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이렇게 달아놓고 보니 한수산의 소설 ‘밤의 찬가’가 떠오른다. 그것은 1978년 내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조선일보에 연재되어 아침마다 가슴을 저릿하게 했던 소설이었다. 지금 다시 읽으라면 낯간지러울 그렇고 그런 소설이다.
한수산은 ‘감성을 건드리는 문체’라는 말을 앞세우며 소개되는 소설가였다. 오늘날 김훈이 그렇게 불리듯이. 시대는 진보할 수 있지만 문체는 그렇지 않다. 그저 시대와 은밀한 짝을 이룰 뿐이다. 세월이 흐른 언젠가는 김훈의 문체들도 낯간지러울 처지에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한수산이나 김훈이나 마찬가지겠으나 다른 게 하나 있다. 앞사람은 필화사건을 겪은 이고 뒷사람은 그런 게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정치색 없이도 필화 겪은 한수산
정치적인 색깔이라고는 반 뼘도 없었지만 한수산은 재수는 더럽게 없는 사람이었다. 1980년 5월1일부터 중앙일보에 연재하던 소설 ‘욕망의 거리’에 등장한 몇 구절이 뜻하지 않게 당시 ‘칼지랄’을 하던 보안사령부의 비위를 건드리는 바람에 1981년 5월29일에 중앙일보 문화부의 정규웅 부장, 손기상 편집국장 대리, 문예중앙 권영빈 주간, 허술 출판부장, 연재소설 담당 이근성 기자는 보안사로 실려가고 한수산 역시 제주도에서 압송되었다.
이들 외에 고려원 편집장을 하고 있던 시인 박정만도 연행되었다. 보안사에서 고문을 받고 나온 한수산은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1988년 절필을 선언하고 일본으로 도망갔다. 박정만은 1988년 10월2일, 그를 고문했던 보안사의 총책임자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어 개최한 서울올림픽 폐막식 날 화장실의 변기 위에서 짧은 인생을 끝냈다.
나는 신문 인터뷰에서 칭얼대는 김훈을 발견할 때마다 한수산 필화사건을 떠올린다. 그가 소설가로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것도, 여기저기서 그를 불러다 200만 원 주고 강연을 듣는 것도, ‘후배’들이 너도나도 찾아가 인터뷰를 청하는 것도 참으로 좋은 시절 덕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지금은 김훈 시대
김훈은 기자들에게 ‘사실과 의견을 구분해야 한다’고 끝없이 다그친다. 시사저널 후배들 앞에서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똑같은 말을 떠들기도 했다.
난 넥타이를 반쯤 풀어헤친, 칼을 옆으로 비켜든 사무라이 같은 그 멋진 모습을 보며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까지 했다. 그러나 지금 그가 잊고 있는 게 있다. 그는 이제 기자가 아니라 소설가라는 것 말이다. 소설가는 허구를 지어 내놓는 사람이다. 허구를 지어 세상에 내놓으려면 자기가 쓴 글을 믿을 정도로 굉장히 순진하든지 아니면 자기가 쓴 글을 믿게 할 정도로 굉장히 뻔뻔하든지 해야만 한다.
그가 순진하건 뻔뻔하건 그는 이제 사실을 말하지 않는 사람임이 분명한데도 기자들은 소설가 김훈을 찾아가 시대에 대한 그의 의견을 듣고 사실처럼 믿는다. 유치찬란한 한 쌍이다.
김훈은 우리 시대가 어디에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밥타령을 한다. 그 밥타령은 과거에 밥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명분과 정의가 중요하다고 소리 높이던, 이제는 기름진 밥을 먹으며, 기름진 배를 채우며 그것을 넘어 권력을 쥐고 주무르면서 망가진 이들에 대한 복수담이다. 그들은 김훈에게 ‘닥치고 있어’ 소리를 하지 못한다. 김훈은 마음껏 떠들 수 있다. 너희들은 더러운 돈 만지고 있지만 난 연필로 글 써서 4000만원짜리 자전거 산다, 이거다.
지금은 김훈 시대다. 이제 한국의 문필가들은 김훈을 보며 결심한다. ‘나도 글써서 돈 벌어야지, 그래도 욕하는 놈 없으니 괜찮아, 김훈 봐라, 오히려 당당떳떳하잖아. 돈이 돈을 벌어주잖아’ 이렇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