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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슬란과 류드밀라 ㅣ 비룡소 클래식 7
푸슈킨 지음, 카랄리코프 그림, 조주관 옮김 / 비룡소 / 2004년 7월
평점 :
정말정말 오랜만에 그림책을 읽었다.
<루슬란과 류드밀라>는 비룡소 클래식 7편.
비룡소 클래식 시리즈는 현재 12편까지 나와있다.
<보물섬>,<꿀벌 마야의 모험>,<홍당무>,<하이디>,<피터 팬>,<크리스마스 캐럴>,<트로이 전쟁>,<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들>,<키다리 아저씨>,<플란더즈의 개>등 어렸을 때 읽었던 어린이 세계명작들이 잔뜩 모여있다. <키다리 아저씨>랑 <플란더즈의 개>도 다시 읽어 보고 싶다.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읽으며 생각했다.
어린이들이 읽기에는 너무 어렵지 않나?
슬라브 신화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들로 비유를 한 문장들이 많아서 각주까지 있다.
상징들도 많아서 어린이들이 명랑만화를 읽듯 낼름 책장을 넘기기에는 부담이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무엇보다도 이 책은 너무도, 감동할 만큼 이쁘다.
눈에 띄는 하드카버에, 마치 미술책 같은 천연색의 삽화로 가득한 이 책은 읽지 않더라도 꼭 갖고 싶을 만큼 이쁘다.
이 책의 삽화들은 보통의 동화책들에 나오는 귀엽고 이쁘기만한 그림이 아니라, 치밀하고 사실적이다.
이 책의 삽화를 그린 카랄리코프의 대표작이 <슬라브 신화 백과사전>, <루슬란과 류드밀란>, <러시아 전설 백과사전>, <고대 러시아 신화와 전설>, <푸슈킨 어린이에게>이라 하니, 슬라브 신화와 러시와 전설에 정통한 카랄리코프는 철저한 고증과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루슬란과 류드밀란>의 삽화들을 그렸을 것이다.
<루슬란과 류드밀라>의 스토리는 정말로 단순하다.
넘넘 이쁘고 청순한 공주와 잘생기고 용감한 왕자가 결혼을 했는데, 첫날밤에 늙고 사악한 마법사가 공주를 납치해 가서 왕자가 온갖 역경을 무릎쓰고 공주를 구출해 온다는 얘기다.해피엔딩은 너무도 당연하고... 당근 공주를 흠모하는 세명의 경쟁자들이 등장하고,
왕자는 비겁한 경쟁자에게 살해당하며, 현인이 "생명의 약"을 구해서 다시 살아난다.
요즘 어린이들도 왕자가 공주를 구출하는 얘기에 매력을 느낄까?
난 사실...이런 얘기가 재미 없다. 어렸을 때도 왕자가 공주를 구출하는 동화를 읽으며 "백마탄 왕자"를 상상하기 보다는, 왜 공주는 혼자서 아무 것도 못할까를 생각했던 것 같다.
<루슬란과 류드밀란>에는 왕자를 도와 주는 역할로 "핀란드 노인"이 등장한다.(오른쪽 그림의 하얀 수염 할아버지)
핀란드 노인은 젊은 시절 마을 최고의 미인이었던 나이나를 사랑했다. 용기를 내어 사랑을 고백했지만, 오만한 미녀 나이나는 냉정하게 거절해 버린다. 자신의 사랑을 거절 당하고 상심에 빠진 핀란드 노인은 영웅이 되어 다시 사랑을 고백하기로 결심하고, 전쟁에 나가 영웅이 되어 돌아온다. 진주와 산호, 온갖 화려한 선물을 바치며 다시 사랑을 간구하는 그에게 나이나는 또 다시 냉정하게 말한다.
"영웅이여, 난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
상심한 핀란드 노인은 나이나의 사랑을 어떻게 해서든 얻기로 결심하고, 마법을 배우기 위해 숲으로 들어간다. 숲 속에서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마법을 배운다.드디어 주술의 능력을 얻은 핀란드 노인은 주문을 위운다.
그런데.....젊고 아름다운 나이나는 나타나지 않고,
주름 투성이의 꼬부랑 할머니가 나타났다.
상심한 핀란드 노인은 절규한다.
"이럴 수가! 아, 나이나, 이게 당신이란 말이오!
아름다운 당신의 고운 모습은 어디로 갔소?
말해 주오.무엇이 당신을
그토록 무섭게 변하게 했소?
말해 주시오.내가 속세를 버리고
사랑하는 당신과 헤어진 지
얼마나 오래되었소?
그렇게 오래되었소?"
그러자 운명의 여인이 대답했지.
" 꼭 사십 년이 되었죠."
핀란드 노인은 일흔이 되어 나타난 나이나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핀란드 노인이 사랑한건 나이나의 젊은과 아름다움이었다.
즉,핀란드 노인은 나이나라는 온 인격적 인간을 사랑한게 아니었다.
나이나의 아름다움을 숭배하고 사랑한 거였다.
마법사가 신혼 첫날밤에 공주 류드밀라를 납치한 이유도
공주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류드밀라가 슈렉에 나오는 피오나 공주처럼 생겼다면
아무도 납치하지 않았을 것이며,
돈을 노린 괴한이 납치했다 하더라도
왕자가 그렇게 목숨 걸고 구출하지 않았을 거고,
공주를 흠모한 연적들이 셋이나 달려들지도 않았을 거다.
전설,동화에 나오는 주인공 여자들은 모두 다 미인이다.
왕자와 경쟁자들은 아름다운 공주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고, 공주를 지키기 위해 기사도 정신을 발휘한다.
할머니가 된 나이나를 불러낸 핀란드 노인이 절규하는 장면에서 난 큰 소리로 웃었다.
만약 젊고 아름다운 기억 속의 나이나가 나타났다면,
자기는 쭈글쭈글한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나이나와 사랑에 빠졌을 꺼다.
그런데...꾸부렁 할머니가 된 나이나가 나타나자 혼비백산한 핀란드 노인은 도망가기에 바쁘다.
정말 정말 웃기다.블.랙.코.미.디.
자기가 할아버지면 자기가 사랑했던 여자도 할머니인게 당연하지,
할머니가 된 여자가 나타나자 왜 이렇게 변했냐고 절규하다니...
이런 자연의 이치도 모르는 사람이 무슨 "현인"인지...웃기다.
어린 여자애들이 이런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백마 탄 왕자를 하염 없이 기다리고,
여자는 무조건 이뻐야 한다는 삐뚤어진 고정관념에 빠져
다이어트와 성형을 밥 먹듯이 하는 어른이 될까 두렵다.
초등학생 여자 조카가 있다면 이런 동화 보다는
모든 인간은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한다는 걸 깨우쳐 주는 책을 골라 선물하고 싶다.
어린이들이여,
제발 "누구의 부인"이 되고 싶다는 꿈을 내평겨쳐라!
너희들은 뭐든 될 수 있단다. 너희 스스로!
이 책은 어른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머리도 식히며, 너무도 아름다운 삽화에 흠뻑 빠져 보시라...
또 큼직큼직한 글씨의 동화를 읽으며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