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 3시 50분, 친구 부인의 전화를 받았다.

"xx 씨가...오늘 3시 22분 저 세상으로 갔어요....흑흑"

전화를 끊고 난 뒤 스스로를 자책했다.

시간이 좀 더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착각이어서.

췌장암이 십이지장을 통째로 막아 10여일 전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신장마저 망가져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으니,

그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난 이번 주 살인적인 스케쥴을 소화해야 했고,

그게 끝나는 토요일 오전에 그 친구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했다.

세상은, 안타깝게도, 내 희망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고,

그 친구는 내가 도착하기 열아홉 시간 전에 먼저 가버렸다. 

이제 만 49세, 그냥 가기엔 아까운 나이로 말이다. 


암이 처음 진단된 4월 말, 내가 처음 예약해 준 곳은 강남성모병원이었다.

X병원에서 아버지 진료를 받으면서 이 병원은 안되겠다 싶었던 게 이유였는데,

하지만 그 부인은 "최고의 의사한테 진료할 거예요"라며 X병원으로 갔고,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4개월 남짓 살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X대 병원의 A교수는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을 때까지 "많이 좋아졌다"며

환자와 보호자를 속였고,

결과적으로 죽음을 준비할 시간을 그들로부터 빼앗아 버렸다.

내가 보기엔 항암치료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A는 "크기가 줄어들었다" "혈액 내 암수치가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죽기 2주 전까지 했고,

그 때문에 본인과 어머니는 삶에 대한 희망을 계속 간직하고 있었다.

세 딸의 결혼식은 보고 죽어야겠다던 친구의 말이 지금도 떠오르는데,

하지만 그 인간이 좋아졌다며 환자를 기만하던 순간에도

췌장암은 간의 담도를 침범해 수치 15의 황달을 만들었고,

더 자란 암이 십이지장을 막아 물조차도 마실 수 없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고 얘기해 줬다면 먹고픈 걸 먹고 정리도 했으련만,

친구는 장이 완전히 막힌 뒤에야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알아차렸고,

그제야 "2주를 괜히 허송세월했다"며 탄식했다. 

난 그의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담당교수가 말하지 않는 것을 내가 말하는 건 월권이었고,

나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는 친구에게 차마 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전공의들에게는 "저 환자 곧 죽을 거니까 특별히 해줄 게 없어"라고 해놓고선

바로 그 입으로 환자에게 "많이 좋아지고 있다"고 하는 분열적인 심리를,

난 이해할 수 없다.

전공의는 "교수님마다 스타일이 다르니 이해하시라"고 보호자를 위로했지만,

그런 말이 대채 누구에게 도움이 된단 말일까?


항암을 아예 하지 않았다면 좀 달라졌을까.

우리가 마지막으로 술을 마시던 4월 25일에도 친구의 상태는 좋지 않았지만,

항암을 받고 난 뒤 친구의 상태는 훨씬 더 나빴다.

8월의 어느 날, A는 친구가 홍삼을 먹었다고 야단을 쳤다.

웃긴 건, 그게 죽음을 한달도 채 남기지 않은 시점이었고,

전공의들에게 "특별히 치료할 게 없다"고 말하던 때였다.

그 홍삼이 치료에 얼마나 방해가 되는지 난 알지 못한다.

A가 보호자들을 격분시킨 건 친구가 이제 곧 죽는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더 해줄 게 없다고 퇴원하라고 강요했다는 점이었다.

갑자기 호스피스를 알아봤지만 자리는 없었지만,

A 말대로 몸에 주렁주렁 줄을 단 채 집에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환자 부인은 응급의학과 교수에게 울며 사정한 끝에 응급실에서 3일의 말미를 얻어냈고,

그 동안 성바오로병원 호스피스에 자리를 얻어냈다.

하지만 다른 곳에 비해 바오로의 호스피스는 너무 열악했다.

친구와 보호자는 내가 알아봐주는 강남성모의 호스피스로 옮길 날만 기다렸지만,

친구가 숨을 거둘 때까지 강남성모에서는 끝내 연락이 오지 않았다.

내 힘이 닿는 곳은 아니었긴 해도, 이 점이 난 미안하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강남성모를 친구는 죽어서야 갈 수 있었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영안실이 꽉 차서 다음날까지 기다려야 자리가 난 탓에

그 다음날부터 조문객을 받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내가 태어난 후 많은 지인이 세상을 떴다.

그때마다 가슴이 조금씩 비워졌지만,

가장 친한 친구의 죽음은 가슴의 절반 가량을 비워버렸다.

먼 훗날, 머리가 하얗게 된 내가 그 친구와 술잔을 기울이던 상상을 가끔 했는데,

이젠 다른 그림을 그려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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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9-05 1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5-09-05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나 마음이 아프실까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ㅠ_ㅠ

부리 2015-09-11 12:14   좋아요 0 | URL
네 답글 감사드립니다. 친한 친구의 죽음은 마음의 일부를 빼앗기는 느낌이네요. ㅠㅠ

책읽는나무 2015-09-06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리 2015-09-11 12:14   좋아요 0 | URL
감사드립니다. 친구도 이제 좋은 곳으로 갔을 거예요...ㅠㅠ
 

강의평가에서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는 편인데

이번 학기 여성과 의학은 작년, 재작년의 강의를 훨씬 업그레이드한 야심작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뭐, 대부분이 좋은 말을 써줬고-아직 평점은 올라오지 않았다만 4.3은 넘지 않을까 싶다-

개선할 점도 별로 없다고 해줬다.

[학생들과 눈을 마주치면서 수업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같은 건 내 수줍음 탓이기도 하지만

슬라이드만 읽으면서 수업을 하는 스타일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년부터는 일방적인 강의 말고 학생들과 대화도 좀 하면서 강의를 하자는 생각을 해본다.

 

 

 

<---내가 쌍꺼풀을 했다면 이런 얼굴이란다. 이 정도만 생겼다면 자신있게 학생들과 눈을 마주쳤을 텐데.

 

 

 

그런데 다음 말을 보자.

[피피티가 너무 성의없었다. 여학생들이 많은 수업이고 해당 교수님이 어수룩해서 귀엽다고 많은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것 같은데,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교수님의 수업은 좀 성의가 없었고 일방적이었다. 물론 많은 참고자료를 조사해서 준비하신 것 같긴 하지만, 조사한 참고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피피티를 좀 더 성의있게 만들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그리고 시험 문제가 너무 쫀쫀해서 이게 정말 실효성이 있고 시험문제로써 적당한 문제인지 믿음이 안 갔다. 차라리 과제를 내주고 시험문제를 대폭 줄여서 정말 시험문제로써 적당한 문제들을 냈으면 한다. 좀 놀림을 당한 기분이 들었다. ]

 

이 지적에 대해 십분 공감한다.

1) 내가 수업준비를 열심히 한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건, 슬라이드 장수가 많기 때문이지 슬라이드를 잘 만들었기 때문은 아니다.

좀 더 완성도 높은 슬라이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2) 시험문제에 대한 지적에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모름지기 대학에서 시행되는 시험문제라면

주관식도 좀 있어야 하는데

난 객관식 50문제의 신화 때문에 정말 말도 안되는 문제를 만들어서 시험문제를 낸다.

과연 이런 방식을 계속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는데,

이게 성적 낼 땐 유리하긴 하지만 깊이있는 지식을보단 단편적인 암기만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교양강좌를 강의할 때 좋은 점은 바로 이런 거다.

의대생들이 위계질서 때문에 하지 못하는 말을 거침없이 할 수 있다는 것.

가끔씩 내가 강의를 잘한다,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는데

이 강의평가 덕분에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됐으니,

누군지 모르는 그 학생에게 감사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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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1-12-20 19: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금. 의대생들은 위계질서 때문에 그런 말 못해요? 딴 얘긴데, 롯대현이 롯데에서 잘해줄까요? 대호도 민한신도 없는 롯데라 내년부터 진짜 야구 볼까 말까 싶긴 하지만요.

부리 2011-12-20 22:34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그렇죠. 강의평가를 익명으로 하는데도 불구하고 좋은 말만 하더라구요. 개선할 점에다 "교수님 최고"라고 쓴답니다. 글구...팬이란 건 아무리 팀이 어려워도 어쩔 수 없이 그 팀을 응원하는 존재더군요. 힘내시구요, 야구는 포기하지 마세요.

stella.K 2011-12-2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딴 얘기지만, 언제고 부리님 강의를 청강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물큰 들었습니다.ㅋㅋㅋ

부리 2011-12-26 20:41   좋아요 0 | URL
뒤늦게 메리 크리스마스! 근데 실제로 제 강의, 그닥 재미 없어요 앞으로 "됐다" 싶으면 초대할게요

얼룩말 2011-12-22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으신데다가 훌륭하시기까지 ^^ 그리고.. 언제나 감동

부리 2011-12-26 20:42   좋아요 0 | URL
원래 제가 말을 좋아하는데요 앞으론 가장 좋아하는 동물을 물으면 얼룩말이라고 하겠습니다!!

BRINY 2011-12-2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흠..그렇군요. 저는 교사평가결과가 나와도, 모든 학생을 100%만족시킬수는 없다는 신조로 좋은 코멘트만 봅니다 ^^;; 마태님은 교육자의 거울이시군요.

부리 2011-12-26 20:43   좋아요 0 | URL
평소 제가 느끼던 걸 예리하게 지적한 글이라, 반성이되더라구요. 여성학이 제 전문분야가 아닌 거라 더더욱 그런 거겠죠^^

... 2011-12-22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렇게 강의 평가 열심히 읽고 반성하시는 교수님이, 계시긴 계시는 거였군요... 새삼 감동했습니다.

부리 2011-12-26 20:43   좋아요 0 | URL
어맛 강의평가라는 게 원래 반성하라고 있는 건데요 뭐. 다른 분들도 다 그렇지 않을까요???

마법천자문 2011-12-22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중 `산부인과`의 올바른 발음은?
1. 산부인꽈 2. 산부인까 3. 산부인과

설마 이런 문제를 내신 건 아니겠죠?

부리 2011-12-26 20:44   좋아요 0 | URL
그런 문제는 안냈습니다만, 객관식 50문제를 내려면 좀 지엽적인 걸 낼 수밖에 없었어요. 이메일 적어주시면 제가 문제지를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나저나 마법천자문님 넘 반갑습니다.!!! 그간 안녕하셨어요
 

 

'오늘'은 '집으로'와 '미술관 옆 동물원'을 만든 이정향 감독의 작품이다.

이런 감독은 왜 자주 영화를 만들지 않을까,라는 의문이 들만큼 괜찮은 작품들인데,

그가 이번에 만든 영화는 용서에 관한 내용이다.

송혜교는 1년 전 약혼자를 오토바이로 쳐 죽인 10대를 용서하는 탄원서에 서명한다.

그냥 치어죽인 것도 아니고, 주위에 보는 사람이 없는 걸 알고 한번 더 치어 확인사살까지 한 끔찍한 놈인데 말이다.

그 과정에서 가해자 부모와 종교단체 사람들 등 많은 이들의 회유와 간청이 있었겠지만,

어찌되었건 겉으로 보기엔 멋있어 보인다.

 

그 후 송혜교는 종교단체의 부탁을 받아 가해자를 용서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며 다큐로 만드는 일을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점차 용서라는 것에 회의가 들게 되는데,

예를 들면 이런 장면.

"벌써 감형을 받아 출소를 했더라고요. 저 같으면 출소한 뒤 제일 먼저 저한테 찾아와 사과를 했을 텐데

결국 저는 그 사람한테 사과를 받지 못했어요. 그때 했던 용서를 취소하고 싶어요."

송혜교가 알아보니 자기 약혼자를 죽인 그놈은 자기 반 아이를 시덥잖은 이유로 죽인 뒤 소년원에 가 있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가해자의 반성이 없는, 단지 형을 단축하기 위한 용서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묻는데.

이런 식으로 관객을 조종하는 영화라 해도 그게 내 신념과 일치한다면 거부감이 없다.

 

용서에 관해서는 <밀양> 같은 영화를 비롯해 여러 군데서 얘기를 했으니 패스(요즘 이 단어가 끌린다)하고,

내가 공감한 건 심심할 때마다 자기 딸을 때리는 폭력 아버지에 관한 부분이었다.

그 딸은 공부도 잘 하고 신장병도 있는 아이인데도 아버지는 파이프까지 동원해서 딸을 때린다.

자기 기분에 따라서 때리는 거라 이유도 없지만,

"맞을 짓을 하니까 때렸지" & "내가 안때렸으면 니가 지금 이렇게 사람 구실을 했겠냐"는 게

아버지는 물론이고 오빠와 어머니의 뜻이다.

그런 가족이 싫어 집을 나온 그 딸-이름이 지민이다-에게 송혜교는 말한다.

자기는 어릴 적 부모가 이혼해서, 그렇게 때리는 아버지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아버지가 널 사랑하니까 그러는 거라고.

하지만 송혜교는 모른다.

두들겨 패는 아버지는 없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는 걸.

역시 아버지 기분에 따라 신나게 두들겨 맞으며 자란 나로선

안맞고 커본 사람이 맞는 아이의 슬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게 짜증이 났다.

스포일러를 잠깐 말하자면,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송혜교는 지민이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그 전까지 혜교가 했던 말들은 밥상을 엎을만큼 짜증이 났다.

 

사람이 사람을 고의로 다치게 하거나 죽게 하는 걸 제외하면

이 세상에 맞을 짓이란 건 없다.

더구나 자기가 낳은 자식은 부모 스스로가 가장 존중해 줘야 하건만,

어떤 부모는 낳았다는 게 무한정 때릴 권리를 가진 것처럼 군다.

그게 다 자격이 없는 것들이 아무런 검증 없이 부모가 됐기 때문인데,

영화에서 지민이의 부모가 판사인 것처럼,

사회적으로는 그럴듯한 직업을 가지고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 중에도 그런 폭력아빠는 많이 있다.

검사-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돈도 제법 버셨던 울 아버지는

대체 뭐가 그렇게 불만이어서 우리를 그렇게 두들겨 패셨을까.

세월이 흘러서 나중에 아빠 나이가 돼보면 이해할 수 있을줄 알았지만,

마흔 중반인 지금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아빠의 그 심보를 이해할 수 없다.

엄마가 어릴 적에 갈라서서 우리를 데리고 집을 나왔다면,

그리고 평생 써보지 못한 약사 면허증을 이용해 우리를 길렀다면,

내 어린 시절이 지금처럼 추억할 거 하나 없는,

길고 긴 터널만은 아니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시절엔 갈라설 자유가 남자에게만 주어진 권리였고

엄마 또한 그다지 용기있는 사람은 아니었기에

고난의 나날을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2001년 12월, 어머니 연세가 62세가 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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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2-18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도 그런 아픔이 있으셨군요.
아픔이 그늘로 나타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부리님처럼 그 반대로 나타나는 사람도 있는가봐요. 그럼 거의 이겨내신 것 아닌가요?
아무리 화가 나도 절대 자식에게 손지검 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습니다.

부리 2011-12-20 19:27   좋아요 0 | URL
뭐, 거의 이겨냈다고도 할 수 있는데요
그래도 제 어린시절의 추억이 하나도 없는 걸 떠올리면 속상할 때가 있죠

Mephistopheles 2011-12-18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송혜교가 적극적으로 캐스팅을 원했던 영화였다는데....
이정향감독과 배우 송혜교의 조화는 적어도 부리님께 결과론적으로 크게 어필되지 않았나 봐요..^^

부리 2011-12-20 19:27   좋아요 0 | URL
아, 송혜교란 배우가 저한텐 미녀가 아니라서 그런 거구요
만일 그 배우가 정유미였다면 100% 공감했을 거예요
미모지상주의자 부리 드림

stella.K 2011-12-18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본격적으로 용서를 주제로한 영화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밀양도 겉보기엔 용서를 말하는 것 같지만 문제제기만 할뿐 진정한 용서를 다루고
있지는 않잖아요. 이 영화도 그럴 것 같군요.
그런데 우리는 이상적인 부모에 대한 이데올로기가 있다고 봐요.
이를테면 부모는 인자해야 하고,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주시는 어쩌구 하는 이데올로기요.
하지만 실제로 보면 그것 이면의 것들이 존재하는데 그것에 대해선 잘 얘기를 못하게 되죠.
부모와 자녀도 엄밀히 말하면 갑과을의 인간관계라 권력 내지는 지배구조가 존재한다고 봐요.
솔직히 저의 어머니도 좋으신 분이라고 인정은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선 자녀인 저는 다 좋다고는 보지 않거든요. 어머니와 딸 가깝고도 멀기도 하죠. 한번 화가나면 폭언이 엄청 나기도 했거든요. 놀라운 건 그것이 당신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돌아서면 언제 그랬냐고 하시죠. 이 부모 이데올로기는 자녀가 생각하는 거랑, 부모가 생각하는 거랑 다른 건가 봐요.

부리 2011-12-20 19:30   좋아요 0 | URL
님 말씀이 맞습니다. 진정한 용서를 다루는 건 아니어요. 사실 사람이란 어떤 한계가 있기 때문에 진정한 용서를 한다는 게 그리 쉽지 않을 거예요. 님 말씀대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도 지배구조가 작용해서, 부모의 뜻대로 자식이 따라야 하는 구조 같아요. 근데 그 부모의 뜻이 늘 옳은 게 아니라는 게 문제입니다. 글구 제 경우엔...오래 같이 살다보면 서로간에 서운한 점도 있을 수 있겠지만, 저는 서운함이 훨씬 더 크네요.

반디 2011-12-19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송혜교의 여우주연상 수상소식은 의외였습니다. 연기가 좋아졌긴 했지만, 그 속에 완벽하게 들어간 느낌은 없었으니까요. 영화가 한발짝 진전했지만 아직도 멀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고요. 전체적으로 영화는 뭔가 겉도는 느낌이었습니다. 한 발 더 나갔어야 했는데 그 선을 좀체 못 넘는다고나 할까? 지민의 대사 중에 그런 말이 있었죠, 타인을 아프게 하지 못하니 자신이 아프다는 말. 영화 끝무렵에 송혜교가 자신이 용서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말이 무척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부리 2011-12-20 19:32   좋아요 0 | URL
와앗 반디님 영화 전문가신가봐요. 제가 막연하게 느끼던 영화의 문제점을 날카로운 언어로 풀어주고 계시네요. 님 말씀하신 것도 그렇지만 자신을 죽이지 못하니 타인을 죽인다는 것도 꽤 공감이 갔어요. 용서라는 게 뭔지 다시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영화였습니다.

sweetmagic 2012-01-03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주인공도 감독님도 무척이나 애쓴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뭔가 조금 한끗 모자란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가진 철학중에 하나가...절대 아이는 때리지 않는다. 무슨 잘못이라도 맞아야 할만큼 잘못하는 일은 없다. 인데, 저도 한대씩은 맞고 자란터라(저 같은 경우는 매를 벌긴 했습니다만 -_-;) 때려서 해결보고 싶은 순간이 있습니다. 그 고비를 힘겹게 -_-;; 넘길때 마다, 느낍니다. 때려서 해결하는 건 당장은 참 쉬운 방법이지만, 분명한 건 맞은 만큼 내 아이 안에 분노와 상처가 쌓이는 일이라는거. 무서운 일이라는거.
 

지난주와 지지난주, 수업을 하지 못했다. 

지지난주엔 중환자실에 있었고, 

지난주엔, 아마 혈액을 잃은 탓이겠지만, 기력이 딸려 십분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오늘 수업은 무려 3주만이었는데, 

수업 때 들어가니까 학생들이 열렬한 박수로 환영을 해준다. 

거기서 그칠 줄 알았는데 학생들이 뭔가를 가지고 앞으로 나온다.  

 

 

 

 

학생들이 깨알같이 쓴 응원문구, 

그리고 위에 좋은 음식들 (위에 좀 문제가 있었다) 리스트, 

오늘이 빼빼로데이니만큼 빼빼로 세상자가 내 강의 복귀 기념 선물이었다. 

다른 두 개도 귀한 선물이지만, 

학생들이 쓴 응원문구를 읽다가 눈물이 날 것 같아 그만둬 버렸다. 

나중에 연구실로 와서 혼자 읽는데, 

역시나 눈물이 난다. 

사람이 눈물을 흘리는 건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그 중 한가지는, 자신이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다. 

학생들에게 정말 고마웠고, 

그들의 바람대로 앞으로는 조심조심, 건강하게 살아야겠단 생각이 든다.  

아마도 난, 2011년 본과 1학년 학생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 연구실에서 혼자 읽기 잘했단 생각이 든다. 

나이든 남자가 눈물을 짜는 건 좀 청승맞아 보이니까. 

제목을 '울었다'가 아닌, '울뻔했다'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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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와 2011-11-11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보는 저도 울컥울컥. 지금은 좋아졌어요 부리님?

부리 2011-11-11 22:21   좋아요 0 | URL
네 과식을 피하고 조금씩 먹으면 괜찮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힘이 좀 없어졌어요ㅠㅠ

다락방 2011-11-11 1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우. 아팠다가도 벌떡 낫게 할만한 그런 글들이네요. 부리님 정말 그동안 잘해오셨나봐요. 얼른 쾌차하셔서 학생들이 좋아하는 부리님의 유머를 맘껏 보여주세요!

부리 2011-11-11 22:21   좋아요 0 | URL
근데 아프고 나니깐 유머가 팍 줄어들었어요 흑흑...근데 저 글들 보니깐 힘이 불끈 나긴 합니다^^

전호인 2011-11-11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다 나으신거죠? 유튜브도 제거했으니....고생많으셨네요, 조기에 기력회복해서 많은 즐거움 주세요. 나이가 들수록 작은 감동에도 고마운 눈물이 납니다.^^기특한 제자들이에요^^

부리 2011-11-11 22:22   좋아요 0 | URL
네 고생하고 났더니 세상이 달리 보이는 거 있죠. 글구 저건 작은 감동이 아니라, 감동의 쓰나미였어요^^

balmas 2011-11-11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구 저런 ... 그동안 큰 수술하셨군요. 수술 끝난지 얼마 안됐는데 벌써 강단에 서도 되는가요? 너무 무리하지 마시고 일단 건강부터 챙기세요. 꼭 회복해서 예전처럼 활기차고 건강한 부리님을 뵐 수 있기를 빕니다.

부리 2011-11-11 22:23   좋아요 0 | URL
어맛 글고보니 발마스님 정말 오랜만... 하시는 일은 잘 되시는지요? 저도 얼른 회복해서 테니스도 치고 그런 삶으로 복귀하겠습니다. 님도 건강하시길! 울나이 땐 건강이 정말 최고!

춤추는인생. 2011-11-11 20: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학생들이 그려진속에 좋아하시는모자사진보니 저도울컥해요~ 빨리 완쾌하셔야해요. 모두들 이렇게 응원할께요^^ 부리님 꼭 건강해지셔요

부리 2011-11-11 22:23   좋아요 0 | URL
어맛 춤인생님 그간 안녕하셨어요 미모는 여전하시죠? 한 두달간만 조심하면 다시 예전처럼...까진 아니라도 정상생활을 할 수 있을듯 싶습니다. 님의 응원에 감사드려요!

BRINY 2011-11-11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엥? 벌써 수업하셔도 되는건가요? 앉아서 쉬엄쉬엄 수업하세요.

부리 2011-11-11 22:24   좋아요 0 | URL
수업은 해도 될 거 같은데요 문제는... 그간 일이 너무 밀려서, 계속 밤을 새야 할 것 같다는 거예요. 흑흑. 2주의 공백이 너무 컸어요 암튼 걱정해주셔서 감사드려요 브리니님.

마노아 2011-11-12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보는 제가 다 감격인데 부리님은 오죽했을까요. 정말 사랑스러운 학생들입니다. 그런 학생들에게 사랑받는 부리님은 더 근사해요. 그 기운으로 꼭꼭 쾌차하셔요!!!

이진 2011-11-12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생들의 응원 문구가 정말 정성있어 보이고 감동적이네요... 저도 코가 시큰거리는 문구들이네요 ㅠㅠ 부리님 힘내셔서 꼭 회복하세요!

LAYLA 2011-11-12 0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그동안 큰 일이 있었군요 모르고 있었다니 이럴수가 ㅠㅠ 어서 쾌차하시길 바래요 부리님~~~~!!!

2011-11-12 0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2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2 09: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12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1-11-12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이거, 너무 인기가 많으신 거 아닙니까?ㅎ
부럽습니다. 모름지기 선생님은 제자들의 열열한 사랑을 받을 때
제일 힘이 나는 법이죠.
그런데 왜 그리 몸이 안 좋으셨습니까?
아무튼 제자들의 환호 덕분에 병이 다 나으셨겠습니다.
아프지 마십시오. 우리 나이되면 이젠 오래버티깁니다.ㅋ

부리 2011-11-12 12:35   좋아요 0 | URL
후후 우리나이라... 그 말 들으니 정말 이제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하긴, 20대 때만 해도40대 중반을 할아버지처럼 생각했었죠. 실제 나이는 그런데 마음 나이는 아직 20대라, 너무 막 살았던 것 같습니다. 앞으론 나이에 걸맞게 조심조심 살기로 했습니다. 충고 감사드려요 글구 인기 유지도 잘 해야겠어요 호호.

마태우스 2011-11-12 14: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몸이 많이 안좋으셨군요.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 정말 삶의 방식을 좀 바꾸셔야겠어요. 과식, 과음은 금물입니다. 언젠가 님이 삼겹살 드시는 거 보고 기절할 뻔하게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런 방식대로 사셨으니 오늘의 시련이 온 게 아닌가 싶구요, 앞으로는 적당히 드세요. 님의 건강을 기원하겠습니다

부리 2011-11-13 18:25   좋아요 0 | URL
아 마태님 걱정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항상 님을 존경하고 있는데 이렇게찾아와주시니 몸둘바를 모르겠네요.^^

moonnight 2011-11-12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정말 고생많으셨어요. 중환자실이라니. 흑흑 ㅠ_ㅠ
학생들 말대로, 학교 최고의 스타교수님이 아프시면 안 되죠. 팬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잖아욧. 버럭 ;; 부리님은 알라딘에서도 최고의 스타이시니 앞으로는 건강에 더더욱 유념해주세요. 건강이 최고입니다.

갑자기 어제 술을 마구 퍼마신 게 찔려옵니다. 저도 자제해야겠어요. 나이도 있는데 ㅠ_ㅠ

부리 2011-11-13 18:26   좋아요 0 | URL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앞으론 자제하겠습니다. 근데 님은 아직 젊으시니 좀 더 마셔도 될 듯 싶습니다. 술은 마실 수 있을 때 마셔야 합니다. 안그럼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더라구요

모과양 2011-11-13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격적인 소식인데요. 알라딘의 최강 미남을 잃을 뻔 했네요. 가슴을 쓸어내립니다. 지금은 많이 나아지신 것 같아 다행이여요. 부리님~ 항상 응원합니다. 건강회복 인증 샷! 올려주세요.

부리 2011-11-13 18:27   좋아요 0 | URL
호호 제가 미남이라니, 이거이거 너무 띄워주시는 거 아닌가요? 건강회복 인증샷은 사실 마태우스님께서 올리셨습니다. 상받았을 때가 막 퇴원하던 날이었다죠. 쫌 어지럽구 제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사진 보면 건강해 보이더라구요

home 2011-11-13 1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뭔 수술 하셨는데요?

부리 2011-11-13 18:27   좋아요 0 | URL
아..이거 비밀이옵니다. 저희 가족들이 볼 염려가 있어서요. 연락 주시면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꾸벅
 
새벽 거리에서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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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거리에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이긴 하지만,  

그의 전공분야인 추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대신 이 책은 주인공 와타나베의 불륜에 거의 모든 분량을 할애한다. 

회사 신입사원과 사랑에 빠진 와타나베는 원래 성실한 가장이었건만

불륜에 빠지게 된 뒤 어떻게든 아내를 속일 궁리만 하게 된다. 

예컨대 불륜상대와 1박을 하고 난 와타나베는 아내에게 이렇게 둘러댄다. 

"거래처 사람과 몇 차를 거치는 사이에 상대가 그만 잠이 들어 버렸다.. 

집까지 데려다 주게 되었다...겨우 집을 찾아 들여보내 주고 이제야 해방되어 

돌아가는 길이다." 

아내는 이 말을 믿어 주는데, 이거야 그럴듯하긴 하지만 다음 장면은 좀 가증스럽다. 

크리스마스 이브를 불륜녀와 같이 보내려는 와타나베,

아침에 나가면서 "이런! 휴대전화 배터리가 떨어졌네! 충전하는 걸 깜빡했어!"라고 호들갑을 떨고, 

회사에선 충전이 잘 안된다면서 전화를 꺼 놓는다.  

그러고는 회사전화로 집에 전화해 2년 전에 돌아가신 은사가 다시 돌아가셨다고 한 뒤 

불륜녀에게 달려가 꿈같은 1박을 보낸다. 

 

친구들의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친하게 지내던 세명의 친구와 술을 마신다고 해놓고 불륜녀에게 달려가는데, 

그 친구들은 그를 위해 진짜로 한잔을 하면서 알리바이를 만들어 준다. 

사실 이건 그 친구를 망치는 것일 뿐 진정 그를 위하는 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친구의 그런 부탁을 대부분 거절하지 못한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다. 

"오늘 너 만난 걸로 해줘"라는 친구의 부탁을 몇 번인가 들어준 적이 있다. 

다행히 그 친구는 숱한 바람을 폈지만 아직까지 걸리지 않았는데, 

그의 부인을 만날 때면 괜시리 죄책감이 든다.  

이런 우스개 소리가 있다. 

바람을 피느라 들어오지 않는 남편이 의심스러워 평소 친하던 친구 네명에게

남편 혹시 어디 있는지 아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동시에 답이 왔다. 

"걱정 마세요. 그 친구, 지금 저랑 같이 있어요." 

사람들은 이런 걸 친구간의 우정이라 생각하지만, 글쎄 잘 모르겠다. 

바람 피는 건 친구의 사생활이라 간섭하기도 애매하고, 

그러지 말라고 한들 들을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해야 할까? 

다행히 그 친구는 바람 생활을 청산하고 가정에 돌아갔기에 

내가 원망을 들을 일은 이제 없을 것 같지만, 

이놈의 우정이 바람까지 커버해 줘야 되는지에 대한 답은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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