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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은 김훈이고 싸이는 싸이다 - 이 시대 가장 매혹적인 단독자들과의 인터뷰
김경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난 잡지를 거의 읽지 않는다.
김경이 기자로 있는 <바자>(Bazaar Korea)도 읽은 적이 없다.
미장원에서 몇번 본 적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보그나 다른 잡지들이랑 구분이 되지 않을 뿐.
당근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김경'이 누군지도 몰랐다.
이 책에 실린 22편의 인터뷰는
잡지 <바자>에 실렸던 인터뷰 모음집.
사실....읽으면서 좀 놀랐다.
패션지에서 연예인 아닌 사람들하고도 인터뷰를 하네?
특히 2001년 8월, 대선주자였던 노무현 '고문'과의 인터뷰를 읽으면서는 고개가 갸우뚱했다.
외국 패션쇼 사진이랑 화장품 광고만 잔뜩 실리는게 패션지인지 알았는데,
정치인들도 예술가들도, '주성치'까지도 <바자>랑 인터뷰를 하는구나....
솔직히 '패션지에 다이어트 노하우 외에 읽을만한 기사가 있어?'라고 생각했던 나로서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이 책에 실린 첫번째 인터뷰, <김훈 - 저기, 한 사내가 있다!>를
읽으면서 명함에 있는 김경의 본명은 '김경숙'이란 걸 알게 되었다.
아...이름에서 한 글자만 빼도 정말 느낌이 다르다!
'김경숙'이라면 정말 흔한, 이웃집 언니 같은, 평범하고 얌전한 느낌인데,
한 글자를 빼고 '김경'이라고 하니까 뭔가 재기발랄해 보인다.
동시에...비약이겠지만, 뭔가 자신의 정체성을 쿨하게 꾸미는 건 아닐까? 하는 약간의 의심이 들기도 했다.
그러니까...존경하는 디자이너 앙드레 김의 본명이 '김봉남'이라는 걸 알았을 때의 약간의 배신감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얼마 전 중앙일보에서 김경이 쓴 <서울을 축제의 도시로>란 칼럼을 봤다.
"그렇다면 4년 전에 비해 한층 더 요란해지고 적나라해진 월드컵 패션이 은폐하는 진실은 무엇일까? 그것은 2002년 이후 이 도시와 이 도시의 젊은이들에게 뭔가 새로운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믿었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진실에 대한 은폐가 아닐까? 나는 그 책임을 젊은이들이 온 마음으로 미래에 대한 열망을 가득 담아 표를 던졌던 대통령에게 묻고 싶지만(그의 당선도 젊은이들에겐 하나의 축제였다), 지금은 그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존재 여부조차 확인이 안 돼 그 일은 그만둔다."
바로 5일 전, 6월 20일자 칼럼이다.
5년 전, 그러니까 2001년 8월,
김경은 지금은 존재 여부조차 확인이 안된다는 대통령과 인터뷰를 했다.
그 인터뷰는....인터뷰라기 보다는 차라리 '헌시'에 가깝다.
누군가 노무현은 '어딘지 눈물 나게 하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다.(p315)
똑 같은 사람이 쓴 5년 전의 인터뷰와 5년 후의 칼럼을 보니
참....착잡하다.
이 책에 실린 22편의 인터뷰에서 김경의 일관된 자세는
인터뷰 대상을 너무도 사랑한다는 거다.
어떤 인터뷰를 읽으면서는 <성공시대> 나레이션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자신이 반한, 사랑에 빠진 사람을 인터뷰 대상으로 감수성 넘치는 글을 쓰는 건 좋지만,
지금도 22명의 인터뷰 대상에 대해 김경이 그런 감정을 유지하고 있을까?는 의심스럽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불편함'은
정혜신의 [남자 vs 남자]를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함'과 비슷하다.
정혜신이 분석의 대상을 선정한 기준은
정혜신이라는 한 개인의 'preference'라고 생각한다.
또한 그의 'preference'는 대중의 인기와 그대로 부합한다.
그 대상과 비교하는 'negative'한 대상은
비판을 하면 일반대중이 카타르시스를 느낄만한 사람들로 선정되어 있다.
대중들이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 좋게 쓰는 것.
시간의 흐름과 상황의 변화, 대중의 지지도 변화에 따라
저자의 관점도 같이 변한다는 것.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애매한 불편함을 글로 표현하자면
이 정도가 될 것 같다.
인터뷰의 미덕이 톡톡 튀고, 재미있는 거라면
김경의 인터뷰는 최고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대상과의 거리 두기', '공정한 시각'을 인터뷰의 미덕이라고 한다면?
마지막으로 김경의 글쓰기 뿐만 아니라 요즘 많은 칼럼리스트들에게 느끼는 불만 하나.
일반 대중을 상대로 글쓰기를 할 때,
그러니까 전문지가 아닌 잡지나 일간지, 사보들에 글을 쓸 때,
제발 니체나 하이데거의 말을 인용하지 마시라!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그러는가?
글의 완성도를 위해서 꼭 필요한가?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꼭 필요한가?
당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논거로 꼭 필요한가?
도대체 왜, 왜 쌩뚱 맞게 '니체'가 툭툭 튀어 나오는가?
무슨 리어카에서 파는 '체 게바라' 면티도 아니고 도대체 니체가 웬 유행인지?
이 책의 두번째 인터뷰 [DJ DOC 네 멋대로 놀아라]에도 니체의 말이 인용되어 있다.
그들은 마치 니체처럼 나타났다.
" 죽여 없애지 못한다면 그들은 더욱 강해질 뿐이다
(What doesn't kill them makes them stronger)."(p34)
<씨네21>의 영화 리뷰들에서도 이런 식의 인용을 쉽게 볼 수 있다.
외래어 남용과 함께 조심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며 얻은게 있다면 이상일,양혜규,조성룡 등 이름도 몰랐던 사람들에 대해
단편적으로 나마 알게 되었다는 거다.
소개팅할 땐 넘넘 재미있었지만 다시 만나기엔 긴가민가한 남자 같은,
재미있게 읽었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