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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강유원 지음 / 야간비행 / 2003년 5월
평점 :
절판
강유원의 [책]은 참 여러가지로 [장정일의 독서일기]와 비교가 된다. 강유원의 "hard"한 독서일기를 읽으며, 장정일을 생각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독서일기를 쓴다.
( 나 또한 홈피라는 나만의 장난감을 만들어놓고 허접한 독서일기를 쓴다.)
서점에는 수많은 독서일기, 넘쳐나는 책을 말하는 책들이 있다.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김훈의 [내가 읽은 책과 세상],[장정일의 독서일기] 같은 유명한 작가들이 쓴 독서일기 부터, [장충동 김씨를 위한 책읽기],[전작주의자의 꿈],[각주와 이크의 책읽기],[대담한 책읽기] 등 다양한 저자들이 쓴 최근의 책들에 이르기 까지 서점에는 늘 새로운 얼굴의 "독서일기"가 살포시 자리를 잡고 있다.
다른 사람의 독서일기를 읽는건
그 사람의 일기를 몰래 훔쳐 보는 것 만큼이나 재미있다.
강유원의 [책]을 읽고, [장정일의 독서일기2]를 다시 읽어 보았다.
(난 장정일의 독서일기 1~4를 모두 가지고 있지만, 강유원의
<책>에 소개된 장정일의 독서일기 2만을 다시 읽었다.)
강유원과 장정일.
두 남자의 공통점은 둘 다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고,
자신의 "독서일기"를 출판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독서일기"가 읽는 사람들의 독서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
이점을 제외하고 두 남자의 공통점은....
없.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말 그대로 일기다.
예들 들어,
1.13.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간에서 카타리나 할케스의 <아들만 하느님 자식인가-여성신학개론>(분도출판사,1994)을 읽다.
4.13.
집 앞에 있는 도서대여점에서 로버트 제임스 윌러의 <시더 벤드에서 느린 왈츠를>(시공사,1994)빌려 와서, 단숨에 읽다.
이런 식으로 언제 어디서 무슨책을 읽었는지를 먼저 적고, 자신의 느낌을 자유롭게 써내려 간다.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Review"도 아니고, "서평"도 아니다.
자신이 읽은 책을 비평하거나 소개하려고 쓴 글이 아니라,
자신의 느낌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써내려간 "일기"다.
강유원의 [책]은 서평집이다.
책을 읽고 그 한권의 책이 책값은 하는 책인지를 신랄하게 평가하고 비난한다. 어떤 서평들은 좀 너무 하다 싶을만큼 공격적이고,독설로 가득차 있다.
복거일에게 필요한건 "논술 선생님" 이란다.
정말 대단한 배짱 또는 오만이다.
강유원은 "서평가"로서의 자신의 사명에 대단한 자긍심과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그 엄청난 책임감으로 눈에 불을 켜고 책을 한줄 한줄 꼼꼼히 읽고 무섭게 날이 선 비평의 칼날을 망설임 없이 흔들어댄다.
강유원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참 슬프고 또 안타깝다.
강유원은 "책 사서 읽고 서평 쓰기"로 자신을 "차별화"한다.
그런데....
책을 사서 읽거나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건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닌가? 직업적 서평가는 아니지만 책읽고 서평 쓰는 사람들 무지하게 많다. 알라딘 서재들을 한번 방문해 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평범하지 않은 맛깔나는 글솜씨와 예리한 안목으로 서평을 쓰고 있는지....그 사람들 다 돈주고 사서 책 읽고 서평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기본적인게 자랑이 되는 세상이라니....
정말 안타깝다.
강유원이 조선일보나 중앙일보 같은 엄청난 일간지의 때깔 좋은 문화부 기자도 아니고, 서평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전문 서평가도 아닌데, 책을 돈주고 사서 읽는건 너.무.도 당연한 일 아닌가?
왜 자기가 돈주고 서평을 쓴다는걸 자랑해야 하는가?
정말이지 블랙 코미디 같은 현실이다.
장정일 같은 훌륭한 작가도 책을 사서 읽는다.
그의 독서일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집앞 도서 대여점에서 빌려 읽기도 한다.
강유원은 도대체 왜 책을 사서 본다고 잘난 척 하는가?
강유원은 말한다.
나는 서평자이면서 동시에 이 서평집의 저자다.거듭 말하거니와 이 책에 실린 글들 중에 거저 얻은 책에 대한 것은 없다.그러니 서평자로서의 기본 자세는 갖추었다고 자부한다.누가 한 권 달라고 하면 "사서 보슈"라고 대꾸하겠다.냉정한 감식안을 가진 서평자를 기대한다.
너무도 기본적인걸 대단하게 말한다.
꼭 "난 결혼하고 당신 아닌 여자하고 자본 적 한번도 없어!"하고 소리치는 남자들 처럼...
[장정일의 독서일기]가 자유로운 형식의 "일기"인데 반해,
강유원의 [책]이 "서평집"이라는 기본적인 차이점 외에도
이 두 남자의 책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다르다.
두 남자가 읽는 책 부터가 전혀 다르다.
이 두 남자가 같은 서점에 가거나 도서관에 가도 절대 부딪히지 않을꺼다. 한명은 사회과학 코너에, 한명은 문학 코너에 죽치고 있을 테니까...
강유원과 장정일이 읽은 책이 얼마나 다른지 예를 들어 보자.
5권 씩만!
강유원 : 복거일 [현실과 지향],[소수를 위한 변명] 등.
카를로스 푸엔테스 [미국은 섹스를 한다]
노엄 촘스키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리오 휴버먼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모리스 버만 [미국문화의 몰락]
정정일 : 성석제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밀란 쿤데라 [느림]
최수철 [벽화 그리는 남자]
김형경 [세월]
다카하시 겐이치로 [우아하고 감상적인 일본야구]
내가 일부러 강유원 책에서 역사책, 논평 등 딱딱한 책들만 뽑고,
장정일 책에서 소설들만 골라 뽑은게 아니다.
실제로 이 두 남자가 읽는 책들이 이렇게 다르다.
강유원의 서평집에 소설은 다섯권 미만이고,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90% 이상이 소설이다.
<타인의 취향>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
강유원과 장정일, 이 두 남자의 독서세계, 그들의 취향은 이렇게 다르다.
그런데...
강유원은 그의 서평집 [책]에서 장정일을 신랄하게 비난한다.
[장정일의 독서일기 2](p58~60)에서 난 정말 "충격"을 받았다.
책을 집어 던지고 싶을 정도로....
물론 내가 장정일을 사랑하는 만큼, 냉정하게 읽을 수 없었음은 인정한다. 하지만 강유원의 자세도 "냉정한 감식" 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강유원이 장정일에 대해
얼마나 객곽적이지 못한지,
얼마나 냉정하지 못한지,
얼마나 삐딱하게 쳐다 보고 있는지,
몇개의 예를 들어 보자.
"...놀라운 것은 장정일이 참으로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이다.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그건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그는 하루 종일 책만 읽어도 먹고살기에 별로 어려운 처지가 아니기 때문이다."(p58)
"...나름대로의 시각이나 이론적 줄거리 없이 촌평만 적어 놓은 것을 책으로 묶는다는 것은 별로 칭찬할 만한 건 못 된다.차라리 도서목록만 한 장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싶다.장정일은 많은 분량의 책을 읽지만 그것이 지식으로 축적되는 것 같지는 않다.다시 말해서 구슬은 많지만 그것을 꿰어서 이론적 줄거리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는 듯 하다."(p59)
강유원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강유원은 장정일에게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강유원이 장정일의 독서와 그의 책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대상으로 한 "비평"이 뭐가, 어떻게, 왜 잘못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책만 읽어도 먹고살기에 어려움이 없으니까 책을 많이 읽는다는
누가 들어도 한심한 폄하를 하는데, 무슨 할 말이 있을까?
도대체 강유원의 수준은 댄스 가수들을 보면서
"하루 종일 먹고 하는 일이 춤추는 것 밖에 없는데 저만큼을 못쳐?"
하는 동네 아저씨와 무엇이 다른가?
타고난 몸치가 하루종일 먹고 춤만 춘다고 해서 박진영 처럼 될 수 있을까?
책만 보면 하품을 하는 졸부 아들을 몇천권 책이 있은 호화별장에 보내면 책을 한권이라도 읽을까?
제발 비난할껄 비난하자.
강유원은 말한다.
"픽션"에만 관심을 갖는 소설가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강유원에게 말해주고 싶다.
소설을 무시하는 사람은,
지식을 쌓는데만 혈안이 된 사람은,
균형 잡힌 서평가가 될 수 었다고....
전반적으로 강유원의 글들은 논리적이고 명쾌하다.
덕분에 좋은 책들도 많이 알았다.
그런데...
내겐 강유원이 똘똘이 스머프 처럼 느껴진다.
나는 소설을 무시하는 사람이 싫다.
소설은 말랑말랑한 크로상도 아니고,
인문서들을 읽으며 곁다리를 끼어 읽기에 적합한 만만한 대상도 아니다.
당대에 반짝했던 수많은 사회학 서적들이 사라졌지만,
소설은 질기게 살아 남는다.
그 강한 생명력으로....
강유원에게 소설 몇권을 보내고 싶다.
읽으려나?
수선이의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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