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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계 살림지식총서 85
강유원 지음 / 살림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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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부터 한겨레 문화센터에서 강유원 샘의 강좌
<서구 고전 읽기 : 정치사상편>을 듣고 있다.

강독하는 text가 만만치 않은데다(플라톤의 <국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등),
숙제도 내주고(걷은 다음 첨삭에 커멘트까지 달아 나눠준다!)
부담스러워서 그만 둘까...도 생각했었는데,

강의가 재미있어서 꾸역꾸역 나갔고,
강의를 들으며 내 독서에 대한 자기반성과 각성을 하고 있다.

강의를 통해 강유원 샘은 "context의 중요함"을 끊임 없이 강조한다.
이 책 <책과 세계>의 첫장도 "책과 세계 또는 텍스트와 컨텍스트"다.

어제 강의시간에 플라톤의 <국가>에 대한 리포트 목차를 냈다.
아무 생각 없었는데 강유원 샘의 커멘트를 듣고는 디따...쩍 팔렸다.
(정말.... 항상 생각하는 거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

강유원 샘은 참고도서로 <고대 그리스의 일상생활>과 <스파르타인과 아테네인>을 추천하셨다. 플라톤이 <국가>를 쓴 시대의 시대적 배경, 정치적 상황, 생활 양식....등
context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말도 안되는 비약을 하려했던 내게 따끔한 일침이었다.

쩍 팔리긴 하지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강의다. (살은 되면 안되는데!)

이 책의 책날개에는 간략한 저자 소개와 함께
집필 목적과 연구계획이 실려 있다.

나는 이 책을 두 가지 목적을 가지고 썼다.
하나는 고전에 대한 자극을 주면서 그것들로 직접 다가가는 길을 알려주고,
다른 하나는 그 책들을 읽기 전에 그 책들이 어떻게 서로 이어져 있고 대화하고 있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것이다.

고전에 대한 자극!
이 책을 읽으면서,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거의 전기 충격에 가깝게 받고 있다.
책은 많이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일침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며 <길가메시 서사시>, <일리아스>, <갈리아 전기>, <신국>,
<군주론>, <리바이어던> 등 이름만 들어도 부담스러운 고전들이
모두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아~주 어렴풋하게
알 수 있었다.

가을학기에는 <서구 고전 읽기 : 역사편>을 강의할 예정이라고 한다.
지금보다 더 바쁘지 않다면(설마...아니겠지?) 들을 예정이다.

기원전에 쓰여진
(그러니까 2,000년 하고도 몇백년 전에!)
플라톤의 <국가>를
21세기 서울의 한 문화센터에 퇴근 후 달려온 직딩들이 모여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읽고 있다. 정말......신기하다!

고전의 "영원성"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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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7-07 18: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공부하시네요..^^ 배워서 꼭 남주세요..지난번에도 이야기했지만.^^

kleinsusun 2007-07-07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넵! 명심 또 명심하겠습니당^^

글샘 2007-07-08 15: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게 신곡 아닐까요? 아, 직딩들의 학원... 나도 가고 싶습니다.^^
제 몫까지 공부해 주세요.

kleinsusun 2007-07-09 0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샘님, 신국<神國>이 맞아요. Augustinus의 <신국>이랍니다.^^
좋은 한주 시작하세요!
 
스누피의 글쓰기 완전정복 - 세계 유명 작가 32인이 들려주는 실전 글쓰기 노하우
몬티 슐츠.바나비 콘라드 지음, 김연수 옮김 / 한문화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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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의 원제는 [Snoopy's Guide to the Writing Life].
원제 그대로 살렸으면 좋았을 뻔 했다.

"완전 정복"이란 말이 억지스럽기도 하고, 뻘쭘하기도 하다.
도대체 글쓰기를 어떻게 "완전 정복"한단 말인가?

우리나라 사람들... "완전 정복"이란 말 디따 좋아한다.
몇년 전, <영어 완전 정복>이라는 허접한 영화가 있었다.
"완전 정복"이 영어로 뭘까?
궁금해서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을 보고..... 웃다 뒤집어 졌다.
[Please Teach Me English]
음하하하하! 정말....허접하다.

세상에는 "완전 정복"을 할 수 있는 대상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완전 정복" 같은 무서운 말은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을 추천해준 사람은 출판평론가 표정훈 선배님이다.
지난 겨울, 글쓰기에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던 내게
이 책을 읽어보라고 하셨다.

이 책을 읽은 건 2달 전, Frankfurt로 날아가는 비행기에서.

일단... 군데 군데 삽입된 만화 <피너츠>가 넘 웃겨서
낄낄거리며, 즐겁게 읽었다.

이 책에는 다니엘 스틸, 시드니 셀던, 잭 캔필드 등
32명의 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에 대한 조언이 담겨 있다.

세벽 세 시에 내게 찾아오는 영감을 나는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아침 9시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펜과 공책을 들고 책상에 앉아서
몇 시간씩 글감을 찾기 위해 일한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그 생각을 밀어붙이고 이리저리 휘갈겨 쓰다보면 뭔가가 온다.
- p40, 다니엘 스틸

그렇다.
글이 써지지 않을 때도 매일매일 책상에 앉아야 한다.
입맛이 없을 때도 밥은 먹듯이!

일단 앉아서 끄적끄적 대기라도 해야 한다.
몇 시간 동안 몇줄 쓰지 못하더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 다음날, 그 몇줄은 몇십장을 풀어내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니까.

토마스 맥구안(Thomas McGuane)도 이렇게 말했다.

쓸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도 계속 써야한다.
기억을 끄집어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사용하거나
머리에 떠오르는 문장을 되는 대로 써보거나
말이 안 되는 문장이라도 쓰는 게 좋다.
반드시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 p61

글이 잘 써질 때 몰아서 쓸 생각을 하며 빈둥거리지 말고
하루에 한 페이지라도 꾸준히 써야 한다.
일기를 쓰건, 편지를 쓰건 어쨌든 써야 한다.
(알고는 있지만 실천은 못하는 일!)

소설가 카슨 맥컬러스는 29세가 되기 전에 세 번이나 발작을 일으켰다.
다리를 저는 데다 부분적으로 마비되는 끊임없는 고통 속에서
그녀는 남편의 자살이라는 충격적인 사건까지 겪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런 고통 앞에서 좌절했겠지만,
그녀는 적어도 하루에 한 페이지씩은 글을 썼다.
그렇게 꾸준히 글을 쓴 결과, 그녀는 <결혼식 참가자>,
<슬픈 카페의 노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등의 훌륭한 소설을 펴냈다.
- p177

투덜대지 말고,
잔머리 굴리지 말고,
하루에 한 페이지는 무조건 쓰자. Go 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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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돌이 2007-06-17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런데 그게 너무 너무 힘든 일이라죠. ㅠ.ㅠ

다락방 2007-06-17 2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여기엔 다니엘 스틸도 있었군요! 읽어보고 싶은 책이 되어버리네요. 수선님의 리뷰덕에. :)

BRINY 2007-06-18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논문 하루에 한페이지....써야하는데..
 
장정일의 공부 -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장정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장정일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일단 기뻤다. 매우.

그런데... 이 책을 다 읽은 지금의 심정은....
착잡하기 그지 없다.

장정일의 오랜 팬으로서 그가 걱정된다.진정.
아......장정일, 돈이 없는가? 급전이 필요한가?
삼국지 인세만으로 부족한가?
도대체....왜 이렇게...왜 이렇게까지 망가지는가?

일단, 이 책은 <장정일의 독서일기 7>로 나왔어야 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 책의 부제목을 보고 쓰러지는지 알았다.
"장정일의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

진정....실소 또는 쓴웃음을 자아내는 제목이다.
이런 "뻔뻔한" 제목을 떡~하니 붙일 수 있는 출판사...몇 안된다.

"랜덤하우스"가 이런 요란한 제목을 붙이는 건 당연하다.
베스트셀러 만들려면 무슨 짓을 못하랴?

랜덤하우스 홈피에 들어가보니 장정일의 <공부>가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조영헌 살롱>,<타짜>,
<일본 100배 즐기기>와 나란히, 보기에도 다정하게
"Best Book"을 장식하고 있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1~6>과 다르게
이 책은 "주제별"로 구성되어 있다.

시오니즘, 반미, 민족주의, 나치, 레드 콤플렉스, 촘스키, 박정희 등등...

촘스키 책을 몇권 읽고 쓴 독서일기 <촘스키와의 대화>를 읽으며
커다란 "모순"을 느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의 세계는 이미 다국적기업에 의해 접수됐으며, 금융기관과 투자자는 실적적인 의회가 된 지 오래다.......(중략) ...다시 말해 국가는 대기업에게 재난이 닥쳤을 때 파산을 모면하기 위해 존재하며, 국가의 개입으로 다국적기업이 커다란 혜택을 보기 위해 존재한다.(p311)

이게 장정일의 의견인지,
촘스키의 책을 요약/발췌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촘스키와의 대화"인지 또는 "촘스키 요약정리"인지)

장정일, 촘스키, 그리고 랜덤하우스는
참으로....어색한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장정일의 <공부>를 출판한 "랜덤하우스 코리아"는
"세계 최대" 출판사 랜덤하우스가 중앙M&B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100퍼센트 순수 외국자본으로 만들어진 출판사다.
랜덤하우스의 모기업은?
"세계 최대" 미디어/출판 그룹 베텔스만.

"다국적 기업과 또 그것에 결탁하는 정치를 격렬하게 비난하는
촘스키"를 읽고 장정일은 울분을 토로한다,
또한 그 울분을 토로한 글로 세계최대 출판사 랜덤하우스의
수익증진에 기여한다.

아.....블랙코미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정일의 <공부>을 읽으며 느낀 커다란 실망과 배신감(?)에도 불구하고,
장정일의 다음 책이 나오면 또 살 것이다. 망설임 없이.
장정일의 오랜 팬으로서.

삼국지 10권을 집필하고,
김미화 언니랑 [TV 책을 말한다] 공동진행을 하고,
동덕여대에서 강의도 하고,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도 하고....

이제 외도는 질리게 하지 않았나?

장정일이 다시 소설을 쓸 수 있기를 바란다.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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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6-12-01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라 이 책 기대 많이 하고 있는데.

깐따삐야 2006-12-01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대를 갖고 이 책을 읽은 독자로서 백퍼센트 동감이에요.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읽으며 흥분하고 감탄했던 그 때가 그리워집니다.

드팀전 2006-12-01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정일의 <공부>를 출판한 "랜덤하우스 코리아"는
"세계 최대" 출판사 랜덤하우스가 중앙M&B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100퍼센트 순수 외국자본으로 만들어진 출판사다.
랜덤하우스의 모기업은?
"세계 최대" 미디어/출판 그룹 베텔스만.

"다국적 기업과 또 그것에 결탁하는 정치를 격렬하게 비난하는
촘스키"를 읽고 장정일은 울분을 토로한다,
또한 그 울분을 토로한 글로 세계최대 출판사 랜덤하우스의
수익증진에 기여한다..........

이건 아주 흥미로운 딜레마이자 많은 문화연구가들의 논문 주제가 되기도 했지요.논문쓴다고 들어간 바람구두 아저씨도 이런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했던 것 같구..문화론에서는 '포섭'이론이나 '헤게모니'론으로 이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고 있긴 하지만...이것 역시 모두를 설명할 수는 없었던 듯 하지요.일부 실험적 대중문화 생산자들은 생산,유통과정의 자본주의적 방식을 거부하는 형태로 신념을 펴고 있기도 하지만 ..극히 일부에 실험적인 사례들이지요.좀 심통맞긴 하지만... 이 문제를 대입 논술에 내면 어떨까? ㅋㅋㅋ 아이들이 머리 뜯다가 탈모증상 생기기에 딱 좋을거에요.강남의 유명한 논술 강사님들은 어떤 답을 주실까?^^

stella.K 2006-12-01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에 대한 평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는데 수선님의 평은 또 새롭군요. 그런 내막이 있는 줄은 몰랐어요. 잘 읽고 갑니다.

icaru 2006-12-01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 님 말씀 듣고 보니... 시기적으로 대입 논술 참고 교재로도 한몫 팔리기를 기대한 마케팅 전략도 없잖은가봐요..

2006-12-01 15: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kleinsusun 2006-12-01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전 기대가 컸던지라 너무도 실망을....<독서일기 7>쯤으로 나왔으면 좋았을 껄 그랬어요. <공부>라는 제목이 뻘쭘하게 느껴졌어요.ㅠㅠ

깐따삐야님, 님도 읽으셨군요. 저도...<공부>를 읽고 그 옛날에 하늘연못에서 나왔던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그리워했어요.^^

드팀전님, 궁금한 게 있어요.
출판사들도 연말에 송년회를 하잖아요. 저자들 초대해서...
그럼 장정일은 랜덤하우스의 "베스트셀러" 작가로서
<여자의 인생은 모두 20대에 결정된다> 저자와 나란히 앉아 술을 마실까요? ㅋㅋ

stella님, 아무 기대 없이 보면 나름 재미있는 부분들도 있어요.
하지만..."인문학 부활"을 떠들기엔....ㅠㅠ

icaru님, 이 책을 논술 참고 교재로 보면....애들 대학 떨어져요.ㅋㅋ
(text에 대한 논증,비판 이런거 보다는... 격앙된 감정이 드라마 배경음악처럼 깔려 있어요.)

2006-12-01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릴케 현상 2006-12-21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독서가 아니라 공부라는 거겠죠^^ 넘 소박한 이해인가요? 아직 공부중인지라 다국적 기업과 붙어보기는 이르겠죠...부제목은 정말 심하다 싶어요 ㅋ

하늘연못 2007-01-21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TV 책을 말하다]를 뒤늦게 보니, '인문학 부활 프로젝트'라는 것은 출판사측에서 일방적으로 붙인 부제로 장정일 선생님 자신도 당황스러웠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도 책보면서 거창한 부제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고 코웃음을 쳤었는데 장정일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 심정이 이해가 되더라구요.

이 책에 대한 장정일 선생님의 생각도, 그동안 써오던 [독서일기]의 후속작업으로, 고민하시는 문제를 정면에 놓고 책을 읽는다는 것 같습니다.

제 생각으로도 [정정일의 기계적 중립을 벗어나기 위한 독서일기]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정말 선정적인 부제 때문에 부담스럽긴 하지만, 돈 벌어야 먹고사는 출판사쪽 사정도 있겠죠.쩝.

kleinsusun 2007-01-22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역시! 출판사에서 "일방적"으로 붙힌 부제목이었군요. 어쩐지....
몰랐던 사실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늘연못님^^

참! 아까 하늘연못님 서재 갔다가 <마광쉬즘> 보관함에 담았어요.
읽어보고 싶네요. Thanks to 할께요.^^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 발상에서 좋은 문장까지
이승우 지음 / 마음산책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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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소설을 쓴 적이 있다. 지금 그 원고는 어디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용은 꽤 확실히 기억난다.

제목은 <겨울바다> (유치찬란!)
원고지 83장.
공부는 잘하지만 자신의 가정과 일상에 염증을 느끼는 중학교 2학년 소녀가 가출을 해서 "겨울바다"를 본다는, 참으로 진부하면서도 유치한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 소설, 그 83장의 원고지 더미를 생각하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허접하고, 유치하고, 진부하고...그 모든 것을 떠나
원고지 83장을 쓴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절대!

원고지 83장을 쓴다는 것은 뭔가 간절히 하고 싶은 얘기가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레포트 쓸 때 인터넷을 떠돌며 이리저리 자료들을 복사해서 붙이고
요리조리 편집하고 글자 크기를 키우고 하는 분량 늘리기가 아니라,
소설로 원고지 83장을 쓴다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단편 소설 하나의 분량이다. A4지 10장!

만약 그 때, 옆에서 관심을 가져 주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쩌면 난 소설가가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 후, 소설을 쓴 적이 딱 한번 더 있다.
대학 2학년 겨울 방학 때. 제목은 <빛 바랜 사진 한장>.
그것도 원고지 80장이 조금 넘었던 것 같다.
할머니에 대한 내용이었다.

대학 2학년 이후로 한번도 소설을 쓴 적이 없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지금 쓰면 원고지 80장을 쓸 수 있을까?
자신있게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중학교 2학년 때나, 대학 2학년 때나
그 당시 내겐 너무너무 하고 싶은 얘기,
누굴 붙잡고라도 하고 싶은 얘기가 있었다.
소설 쓰기가 무슨 숙제라서가 아니라,
마음 속에 있는 말을 하고 싶어서 소설을 썼다.

그렇다면 대학 2학년 이후 내가 단 하나의 짧은 꽁트도 쓰지 않았던것은
그만큼 "절실한" 얘기가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잘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쓰는 것 자체를 두려워 했기 때문일까?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소설을 쓰고 있는 습작생들,
소설을 써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는....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들,
그리고...일기를 쓰며 울컥한 마음을 달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문창과나 국문과 이런데서 체계적(?)으로 글쓰기를 배우지 않은 이상,
일반인들이 문우(文友)나 문학스승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문우는 커녕 회사에서 책 좋아하는 동료 만나기조차 힘들다.)

뭔가 끄적 거려놓고 말하고 싶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다.
괜히 술 마시다 말 잘못 꺼내면 "정신 차려라!" 이런말 듣기 쉽다.

이럴 때,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좋은 길잡이가 되어 줄 수 있다.
늘어지는 잔소리 대신 지친 당신의 어깨를 도닥도닥 두들겨 준다.

작가가 된 순간 나는 일기 쓰기를 그만두었다.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이 사실은 글쓰기의 숨은 동기가 무엇인지를 유추하게 한다. 일기를 쓰지 않는 것은 일기를 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소설이 일기를 대신하였기 때문이다. 괴롭거나 억울하거나 부끄럽거나 참담한 것들이 일기에 적힌다. 사랑하고 있는 동안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 사랑을 얻지 못해 괴롭거나 사랑을 잃고 슬퍼지면 일기를 쓴다. 이것은 일기 쓰기가 곧 나름대로의 견디기의 처세, 치유의 방편이었음을 상키시킨다. 그리고 이 사실은 다시 소설 역시 그것을 쓴 작가 자신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이 견딜 수 없는 세상을 견디는 방편이며 나름의 치유책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 소설은 가장 먼저 그 글을 쓴 작가 자신에게 결정적으로 유익하다. 소설가는 소설을 통해 세상을 견딜 힘을 얻는다. 세상의 불합리와 파렴치와 몰인정을 이길 힘을 얻는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이야기를 통해 그 힘을 얻는다.

(프롤로그 '이야기를 위한 몇 개의 이야기' 中)


이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콩콩 뛰었다.
이승우 선생의 글을 읽으며
왜 내가 일기를 쓰고 소설을 쓰려 했는지,
그 욕구의 정체가 어떤 것들 이었는지,
그렇게 끄적거리면서 느꼈던 배설과 정화의 효과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요즘 내 인생 세번째 소설을 쓰려 한다.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절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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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다예요 2006-08-06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문과에 다니는 사람들 조차도 이제는 굶는과라고 해서 글쓰고 책읽는 걸 피해요.
저도 국문과를 나왔지만.. 풋.. 제가 대학교 다녔을 때도 국문과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 제대로 책을 읽고, 진지한 글 한편 쓰는 사람 몇 없었어요. 그게 대학다니는 내내 아쉬움이었죠. 국문과를 나왔다지만 책에 대한 이야기가 잘 안되거나 자신의 감정을 글로 드러내는 방법이 아주 서툰 사람들이 많아서 마음이 답답할 때가 많았죠. 그런데 님의 말대로 사회 생활을 하면서 더더욱 그걸 많이 느꼈죠.
살면서.. 인문학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 함께 글을 나누며 산다면... 정말 좋을 거 같아요.
(그런데 문창과는 제가 듣기로 체계적인 글쓰기 방법을 배운다지만 국문과에서는 창작에 관련된 건 사실 잘 안배워요. 돌아서면 금방 까먹어버리는 아주 어려운 이론 위주의 수업을 많이 하죠..그래서 글쓰고 싶은 사람들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기냥 모여서 주로 하죠^^)

kleinsusun 2006-08-06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그렇군요. 국문과도...ㅠㅠ
하긴 독문과, 불문과 나온 애들이 영어 보다도 독어,불어가 서툰 경우가 대부분이예요. 요즘 대학들은 예체능 제외하면 1학년 때 부터 Toeic이 교과서라는... 삭막한 현실이네요.

다락방 2006-08-06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님께서 하고 싶어하시는 그 세번째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해지는데요 :)

kleinsusun 2006-08-06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초고가 완성되면 살짝꿍 말씀드릴께요. 옛날에 83장을 어떻게 썼나 몰라요. A4 한장 쓰기도 힘들다는...^^

비로그인 2006-08-07 0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댓글 쓰려는데 저 위에 댓글이 눈에 팍! 들어왔어요...;;;
어찌아셨는지요? 불어 서툴어요..T^T

바람돌이 2006-08-07 0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번째로 하고싶은 절실한 이야기 궁금하네요. ^^
기대하고 있어도 되죠?

kleinsusun 2006-08-07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숍님, 어떻게 알았냐면요.... 전 독어가 서툴어요.ㅎㅎㅎ

바람돌이님, 기대는 하지 마시고요(양치기 소녀 될까봐 ㅎㅎ) 나중에 살짝꿍 알려드릴께요.^^

moonnight 2006-08-0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수선님의 세번째 이야기. 저도 기대 많이 된답니다. 하고픈 이야기, 하나도 남김없이 쏟아부어주시길 바래요. ^^

icaru 2006-08-07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선 님 중학교 때 습작품 보면서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생각했어요...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는 동해 바다로 향했던가 그 쥔공은....

kleinsusun 2006-08-08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밤님, 네...소설 미학, 구성... 뭐 그런 건 없어도 하고 싶은 얘기는 한번 속 시원하게! 근데 왜 갑자기 "속청"이 생각나죠? ㅎㅎㅎ

icaru님, 네....칼바람이 몰아치는 건 똑 같은데... <겨울바다>는 진짜 유치뽕짝이예요.ㅎㅎ
 
소설에 관한 작은 이야기
김동식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2002년 11월, 난 무식하고도 용감하게 회사를 그만 뒀다.
'쉬고 싶다'는 너무나 단순하고 대책 없는 이유로.
그 땐...너무 지쳤었다.
무슨 뾰족한 대안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쉬고 싶었다.

주위에서 미쳤다고 하면서 말렸다.
그 때...난 30살이었다.

" 30살 여자가 아무 대책 없이, 번듯한 회사를 그만둔다구?
노처녀 백조가 되겠단 말이야? 미쳤어!!! "

주위의 반응은 한결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난 회사를 그만 뒀다.
그리고 LA에 있는 천사표 이모네 집으로 날아갔다.
커다란 트렁크 가득 읽고 싶었던 책들을 채우고 훨훨~

미국에 가고 싶었던 게 아니고,
그저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집에 있다간 부모님한테 들볶여 죽을 것 같았다.
그건....도피였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시체처럼 잤다.
자고, 자고, 또 자고....정말 원 없이 잤다.

하루는 자다 깨서 멍하니 앉아 있는데, 천사표 이모가 말했다.
" 수선아! 넌 하고 싶은 일이 뭐니? "

난 잠에서 덜깬 허스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 난 글을 쓰고 싶어. "

그 때, 이모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 그래? 그럼 평론을 쓰면 되겠구나."

예상치 못한 이모의 엉뚱하고도 쌩뚱맞은 말. 평론???
이모는 나의 황당한 표정에 어깨를 들썩이며 웃다가 친절하게 이유를 설명했다.

" 파란만장한 체험이 많아야 소설을 쓰지.
넌 그냥 곱게 자라서 좋은 대학 나오고, 회사 다니고...
뭐 소설 쓸만한 재료가 없쟎아.
그러니까 글쟁이가 된다면 평론가가 되는게 낫지 않겠어? "

그 때, 난 이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 이모, 그럼 이모는 내가 평론 쓰면 읽을꺼야???
파란만장한 인생 안 살아도 소설 쓸 수 있어."

그러면서 김영하 얘기도 하고,
소설은 '상상력'으로 쓰는거라는 둥 이 얘기 저 얘기하며 떠들었다.

난 '문학 평론'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갖고 있었다.
가끔 시집을 읽으면 시집 뒤에는 짧은 시의 100배 분량은 되는 평론이 달려 있다.
뭘 그렇게 분해를 하는지...읽다 보면 짜증이 나곤 했다.

평론은 일반 대중에게 격리되어 있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다.
평론가들은 '그들만의 세상'에서 놀고 있다...고 생각했다.
평론가가 겸임으로 교수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먹고 살까?...하는 걱정까지 했다.

<소설에 관한 작은 이야기>는 평론가 김동식이 포스코 신문에 연재했던 글들을 엮은 거다. 평론도 아니고, 리뷰도 아니고, 독서일기도 아니고, 말 그대로 소설에 관한 '작은 이야기'다.

포스코 신문은 일주일에 한번씩 나오는 사보다.
그러니까 <소설에 관한 작은 이야기>는 포스코 직원들을 대상으로 일주일에 한권씩 소설을 소개했던 글들을 묶어서 낸 책이다.

글들은 '대화체'로 되어 있다.
"~데요.", "~구요" , "~입니다."
'편지체'로 된 글들도 있다.
정말 쉽게 쓰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편지체로 된 글들은 너무 어색해서 안타깝기 조차 했다.

이 글들은 '일반 대중'을 향한 최초의 글쓰기였다고 한다.

문학에 대한 공부를 해왔을 따름이지, 일반 대중을 상대로 문학작품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해야 하는지 배운 적도 고민해본 적도 없었음을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

평론가로서의 고민이 느껴진다.
'일반 대중'을 향한 글쓰기, 도대체 어떤 눈높이로, 어떻게 소통해야 하나?
소통의 방법으로 '대화체', '편지글 형식'을 생각했다고 한다.

이 책에 실린 글 53편을 읽으며 놀란건,
쉽게 쓰려고 각고의 노력을 하면서도 평론가로서의 입장을 놓지 않았다는 거다.
이 글들을 꾸준히 읽은 독자라면 '문학개론' 수준 이상의 지식을 얻었을 것 같다.

각 글들의 연재 날짜가 명시되지 않아 확실하지는 않지만
편지체에서 대화체로 전환됐고, 연재 횟수가 거듭되면서 글들이 안정감을 찾은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며, 포스코는 참 훌륭한 기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보에 정기적으로 "문학"을 소개하는 회사는 정말이지 드물다.
책 소개를 하는 회사는 많다.
하나 같이, 천편일률적으로 공병호 아저씨 책이나 <마시멜로 이야기>, <블루 오션>, < 펄떡 뛰는 물고기처럼> 이런 책들을 소개하며, '그러니까 열심히 일하란 말이야!' 강력한 메시지를 날린다.

문학평론가를 찾아 기고를 부탁하고, "문학수첩"이란 연재란을 만든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기업의 단기적인 "생산성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는 일이 아니기에.

사실 회사원들의 독서는 빈약하고 가난하기 짝이 없다.
소설 '나부랭이'를 읽는 사람은 정말이지 찾기 힘들다.
회사원들의 생활은 그만큼 각박하고 '드라이' 하다.
포스코 신문과 같은 훌륭한 사보는 여러 기업들에서 벤치마킹되어야 할 것 같다.

'일반 대중'과의 소통을 위해 노력한, 글쓰기의 지평을 넓힌 평론가 김동식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최근 한국소설의 판매량 급감에 따른 한국소설의 위기는 문학을 일반대중에게서 유리시키는 평론가들의 의사 같은 글쓰기(영언지 라틴언지 알 수 없는 글씨로 갈기는 의사들처럼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현란한 글쓰기)에도 일부 책임이 있지 않을까...생각한다.

멋진 포스코 신문과 일반 대중과의 소통을 위한 평론가의 새로운 글쓰기에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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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6-06-17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그런 책을 읽고 우리에게 소개해주는 수선님께 박수를.
글구 나이 30에 회사를 그만둘 수 있는 수선님의 용기에 더 큰 박수를...

kleinsusun 2006-06-17 2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님, 지금은 34라서 못 그만둬요.ㅎㅎㅎㅎㅎ
박수 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외로운 발바닥 2006-06-18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수선님께 박수를...^^;
덕분에 이 책을 읽고 싶다는 강한 욕구와 함께 포스코에 대한 호감이 상승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

마늘빵 2006-06-18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소설 나부랭이 열심히 읽고 있어요! 저는 경제/경영/실용 베스트셀러는 제목도 몰라요.

BRINY 2006-06-18 1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런 천사표 이모가 있으면 좋을텐데....최소한 저런 이모가 되어주기라도 해야겠어요.

비연 2006-06-18 1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지세요^^ 이 책에도 호감이 생긴다는..추천!

kleinsusun 2006-06-18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로운 발바닥님, 감사합니다.^^ 포스코 좋은 회사예요. 월급도 많이 준답니다.ㅎㅎ

아프락사스님, 요즘 바나나 소설 열씨미 읽고 계시죠? 저도 요즘 소설을 몇권 샀답니다.^^

BRINY님, 네...우리 이모는 진~짜 천사표예요. 언제든 도피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게 행복해요.^^

비연님, 부끄부끄^^

플레져 2006-06-20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어보고싶어요.
김동식씩 글이 참 좋더라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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