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
레이몬드 카버 지음, 정영문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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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영문이 번역한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읽기 전에,
원서로 [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를 먼저 읽었다.(Vintage Books Edition, June 1989)

원서로 읽었음에도 번역본을 다시 읽은 이유는
"도대체 어떻게 번역을 했을까?"
참을 수 없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Raymond Carver의 문장은 진정...간결하고도 짧다.
두줄 넘는 문장이 거의 없다. 동사도 아~주 평이한 걸 쓴다.
평이한 동사란 무엇인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해석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동사다.

"집사재"에서 나온 Raymond Carver 시리즈는 잘 읽어지는데
"문학동네"판은 읽기가 힘들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건....당연할 수 밖에 없다.

왜? Raymond Carver의 문장은 "불친절" 하니까.

"문학동네"에서 펴내고 있는 Raymond Carver 시리즈는 "완역본"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해설이 부록처럼 들어있는
"집사재"에서 펴낸 시리즈는?
친절한 일본어 번역의 영향을 상.당.히 받은 듯 하다.

Raymond Carver의 단편들엔 사전을 찾아야 할 어려운 단어가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을 하기엔 참으로 난해하고 어려운 작품들이다...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어떻게 번역했을까?"
궁금해서 읽은 정영문 번역의 <사랑을 말할 때...>에서
"심각한" 오역을 발견했다.

[Tell the Women We're Going]에서
제리는 두 여자를 "죽인다".

그런데...<여자들에게 우리가 간다고 말해줘>에서
제리는 두 여자와 "섹스를 한다".


"문학동네"에 전화를 할까, 귀찮은데 그냥 넘어갈까 망설이다가
귀차니스트의 본능을 억누르고 전화를 했다.

난 담당자를 바꿔 달라고 하고 정중하게 말했다.
"심각한 오역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그런데.....담당자는 전혀 놀라지도 않고
오히려 귀찮다는 듯이 전화를 받았다.

허름한 분식집에서 3천5백원짜리 김치찌개를 먹다가
"여기 머리카락 들었어요!" 말했을 때
주인 아줌마의 반응보다도 심드렁했다.

담당자의 심드렁한 태도는 "오역 첨 봐?" 하고 나를 흘기는 듯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한 김에 꾸역꾸역 말을 했다.

"103~104 페이지 보시겠어요?

원문 : But it started and ended with a rock.
오역 : 하여튼 그건 바위에서 시작하여 바위에서 끝났다.

원문 : Jerry used the same rock on both girls, first on the girl called Sharon
and then on the one that was supposed to be Bill's.
오역 : 제리는 같은 바위 위에서 두 여자, 처음에는 샤론이라는 여자와,
그 다음에는 빌리의 몫인 여자와 섹스를 했다.

같은 바위 위에서 두 여자랑 섹스를 한 게 아니라,
두 여자를 같은 돌로 쳐서 죽인 거예요.
"


실컷 듣고 있던 직원은 여전히 심드렁하게 말했다.
"네~ 2판 찍을 때 참고할께요."

화가 나기 보다는... 허무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시간 낭비람? 쓸데 없는 짓을 했다.삽질!

담당자는 내 연락처도 물어보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소설을 사랑하는 선배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그런건 출판사에 전화하지 말고 번역가에게 직접 알려주라고 했다.
그 얘길 듣고 잠시 정영문에게 멜을 보낼까...생각하다가 접었다.
삽질은 한번으로 충분하기에.

누구나 오역을 할 수 있다. 그 어떤 훌륭한 번역가라도.
하지만... 오역이란 2판 찍을 때 "참고할" 만한 한가한 사항은 아니지 않을까?

오역으로 인해 이 책을 읽은 독자는 이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왜 제리는 친구도 옆에 있는데 혼자서 두 여자랑 섹스를 했을까?
제리는 욕심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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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사스 2006-12-02 02: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상을 듬뿍 받아도 될 만한 일인데 말이죠…. 그래도 문학동네면 국내 굴지(?)의 출판사인데 독자의 성의에 '고따구로' 반응하다니, 좀 실망인 걸요.

비로그인 2006-12-02 08: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므낫, 저는 원문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두 여자를 죽인지는 지금 알았습니다. 황망하고 황당해요. 수선님은 더 그러셨겠죠?

마늘빵 2006-12-02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런 정말 이건 너무하는군요.

프레이야 2006-12-02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너무하군요. 오역의 수준을 넘어 악역입니다. 글의 맥락과 분위기를 이렇게 왜곡하다니요.. 우선 번역가들이 더 많이 공부하고 고심해야할 부분이네요.

stella.K 2006-12-0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름대로 우리나라의 유수한 출판사중 하나인 문학동네가 독자의 전화를 그런 식으로 받다니, 실망이로군요. 그래도 수선님 잘 하셨어요. 수선님 같은 깐깐한 독자가 있어야 깐깐한 출판사도 나오고 독자들은 더 좋은 책을 사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마태우스 2006-12-02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사는 책을 팔아먹는 곳이죠. 고객 대하기를 고따구로 하면 안되는 거구요. 책을 만들어낸다고 자기들이 김치찌개 아줌마보다 더 고매한 건 아니구요... 직업의식의 박약에도 불구하고 문학동네가 잘나가는 건 안타까운 일이네요.

2006-12-02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06-12-02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정말로 엉망진창이로군요. 오역도 오역이지만, 출판사직원은 뭐가 그런 식이랍니까. 버럭버럭 -_-+++

깐따삐야 2006-12-02 2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콕 찝어내신 수선님, 참 용하시당... 문학동네가 등 따숩고 배가 부른 건지, 출판사직원이 그날따라 저기압이었던 건지, 암튼 씁쓸하네요.

kleinsusun 2006-12-03 0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끼사스님, 다른 것도 아니고 소설의 "서사"가 달라진 거잖아요.
두 여자를 죽이다 → 두 여자와 섹스를 하다
특히 이 부분은 소설의 결말이거든요.
많은 독자들이 오역으로 인해 전혀 엉뚱한 플롯을 읽는다는 게....
적어도 제가 생각하기엔...심각한 일인데.... ㅠㅠ

Jude님, 네.... 정말 황당했어요.
"with"과 "on"을 혼동한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에도 "fuck"이나 "sex"나
"섹스를 했다"고 "착각"할만한 여지를 주는 단어도 없는데
왜 저런 엄청난 오역을 했는지는.... ㅠㅠ

아프님, 네..너무해요. 재고 다 걷어서 스티커라도 붙혔으면 좋겠어요.

혜경님, 영어의 문제를 떠나....이야기의 흐름상 "두 여자와 섹스를 했다"는 결말은 쌩뚱맞거든요. 하물며 정영문씨는 소설가인데..쩝

kleinsusun 2006-12-03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tella님, 한 중소 다이어리 회사가 "오자"를 발견하고 제품을 다 "리콜"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어요. 문학동네 뿐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역에 대한 "경각심"이 우리 출판계에 너무 없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마태님, 문학동네와 통화할 때 가장 안타까웠던 부분은....제 연락처를 묻지 않았다는 거였어요. 즉 그건....오역 여부를 확인할 생각이 없다는 거 아닌가요? 까잇거 대~충 넘어갈 일은 아닌 것 같은데...적어도 제가 보기엔 말이예요.ㅠ

속삭이신님, 다른 거 다 떠나... 업종을 떠나...
고객전화를 받으면 연락처를 물어보고, 사실여부를 확인한 후 결과를 알려주는 게
맞지 않나...생각해요. M동네 정기구독 독자로서 아쉬움이 큽니당.

달밤님, 이런 일에 삽질하는 에너지를 생산성 향상에 쓴다면 저는 얼마나 훌륭한(?) 사람이 될까요? 음하하

깐따삐야님, 과연...2판에서는 고쳐질까요? ㅠㅠ

다락방 2006-12-03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수선님. 정말 허무하고 황당하셨겠네요.
그리고 님의 댓글에 달려있는 그 '중소 다이어리 회사'는 제 첫직장이자 전(前)직장이기도 했지요. 감회가 새롭군요. 내가 참 좋은곳을 다녔구나, 하는 생각에 말이죠.

kleinsusun 2006-12-03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아....정말???
사장님 만날 일 있으시면 저의 "존경하는 마음"을 쩜 전해주세요!^^
"리콜"을 결정한 사장님의 결단과 프로정신에 박수를!!!

글쿠... 우리나라 출판계도 "오역"에 대한 경각심을 좀 가졌으면 좋겠어요.
아니....소설의 결말을 엉뚱하게 바꾸어 놓고, 2판 찍을 때 "참고"를 한다니! ㅠㅠ

2006-12-04 22: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lecteur 2007-01-02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독자님. 저는 문학동네 편집부의 김지연입니다. 그날 독자님께서 주신 전화를 받은 편집자이기도 합니다. 독자님의 전화를 받고, 바로 정영문 선생님의 원고와 원서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독자님께 연락을 드리고 그 부분을 말씀드리고자 했는데, 제가 연락처를 미처 여쭈어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혹시 독자님께서 다시 연락 주시지는 않을까 기다리던 중 얼마 전에야 우연히 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얼굴을 뵙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목소리만 오가는 전화상으로 이야기를 드리다보니 본의 아니게 마음 상하게 해드린 것 같습니다. 독자님께서 지적해주신 부분은 다음 쇄에 꼭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오역을 지적해주신 점, 깊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사냐 2007-01-22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수선누나 멋지시다. 결국 정정되는구나.

김영남 2020-09-06 19: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는 책에는 정정 되어 있네요. 바위를 사용했다라고 나와있습니다^^