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퇴근길, 헌책방에 들리다.
요즘 회사만 가면 아주 우울해 진다.
이런 증세를 빨리 극복해야 하는데...
어떤 조직이나 크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하나, 허울 좋게 광 파는 사람, 자~알 나간다.
나머지 하나, 뼈 빠지게 일하고 티 안나는 사람.
지금 회사에서 나는 나머지 하나다.
요즘 우울모드에 있는 나,
술이 술을 먹듯이 생각이 생각을 확대시키면서 요즘 난 극심한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다. 내가 꼭.... 일당 잡부 파출부 같이 느껴진다.
울 팀에서 내가 제일 막내다.
IMF 이후로 다 경력사원으로 땜빵했다.
상상해 보라!
73년생이 막내인 팀을....
그 유명한 80:20의 법칙.
김대리는 20%의 제품을 팔면서 80%의 매출을 올리고,
성대리는 80%의 제품을 팔면서 20%의 매출을 올린다.
20%의 제품을 담당하는 김대리는 항상 "전략"을 얘기한다.
80%의 제품을 담당하는 성대리는 전화 받느라, 메일 답장 하느라 허리가 휜다.
80%의 매출을 올리는 김대리는 항상 상무님과 "전략"을 얘기한다.
20%의 매출을 올리는 성대리는 항상 상무님과 "농담"을 한다.
김대리가 회사의 앞날을 짊어질 드래곤이라면,
성대리는 매출액 얼마 안되는 비주류 제품을 담당하며 바쁘기만 한
일개미다.
아줌마들이 하는 하소연을 이제야 알겠다.
"집안 일은 해도 해도 티가 안나!"
그렇다.
내가 하는 일은 티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 잡는다.
하도 전화를 많이 받아서 퇴근할 때 목이 잠긴다.
티 안나는 일을 하다 보니,
고과는 내가 커트라인으로 쫙 깔아준다.
아....내가 욘사마 처럼 느껴진다.
여자 친구가 벽에 올라 가도록 엎드려 등으로 계단을 만들어주는 멋진 욘사마.
일본을 열광의 도가니에 몰아 넣은 멋진 욘사마.
물론 차이가 있다.
욘사마는 계단이 되어준 후 날아 올랐고,
나는 여전히 계단이다.
말이 길었다.
어쨌든 우울한 기분으로 퇴근을 했다.
피곤해서 그냥 집에 올까 하다가 사당동 책창고에 들렀다.
은마 아파트 앞에 있을 때는 몇번 갔었는데,
사당동으로 옮기고 나서 처음 방문이다.
온라인으로는 두번 샀었다.
두번 다 번개 배달은 물론이고, 책 상태도 아주 좋았다.
어떻게 보지도 않고 고른 책에 밑줄도 하나 없을까나....
기분 전환 겸 들른 사당동 책창고,
정말 기분이 거짓말 처럼 좋아졌다.
일단 매장이 아주 넓고 깔끔하다.
이 정도 되면 헌책방에 정장 입고 가도 된다.
쭈그릴 일 없으니까....
책들을 보니 마음이 설레이며 기분이 좋아졌다.
네권의 책을 샀다.
기분이 기분인 만큼 다 가벼운 책들로.
하나 - 에고이스트 트레이닝(요제프 키르슈너/유혜자 옮김/ 해냄)
: 나의 심리상태를 말해 준다.
좀 손해 안나게 살아 보자고!!!
하나 -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서갑숙 / 중앙M&B/ 1999년 10월)
: 이 책 예전 부터 한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절판이라 읽지
못했다. 도대체 어떤 책인지 궁금하다.
하나 - 새가 되소서 하늘을 나소서-눈물의 편지 그 두번째 이야기
(이호조외 지음 / 조원사 / 2000년 8월)
: 실컷 울고 싶어서 샀다.
<눈물의 편지> 여름 휴가 때 읽고 진짜 펑펑 울었었다.
실컷 울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마지막 한 권,
도날드 닭 에펠탑에서 번지 점프하다
- 이우일의 303일 동안의 신혼여행 1( 디자인하우스)
: 303일 동안 신혼여행을 떠난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상상할려고
샀다.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계산을 하면서 사장님과 잠깐 대화를 했다.
수선 : 은마 아파트 앞에 있을 때 보다 훨씬 커졌네요.
사장님 : (흐뭇한 웃음)
수선 : (친한 척 하려고) 저 최종규씨 친구예요.
(인터넷 친구도 친구는 친구다.ㅋㅋ)
사장님 : 그래요? 어쩐지 많이 본 것 같더라....
수선 : 이사 오시고는 처음 왔는데, 인터넷으로는 몇번 샀어요.
사장님 : 그래요? 이름이 뭐예요?
수선 : 성수선요.
사장님 : 아....그래요? 홈피에 들어가 봤어요.
수선 : 정말요? (순간 흥분한 수선,명함을 한장 드리다.)
앞으로 자주 들릴께요.
사장님 : 네....만나서 정말 반갑습니다.
우하하하.
사장님이 내 홈피에 들리신 적이 있다니 반갑다.
역시 서점은, 도서관은, 수많은 책들은 나를 행복하게 한다.
뭐 이런 말도 있쟎아?
천국한 거대한 도서관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