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양연화>를 처음 봤을 때부터
Ankor Wat에 꼭 가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내게는...
거대한 나무의 뿌리들로 뒤엉킨 오랜 사원과
시간이 정지한 것 같은 사원의 정적, 신비함에 대한
"환상"이 있었다.
하지만...
Ankor Wat은 북적이는 놀이공원처럼
수많은 관광객들로 가득차 있었다.
혼자 우두커니 앉아 찬찬히 보고 느끼며
사원이 주는 영감을 얻을 수 있는
"한산한"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Ankor Wat에 대한 환상을 너무 오래 지닌 나머지
"캄보디아"라는 나라로 여행을 간다는 사실,
Ankor Wat이라는 유적지, 관광지가 아닌
Siem Reap이라는 도시, 캄보디아라는 나라 자체에 대해서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내게 캄보디아는
그저 Ankor Wat이 있는 나라... 일 뿐이었다.
하지만 캄보디아에 머무는 기간 내내
Ankor Wat은 "사원의 도시"라는 단어의 뜻 보다
"빈곤의 도시"로 느껴졌다.
호텔을 제외하고 어디를 가나
"One dollar! One dollar!"를 외치는 맨발 차림의 수많은 아이들 앞에서
난 심한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꼈다.
동남아에서 이렇게 구걸하는 아이들을 본 게 한두번은 아니다.
필리핀 Cagayan de Oro에 출장 갔을 때는
공항 앞에서 땅콩을 파는 수십명의 아이들이 한국말로
"언니 이뻐! 언니 이뻐!"를 외치며
땅콩 봉지를 들고 주차장까지 따라왔다.
올망똘망한 아이들의 눈동자를 외면하기도,
그렇다고 30~40명의 아이들 모두에게 돈을 줄 수도 없었다.
그저 아시아의 가난, 그 부조리한 가난에 대해 분노를 느낄 뿐이었다.
하지만 캄보디아는 필리핀, 베트남, 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게... 가난했다.
크메르 루즈의 학살과 내전이 끝난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앙코르 와트의 돌 무더기 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이 쏟아져 들어오지만
관광객들이 쓰는 돈은 캄보디아에 "투자"를 한 국가들과 기업들로 유입된다.
앙코르 와트 입구에서는 4살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 작은 아이가
부채질을 해주며 "One dollar!"라고 말했다.
그 작은 손에 부채 두개를 들고서는 관광객들에게 아장아장 걸어가 부채질을 한다.
그리고... 관광객들과 눈이 마주치면 들릴듯 말듯 작은 소리로
"One dollar!"라고 말한다.
경제학자들은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돈을 주면 안된다고 말한다.
※ 타일러 코웬 <경제학 패러독스> 참조
구걸도 산업이고,
관광객들이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주면
구걸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게 되고
(인도에는 구걸하기 위해 일부러 팔이나 다리를 자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들의 경쟁이 더 치열해 지면서 결국은 더 가난해 진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구걸을 하는 아이들에게 돈을 주면
어린 아동을 착취하는 악덕 앵버리 업자들이 더 많아질테고
더 많은 아동들이 희생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르다.
4살도 안된 것 같은 어린 아이가
부채질을 해주며 "One Dollar!"라고 말하는데
그 아이의 애원하는 눈빛을 외면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1달러를 주니 아이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돈을 꼭 쥐었다.
아마도 그 아이는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구걸을 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한국 애들이 4~5개씩 다니는 학원은 커녕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하고.
아니 학교는 커녕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극심한 가난의 그늘에서
최소한의 교육도 받지 못하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수많은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도울 수 있을까?
월드비전이나 컴패션에 후원하는 아이들 수를 늘리는 거 말고
보다 직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앙코르 와트, 앙코르 톰을 비롯한
크메르의 찬란한 유산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하고 아름다웠지만,
난 여행 기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2주 후면 필리핀에 출장을 가야 하고,
또 다시 "One Dollar!"를 외치는 수많은 아이들을 마주치게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굶주리지 않고, 학대 당하지 않고, 구걸하지 않고,
그저 "아이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는 건 망상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