 남성중심적 사고를 하고 있자도 않다.
웬디 수녀는 그림을 "왜곡" 없이, "편견" 없이 받아들인다.
이 책을 감수했다는 미술평론가 이주헌. "감수의 말"(그것도 책 끝에 있는게 아니라 앞에 있다."감수의 말"이 앞에 있을 필요가 있나? 이 책에 "역자 후기"는 아예 없다.)에 이주헌은 이렇게 웬디수녀를 칭찬(?) 했다.
글을 읽을 때 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오면 그 글은 좋은 글이다.<웬디 수녀의 유럽 미술 산책>을 읽으면서 나는 웬디수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마치 할머니의 부드러운 옛날 이야기처럼 자상하고 따뜻하게 울려나오는 그 목소리는 미술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깝고 다정한 것인지를 마음 깊이 느끼게 해주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앞에 있는 "감수의 말"을 먼저 읽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이주헌에게 화가 난다. 뭐? 할머니의 부.드.러.운 옛날 이야기???
이주헌에게 말해주고 싶다.
"선생님! 웬디 수녀의 그림 읽기는 너.무.도 예리합니다. 할머니,부드러운,자상한 이런 단어들....칭찬일지도 모르지만, 웬디 수녀를 폄하하는 것 처럼 들립니다.웬디 수녀는 그림을 감성과 지성으로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다른 평론가들과 웬디 수녀의 차이점은 웬디 수녀가 아름다운 "영성"의 소유자라는 겁니다.
웬디 수녀는 이 세상 어떤 평론가 보다도 정확하고 예리합니다. 만약 이 책을 저명한 60대 노교수(물론 남자)가 썼다면, 할아버지, 자상한, 너그러운 이런 단어 쓰셨을까요?"
웬디 수녀의 그림 이야기는 예리하다. 몇개의 예를 들어 볼까?
한스 부르크마이어 Hans Burgkmair(1473~1531)의 성 울리히 St Ulrich와 성 바르바라 St Barbara에 대한 웬디수녀의 시각.
울리히는 약간 멍청해 보이긴 하지만 친절한 성자이고,바르바라는 매우 용감한 순교자라는 것이 이 이야기들이 전하는 바이다.그런데,부르크마이어가 그린 그림을 한번 보자,울리히는 틀림없는 성인처럼 묘사되어 있다.성의를 입고 있는 그는 아주 고상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데,그의 눈은 기도와 간청으로 차분히 가라앉아 있고,시선은 뭔가 희구하는 듯 하늘을 향하고 있다.참 그럴듯한 성인의 모습이다. 그러면 여자 성인 바르바라를 다루는 부르크마이어의 방식은 어떤가?그녀는 한껏 치장을 하고 있는데, 가슴은 풍만하고 입고 있는 옷의 무늬도 화려하다.거만한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은 왈가닥 중에도 왈가닥이고, 얼굴에는 상류 계층의 오만함이 가득하다.이런 여성을 성인이라고 생각하기는 불가능해 보인다.울리히는 성인이고 바르바라는 몹쓸 여자다.왜? 왜 남자가 성인이 되는 것은 당연하고 여자는 그렇지 않단 말인가? 부르크마이어가 성차별주의자였던 것은 아닐까?그렇게 끔찍한 생각은 하고 싶지 않다.그냥 웃고 넘길 수밖에."(p167) 이렇게 웬디 수녀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소품 하나하나에 숨어 있는 "편견"도 놓치지 않는다.
이 책에 있는 수많은 그림 중, 내가 가장 감동 받은 그림은 바로 루벤스의 <추운 비너스>(Venus Frigida)다.
사랑은 분명 인생의 중심이 되는 빛이지만,그런 정신적인 빛이 있으려면 먼저 두 사람 사이의 물질적인 조건이 충분히 갖추어져야 한다.내가 루벤스를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가 인간 전체를 존중해주기 때문이다.그는 솔직하게 육체를 찬미한다.그것을 함부로 다루거나 천한 것으로 여기지도 않고,그렇다고 해서 지나치게 강조하지도 않는다.그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지만 유머와 서정성을 잃어버리지도 않는,현명하고 균형 잡힌 사람이다.사랑은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적인 지원을(필수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임을 루벤스는 이해하고 있었다.(p205)
이래도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 같아?
이 외에도 웬디수녀가 전하는 소중한 메세지, 따뜻한 울림, 가차 없는 충고가 많다. 웬디 수녀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 겠다.
수선이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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